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주 예수를 기다린다. 채 100년도 못되었으나 조바심 있어서, 동구박 저 너머까지 모가지를 쭉 뽑아들고 바라본다.

누가복음 2장을 펴면 100살은 훌쩍 넘겼을 남녀 두 선지자가 등장한다. 시므온과 안나. 너는 주의 영화로운 날을 보기 전에는 죽지도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호통을 들은 선지자 시므온. 과부된 지 84년 동안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며 금식과 기도로 메시아의 강림의 날을 기다려 온 여선지 안나.

저들이 드디어 낳은 지 8일된 메시아 예수를 안고 성전으로  들어오는 마리아 부부를 만난다. 아, 감격스러운 날, 심장이 터질 듯한 기쁨으로 100살을 넘긴 듯한 늙은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지는 못했을까.

어찌 이 기쁨이 저들만의 것이랴. 이 모든 주 예수의 날을 기다려 50여년을 넘긴 채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못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들소리’도 있다. 

주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날, 임마누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는 날, 못난 아이같은 나의 두 눈에 서린 눈물을 닦아 주시며 낯설은 이 땅을 당당하게 걷자시며 주와 함께라면 이 땅도 하늘 길이라 하시는 주의 손 붙잡을 그날들 속에서 다시 오시는 주 예수를 기다린다. 채 100년도 못되었으나 조바심 있어서, 동구박 저 너머까지 모가지를 쭉 뽑아들고 바라본다. 곧 오신다 하여서 이러는 거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주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교회들이 많이 했었으나 이제는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 세월 속에서 살다보니까 예수는 한 번 오시는 것으로 족하고 두 번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발견한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이 아닐까?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을 수 있다.

그날 주님이 베들레헴에 오셨을 때 전혀 마구간에 오시리라고 예측 못했듯이 주가 오시는 길을 몰라서 잃어버리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성전에서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의 삶이 하나의 힌트다. 그들은 100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으니 성령 하나님과 평생을 함께 했다는 뜻이다. 금식과 기도로 자기를 단련한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자기 기록을 관리하기 위하여 체력과 기술력 향상을 위하여 주야로 발분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징조’와 마주치려하는 신자의 경우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오늘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사회의 눈, 비판하는 눈들이 많이 밝아졌고, 상대적으로 교회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잡지 못해 민심을 더 많이 잃어버리는 시대이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임마누엘의 날들속에 사는 우리는 서로 서로를 하니님 대접하듯이 정중해야 하고, 자기 삶의 자세를 더욱 겸손히 하고자 하여야 한다.

그러나 주 예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날들, 심판의 날 새벽처럼 두렵고 조심스러운 날들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일곱살 때부터 그 새벽을 기다리면서 칠십여년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 자의 주 예수여! 다시 오마 하셨기에
그때 주께서 가지고 오실 별도의 선물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한 축복을 주신다 믿고 기다립니다.

새벽이 다시 새벽으로 이어지고, 백년이 아니라 천년일지라도 기다리는 인내로 하겠습니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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