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당나라 景敎(15)

지난해 여름 타클라마칸 도시 허탄의 한 농장에서의 필자.

“아무래도 이제는 내가 나서야겠소이다. 마리아 교수님!”
“어딜 가겠다구요. 그리고 교수님 소리 좀 내던져버리세요.”
마리아와 차 한잔을 나누던 알로펜이 마리아의 약간은 짜증 섞인 투의 분위기에 긴장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리아 님, 내가 18살 때 다마스커스에서 마리아를 만나 지금 얼마 쯤 되었소?”
느닷없는 회고성 질문이다. 긴 세월이다. 그때 마리아는 스물한 살, 막 다마스커스 신학대학 교수직에 오른 총명한 여성이었다.
 “겨우 50년 지났을 뿐인데 왜 그걸 되새기나요. 내가 이제는 싫증이 났어요?”
 “허허, 무슨 그런 말씀을. 마리아 교수님은 내 인생의 유일한 보배예요. 마리아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간다고 그런 말을 하시오.”
 알로펜도 많이 늙었다. 능청스런 말로 둘러댈 줄 아는 늙은 너구리가 다 되었구나. 그들의 대화가 싱겁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마리아가 알로펜의 가까이로 다가와서 그를 가볍게 포옹했다.
 “어허, 왜 그래요?”
 알로펜이 펄쩍 뛰었다.
 “나는 누님의 자격으로 동생을 껴안았으니, 주교님은 애인 자격으로 나를 한 번 안아 주시오.”
 알로펜은 이 말을 듣자 기겁하며 밖을 한 번 눈여겨 보았다. 아무 기척도 없었다.
 알로펜은 그의 나이 열여덟살 때, 다마스커스의 외할아버지 야고보 장로의 주선으로 마리아와 결혼할 뻔 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아라비아의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외할아버지 상단에 머물면서 그와 사귈 때였다.
 당시 무함마드는 메카의 대상 낙타몰이꾼으로 다마스커스에 와서 동갑내기인 알로펜과 신앙심 경쟁을 하고 있었다. 예수가 나 무함마드의 죄를 대신했다는 증거를 대라. 내게 그 증거를 대면 나는 오늘 당장 낙타몰이 그만 두고 너와 행동을 같이 하겠다. 또 기독교의 잘못된 유일신 종교를 바로 잡으라. 삼신교(三神敎)잖아. 성부, 성자, 성신이라며….
 당시만 해도 알로펜은 무함마드의 파상공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충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사나이의 장래를 망칠 수 있다고 보았다. 더군다나 당시 알로펜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정치적 좌절을 당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네스토리우스의 정의로운 가문인 그로서는 결혼을 서두른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고, 사실상 결혼이 확정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둔 상태에서  도망을 쳤던 일이 있었다. 긴 생각에 붙잡혀 있는 알로펜 곁에 마리아가 조용히 다가와서 몸을 살짝 기댄다.
 “이제 내 소원은 주교님 품에 안겨 하나님 나라 가는 것으로 정했어요. 더는 욕심 안 낼게요.”
 알로펜이 마리아에게 약간 힘을 준다. 동의한다는 뜻인가? 받지 못해 튕겨낸다는 뜻인지…. 그러나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한동안 더 있었다.
 “나 내일 낙양에 며칠 다녀와야 하겠어요. 장안에 둥지를 튼지 얼마인데 모두들 열정이 말이 아니야. 복음은 감격이요! 기쁨입니다. 이걸 놓치면 시체야.”
 “네, 낙양이요?”
 “그래요. 이곳 장안과 맞먹는 도시입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알겠어요. 준비할게요. 동행은 결정하셨어요?”
 “아, 그래요. 유승과 안토니로 하고 그들이 한 사람씩 데리고 가도록 해보겠소.”
 다음날 오전에 알로펜은 유승과 안토니 그리고 아베스와 아비후를 동행시켰다.
 “주교님, 우리가 어제 풍물시장에서 데려온 녀석은 어찌할까요?”
 “당신 대신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보지 그래요. 아비 찾아준다는 것은 이미 틀린 것일 겁니다.”
 안토니의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안토니 목자님!”
 알로펜 일행은 낙양을 향해 선교여행을 떠났다. 주변 주민들의 생활도 살펴야 했으니 여유 있는 행보였다. 5일이 걸렸다.
 알로펜은 검은색 주의에 주황색 띠를 두르고 당나라 정부의 명예 대사직을 겸하고 있으니 당상관 이상 급의 관모를 썼다. 훤칠한 키, 하얀 수염을 흩날리는데 마치 정부에서 고관의 행차를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일행들도 하늘색 도포에 하얀 띠를 둘렀다. 관포를 쓴 대감님 수행인들 같았다. 마을이나 도심지역을 지날 때마다 말들을 천천히 몰았다.
 큰 시장 거리 같은 곳에서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서 여행자들이나 상인들을 붙잡고 대화를 요청했다.
 “여러분, 여러분의 친구들이 왔습니다. 저희는 황제폐하의 초청으로 장안에 정착한 기독교선교단 입니다. 여러분의 나라는 문화와 함께 종교를 대하는 눈도 높아서 저희가 편히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 저희는 낙양을 향해 가는데 오늘은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곳에 머물고 지내고 싶습니다.”
 알로펜이 중국어로 말할 때 표현이 부족하면 유승이나 안토니가 보충을 해 주었다.
 사람들은 대개 알로펜의 풍체와 그가 입은 관복은 물론 키보다 훨씬 큰 장대에 매달린 십자가 군기를 보면서 압도되는 것 같았다.
 알로펜은 크데시폰을 떠나 에뎃사는 물론 중앙아시아 일대를 누비면서 30여 년 선교사 생활을 하면서는 단 한번도 지금과 같은 복색이나 격식을 갖춘 일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용인술이나 사교술, 때로는 상대를 압도하는 힘도 필요함을 느끼고 있었다.
 알로펜은 그날, 사람이 보람 있게 인생을 사는 법을 말해 주며 그는 현재 50여 년 동안 페르시아와 수리아, 중앙아시아 일대를 누비며 나그네 인생을 살아온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듣는 사람들은 놀라서 고개를 흔들거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버리기도 했으나 다수의 사람들은 한 개인에게 그 같은 희생을 요구하기에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어르신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은 나 같은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어요. 이 사실이 담고 있는 진실을 확인할 경우 어느 누구, 심지어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나를 따라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알로펜이 일어서려는 시늉을 했다.
 “예수가 그런 희생을 선물로 주신 분임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 방법은 나를 대신 죽으신 내용을 주님께 직접 묻는 기도의 방법과 나 같은 늙은이의 인생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면 가능합니다.”
 “허어….”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더욱이 청년들 중 몇 명의 눈빛이 달라보였다.
 대화가 한 고비 지나면서 알로펜은 숙소를 정하도록 일렀다. 방을 여분으로 더 준비하게 했다.
 “여러분, 특히 젊은이들 중 해가 진 후에도 대화의 시간을 원하는 이들은 우리 일행과 함께 해도 좋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청년급 되는 여행자 행색의 서너 명이 대화의 시간을 요청했다.
 서역의 쿠처가 고향이라는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서 유람 중이며 특히, 장안의 현장법사로부터 서역은 물론 천축국 여행담을 들었으며, 지금은 현장의 대안사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저마다 마의, 청수, 행담이라는 불교 이름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마의가 그들 중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으며, 중앙아시아와 사마르칸트에서 여러 종교들과 교제를 나눈 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등을 만났으나 알로펜 주교의 가르침은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자꾸만 갸우뚱거리면서 ‘허어, 허어’ 하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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