네스토리우스 기독교 중국 景敎(9)

   
쿠처 키질석굴 정문에 있는 고승 구마라습 동상.

유승이라는 놈이 부르짖던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놈들, 부처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놈들이 살생을 해!’라는 말이 주지승 영진의 가슴을 조여매는 것 같았다. 영진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유철을 불렀다.

유철은 주지승의 방으로 들어서다 말고 깜짝 놀랐다. 주지승 영진은 법복으로 갈아입고 불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영진사 대표 승려의 당연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옆자리에는 술상이 널려 있었다. 괴로운 것이다. 유철의 오야봉 영진이 지금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은 갔다. 영진을 부대장으로 한 그들은 특수임무를 늘 수행했었다. 장안의 변방을 지키면서 이 민족들 중에서 신분이 수상한 사람들을 잡아들여 조사하고, 수상쩍다 싶으면 사정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범죄 혐의자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도 눈깜짝을 하지 않았던 부대장 영진이었다.

유철이 방에 들어온지 한동안 지났는데도 주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철이 그냥 나갈까 망설이는데 주지가 입을 열었다.

“유철, 그사람 좀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어떨까?”

“안됩니다. 그건 말도 안됩니다. 신분도 족보도 모르는 놈들인데 감히 사부님을 뵙게 하다니….”

“유철아, 그럴 필요없다. 너나 내가 뭐 별 대단한 놈이더냐….”

“아, 그래도….”

“고맙구나. 그래도 유철이지.”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꼭 그들을 만나시겠다면 제가 먼저 그놈들의 신분을 알아본 후에 사부님이 만나시면 어떨까요?”

“응, 그게 좋겠구나. 그럼 그렇게 하라.”

지하실에 내던져진 후 유승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을 집어던진 후 여러 시간이 지나도 더는 기척이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더구나 처음 묶여서 갇혔던 골방과 같지 않았다. 회의실이나 합숙소 같기도 했지만 깨끗한 벽이며 천정도 정성들여 꾸민듯 벽면과는 다른 색깔의 종이로 손질이 되어 있었다.

“유승님, 괜찮으신가요?”

사울의 말이다. 유승은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눈이 충혈되고 더구나 왼쪽 눈 위의 이마가 찢어지고 피도 꽤나 많이 흘렸던 흔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지혈이 되어 보이지만 상처부위가 부어올라서 얼굴이 비뚤게 보일 정도였다. 더구나 그의 두 손목이나 발목 또한 시퍼런 멍이 들었고, 발목은 거꾸러 매달렸던 충격 때문인지 발목 복숭아뼈 부분에서 장단지까지 절반은 퍼렇고 붉은 피멍이 심하여 독사 두 마리가 발목을 각각 휘감고 있는 형색 같았다.

“죽일 놈들, 저놈들을 어떻게 할까?”

사샤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분개했다.

“그래도 사샤가 유승님을 구했다오.”

그랬다. 사샤가 뒤로 묶인 끈을 풀어내고 밖으로 나가서 유승이 거꾸로 매달려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후 돌아와서 삼손, 사울, 트리온의 팔목을 풀고, 일단 골방에서 탈출시켰다.

그들은 유승이 산 숲 깊숙한 곳 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주변에 감시자들이 있을 것이라 믿고 힘이 좋은 트리온과 삼손이 먼저 공격자들이 숨어있을 법한 나무숲 쪽으로 갔다. 삼손은 이름 그대로 힘깨나 쓴다고 해서 삼손으로 이름지었다는 젊은이다. 서너명은 맨손으로 제압할 능력이 있었다. 사샤와 사울은 방해꾼들을 제압한 것을 확인하면 곧바로 유승을 구할 준비를 했다.

방해꾼은 세 명이었다. 그들은 각각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이 삼손의 가까이로 왔다. 삼손이 재빠르게 손을 썼다. 그들은 삼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으, 악, 아이쿠’ 하더니 그들 셋은 나가떨어졌다. 그 사이에 사울과 사샤가 유승을 풀어냈다. 그들 일행이 함께 몸을 피하려던 사이에 낌새를 알아챈 도둑떼들 10여 명이 유승 일행을 에워쌌다. 삼손에게 제압되었던 놈들까지 합세하니 쉽지 않은 형세였다.

