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포기하지 않는 사랑      요한복음 13:1~35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십자가 지실 때에는 주님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갔습니다. 본문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에 예수를 팔고, 나머지 제자들도 다 예수를 버립니다. ‘베드로’조차도 멀찍이 따르다가 위기가 오자 3번이나 예수를 부인합니다.
이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돌아보면 교회가 어려울 때 몸 사렸고, 별일 아닌 것에 불평 원망했고, 제자들 같은 상황이면 먼저 도망갔을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할 것과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래도 그들을 위하여 묵묵히 십자가를 지십니다(1절). 오늘날 우리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까지 사랑이 식어져 다투고 분열되고 비난하고, 우리는 신문을 통하여 이런 기사들을 종종 접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말씀 하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시입니다(요일 3:10~12).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미움 시기 질투 두려움이 있으면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증거라 했습니다(요일 4:12).
▶기도 : 포기하지 않고 주님처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하소서. 아멘.
 


화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1~21

현대인의 특징은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사는 것입니다. 청년 실업 문제, 어려운 경제, 정치 환경 등 온통 안 된다, 어렵다, 죽겠다, 힘들다 속에 살아갑니다. 이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음생활이란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근심의 원인은 세상 환경의 조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어느 때고 세상 환경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못하고, 준다 해도 잠깐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27)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근심을 줍니다. 근심은 마귀에게서 옵니다. 우리 삶에 근심, 두려움이 있다면 세상, 곧 마귀에게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근심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근심거리를 기도거리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말씀을 13, 14절에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근심하지 않습니다(16~20). 그래서 성령이 임하신 날에 진정 믿음의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 일로, 쩔쩔매지 않습니다. 세상 환경으로 근심하지 않습니다.
▶기도 :이 땅에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는 모든 것을 기도로 이기게 하소서. 아멘.
 


수               사랑의 열매를 맺자     요한복음 15:1~16

“주 예수를 믿으라.”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영원히 울부짖음과 절망만 있는 곳이고, 반대로 천국은 하나님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그런 천국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믿음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 사랑을 알고 나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눈물, 슬픔, 아픔이 많은 곳이지만 그러나 이 땅에 왔기에 주님을 만났고, 또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천국을 소유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태어났기에 영원히 저주를 받은 자도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그들이고, ‘가룟 유다’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에게 좋았던 사람입니다.
이제 하나님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16).
▶기도 :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의 씨를 뿌리는 자 되게 하소서. 아멘.


목               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      요한복음 16:1~15

오늘날 많은 믿는 이들이 신앙을 하나의 종교생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불신자와 다를 바 없이 이리 저리 허둥댑니다. 그때는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반대가 됩니다. 이는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전개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가 전개되었고, ‘바디매오’가 주님을 만나 눈을 떴고, 문둥병자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120문도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만나 사도행전의 역사가 전개 되었고, ‘바울’이 ‘다메섹’에서 성령으로 주님 만나 이방선교의 역사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1907년 ‘장대현’ 교회에서 성령강림을 시작으로 100여 년 만에 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 수많은 선지자가 와서 수많은 이적을 보이고, 수많은 짐승이 피를 흘렸어도 온전한 속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이 십자가 지심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 사역이 믿는 자들 개개인에게 체험되어 지도록 주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 : 오늘도 주님과 함께 사는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금               영생을 가진 자     요한복음 17:1~13

요한복음의 핵심은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 땅에 오심도, 그분이 십자가를 지심도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며 영생을 확신하지 못하면 잘못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확신하지 못해 늘 이 땅에 얽매여 쩔쩔매고, 죽는 것이 무서워 일생 종노릇하며 사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이는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때 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담대했습니다. 신약 때 예수를 만난 이들은 근심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후 성령을 통해 주님을 만난 사람들도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전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개념에 ‘안다’는 말은 그분을 만난 체험이 있다는 말이고, 이 체험을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요 14:20).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담대하고, 영생을 확신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권세에 눌려 있다가도 누르고 사는 삶으로 바뀝니다. 병도 누르고, 물질도 누르고, 환경도 누르고 사는 삶, 이것이 바로 권능 있는 믿음의 삶입니다. 예수를 믿는 여부와 상관 없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지만 영생을 가지는 자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갑니다.
▶기도 : 흔들리거나 쩔쩔매지 않고 영생을 가진 자의 자부심으로 하루를 감당케 하소서. 아멘.


토               예수를 영접하려면     요한복음 18:28~40

유대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회교도 유일신을 섬기지만 십자가가 없기에 기독교와 다릅니다. 희랍인은 지혜와 철학을 자랑하고, 유대인은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본문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나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성전 정화로 그들의 대단한 이권이 사라지니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욕심에 눈 먼 지도자들을 봅니다. 교회에는 기득권이 없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 안에는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인본주의가 아니고 신본주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자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이어 재판장 ‘빌라도’가 나옵니다(38). 그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지만 예수가 죄 없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석방시키면 민란으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것 같고, 죽이자니 양심이 찔리고, 고뇌가 있었지만 결국 사형 판결을 내립니다. 또한 백성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기어코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 죽이고자 아우성입니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예수는 정치적이며 세상적인 왕,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왕, 그래서 그들의 육신의 지위를 회복시켜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기대에 못미치자 돌변한 것입니다.
▶기도 : 주님을 영접하고, 바로 알아 뜻대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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