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입은 여인이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을 들은 나사렛 처녀 마리아가 깜짝 놀라서 되묻는다.
어찌 이런 인사를…. 마리아는 기가 막혔다. 유대인의 관습 중에 ‘은혜를 입은 여인아’ 할 때는 ‘임신한 여인이여’로 해석이 가능하니 나사렛 처녀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어찌 이런 인사가 있다는 것인가? 몸 둘 바를 모르는 마리아, 자기 말고 또 누가 들었으면 어찌하는가?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임신을 하다니, 외간 사내와 눈마주 친 일 한번 없는데, 꿈속에서도 없었는데….
마리아는 좌절이었다.  얼마 쯤 지난 시간에 천사가 다시 나타났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이 일은 주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너로 이스라엘 왕을 잉태케 하였다. 그 이름은 예수라! 영원히 다윗의 왕위를 이어가실 왕이시니라.’ 수태의 기간이 지나서 마리아는 나사렛 예수로 출산했다. 그가 다윗의 가문을 뛰어 넘어 인류의 구세주로 자리잡기까지는 나사렛 마리아의 신앙을 힘입었다.
마리아의 신앙인 이사야 7장 14절을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임마누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그 하나님이신 이를 영접하는 자 비록 미천한 사람의 신분이로되, 하나님처럼 사는 길을 은혜로 얻을 것이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는 기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데는 기적이 동반한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천사와 만나니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과 만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성탄절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와 만나는 절기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인간을 하나님처럼 사는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먼저 그가 하나님의 신분을 뒤로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구간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찬송소리  중에서 자기 목소리를 헤아려야 한다.
내가 기독교 신자인데, 과연 나는 전혀 남정네도 모르는 처녀가 아들 예수를 낳은 마리아 이야기를 믿고 있는가 점검하라. 이것을 믿으면서부터 기독교 신자로 가치 인정을 받는다.
나는 믿는다! 처녀가 아들을 낳은 기독교의 출발점을 믿는가? 그러나 상당수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 사실(말씀)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종교인으로 분류된다. 종교는 인간 이성의 범주 안에 있는 철학이고 이데올로기이다. 이성과 철학의 울타리를 벗어나라. 처녀가 아들을 낳아야 하는 신비의 현장까지로 나를 이끌어야 하겠다는 결단을 통해서 임마누엘 예수를 만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난 9월 WCC 한국대회를 지켜보면서, 교회의 합의가 없이 왜 그런 국제 회의를 불러들여 한국교회 전체가 망신을 당해야 했던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순수 기독교와 기독교 우호 그룹들과는 기독교적 관계를 정립하여 본격 기독교의 자기 제시를 해야 한다. 주여, 나는 사내를 모르는 데 어찌 이런 일이…?를 말하는 마리아의 성탄을 고백을 따르게 하소서.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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