“형제들, 우리가 뭣 때문에 도망갑니까. 상대가 불교 승려들이요, 그렇다면 저들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을 것이오. 내가 주지와 담판을 하겠소. 모두 나를 따르시오. 이놈들, 우리를 너희의 두목인지 사부인지에게로 안내하라. 어서!”

유승은 기고만장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불교를 배운 승려 출신이다. 무슨 사정으로 저들이 늑대처럼 구는지는 모르나 일단 저들 신분이 승려인지를 알았는데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통성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지금 극심한 사탄의 시련을 받고 있나이다. 죽고사는 일에서 자유하는 우리가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상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슨 약점을 보였는지를 모르겠나이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혜를 허락하소서.”

지하실 방안에 뱅 둘러앉은 채 양 손을 모두 펴 서로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유승이 말했다.

“여러분, 걱정마시오. 상대는 중들이오. 내가 주지를 만날 것이요.”

“그래요. 우리 주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나머지 일행은 유승의 용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주위는 조용했다. 밤은 깊어갔다. 지금의 방법으로는 저들을 만날 수 없다.

“일단 불편한 곳이지만 각각 잠을 청해보시오. 제놈들도 잠을 자지 않겠소.”

유승이 이렇게 말하고 한쪽으로 가서 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청했다. 알로펜을 따라 순례길에 나설 때 언제 제대로 된 잠을 자보았던가.

새벽녘이었다.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승이 이미 잠을 깨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던 터라 인기척을 바로 알아보았다.

“누구쇼?”

“잠들 잘 잤소? 나는 왕하윤이요. 유철 스님이 여러분의 대장을 만나고자 하시오. 대장은 어딨소?”

“대장이라니, 우리는 모두 동료들이요. 대장은 없소.”

“어젯밤 거꾸로 매달렸던 그 사람 말이오.”

“어, 나요. 내가 유승이오. 누가 나를 만나잔다고?… 어디서?…”

“나를 따라오면 됩니다.”

유승이 왕하윤의 뒤를 따라서 지하방을 나섰다. 동지들이 말렸으나 유승은 씩 웃으며 힘차게 걸었다. 힘차게 걷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는 어젯밤 당한 린치 덕분에 심하게 절뚝거렸다. 아침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이른 아침이었다.

왕하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유승을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유승은 그의 그런 행동을 무시했다. 혹시 유승이 도망칠까 해서 뒤돌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찰 본체 말고도 뒤켠에 집이 두 채나 더 있었다. 둘 중 마루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왕하윤이 유승을 안내했다.

“유철 스님, 두목을 데려왔습니다.”

“안으로 데려오게.”

왕하윤이 유승을 이끌었다. 유철은 정좌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있다. 그는 왕의 뒤를 따라 들어온 유승에게 말했다.

“거기 앉으시오. 나 본 사찰의 감찰부장인 유철이오.”

말 없이 자리잡고 앉은 유승이 유철을 노려보았다. 유철은 어제 보았던대로 매우 우직한 사내였다. 승려냄새가 나지 않았다. 위로 치켜올려 있는 눈은 사나워 보이고, 입가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미소까지 포함하여 그는 독살스러운 인상이었다. 이런 자가 중 노릇을 하다니.

유철과 유승은 마치 기 싸움을 하는 듯 했다. 유철이 자기 신분을 밝혔는데 유승이 처음엔 유철을 노려보다가 지긋이 눈을 감고 있었다. 유철은 유승의 모습에서 장안에서 종종 보는 고승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 같은 것을 느꼈다. 유철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생각 밖의 말을 꺼냈다.

“일단 어젯밤은 미안하게 됐소. 댁은 뭘 하는 사람인지 내게 소상히 말해 줄 수 있겠소?”

“뭐, 미안하다니요? 당신의 윗사람이 어제 자기 신분을 승려라고 하더이다. 그럼 당신도 중이오?”

“말씨가 공손치 않구려. 대접을 해보려 했더니 그게 아니구먼.”

유철이 손벽을 치니까 문밖에 있던 장정들 다섯 명이 들어와서 유승의 좌우에 섰다. 유승은 새로 들어온 청년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그들 모두가 머리를 깎고 있었다.

“자네들이 승려인가? 중이 되려면 속됨에서 벗어나야 해. 사람과 짐승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네. 윗사람 호령이 무서워서 아무런 짓이나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가지고 언제 불제자의 도를 익히려나.”

유승은 졸개들을 훈계하더니 유철에게 말했다.

“난 지난달 황제 폐하의 초청으로 방현령 대감의 안내를 받아서 당나라에 온 알로펜 주교의 제자 유승이요. 지금 궁성 안 황제궁 옆방에 머물고 있소. 당신들이 우리를 관원들에게 넘긴다 했으니 보내시오. 그리고 어젯밤 당신들의 폭력행위도 함께 책임지시오.”

“거짓말이다!”

큰소리로 말하는 유철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말했다.

“너희들이 어제 여기까지 오면서 마을 사람들 붙잡고 했던 말이 있다. 언사를 그럴듯 하게 늘어놓는데 우리가 너희 놈들에게 속아넘어갈 줄 아느냐?”

유승도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젊은 중들이 유승을 부추겼다.

“너희들 하고는 말이 안통하는구나. 너희들의 사부를 불러오라. 내가 담판을 짓겠다.”

유승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유철은 주교 영진의 방으로 갔다.

“사부님, 그놈이 만만치 않소. 자칫 그놈의 기만 살려주는 꼴이 될까 걱정됩니다.”

“이 사람 벌써 겁 먹었나?”

“…….”

영진의 말에 유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자네가 겁을 잔뜩 먹었을까?”

“그 작자는 잡배들 같지 않았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게 들리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자네도 이제는 귀가 열리는 때가 됐다는 뜻이네. 고맙네 유철! 자네가 크고 있구먼. 오전에 내가 그들을 만나보겠네.”

유철은 주지의 방을 나와서 아랫마을 사람들을 불러오게 했다. 유승 일행이 머무는 지하실도 아침 밥상이 들어오고, 그들의 문밖 출입을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유승님, 역시 실력있으시군요. 어제 말씀하시기를 큰 짐승 곁에서 편히 쉬게 하겠다시더니 그 말이 적중했군요. 하하하….”

삼손이 유승의 어깨를 다정스레 붙잡으며 말했다. 모두 함께 웃었다. 유승은 몸의 상처를 떠올렸다. 간 밤에 거꾸로 매달렸던 일, 또 생매장 위협 등이 생각나 몸서리가 쳐졌지만 동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정 가까운 시간, 왕하윤이 유승을 찾아왔다. 주지 스님이 찾는다고 했다. 유승은 하윤의 안내를 받아서 주지승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왕하윤의 부축을 받는 유승이 방으로 들어오자 주지가 성큼 걸어나와서 유승을 부축하여 자리를 권했다. 유승이 주지 영진을 한참 바라다 본다. 그는 말 없이 영진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본사 주지 영진이오. 아랫것들의 보고가 잘못되어 지난 밤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어디 몸은 좀….”

영진은 사죄부터 했다. 유승은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동진 말기에 낙양인가의 선후정 스님이 있었소. 도둑들이 들어 사찰 일부를 불태우고 재물을 노략했고, 승려 한 사람이 목숨까지 잃었던 제법 큰 사건이 있었는데 선후정 주지는 도둑들을 붙잡았으나 매질 하나 하지 않았소. 그게 불살생과 비폭력을 말하는 부처님의 가르침 아니겠소.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들이 기독교 신자인 줄 알았으면서도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가 우리를 난처하게 했어요.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유승은 주지의 난감한 표정과 그의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보면서 다음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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