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당나라 景敎(17)

 타클라마칸 쿠처 박물관. 고대 구지역에서 썼던 배틀.

지금까지 이야기

알로펜(페르시아 출신) 주교가 당나라에 입경한지도 10여 년 가까이 지났다. 당태종 등의 파격적인 영접을 받은 그의 일행 21명은 초기에는 궁성 안에 머물면서 성경번역에 몰두했으나 경교를 위해서 독자적인 교회 ‘대진사’를 건축한 뒤로는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중국에 기독교가 들어왔다(AD 635년). 중국 역사 중 최고로 강성했던 제국 당나라, 그것도 제왕 중의 제왕으로 불리는 당태종 이세민의 직접 간여를 통해서 시작된 중국 기독교인 경교(景敎: 당나라 시대는 기독교를 ‘경교’로 호칭했었다)가 당나라 말기인 AD 900년대 초까지 활동했다. 그 이후는 북방이나 중앙아시아 쪽으로 후퇴하였다가 몽골의 칭기즈칸 시대와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의 원 제국 시대까지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 다시 메소포타미아의 바그다드로 철수(AD 1401)하기까지 약 1천여 년 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대에 기독교의 영향력을 끼치는 대하소설이다.

알로펜 주교의 이력

중국 선교단 책임자로 당나라 수도인 장안(현 시안)에 입경하기 전인 그의 나이 18살 때부터 선교에 큰 뜻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은 페르시아의 수도 크데시폰 중앙교회 대 감독이었다. 알로펜은 그의 부친 압바스 감독이 네스토리우스 파 목회자였으나 부친과 신학적인 견해가 달랐다.
먼저 네스토리우스 파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해야 할 것 같다. 네스토리우스는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교회 총대주교 출신이다. 그런 그가 교리 싸움에 휘말렸다.
정치력 부족으로 정적인 알렉산드리아 감독인 키릴루스에 패배하여 AD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 결과 이단 정죄돼 추방당했다.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시리아, 요르단, 리비아 사막으로 끌려 다니다가 AD 451년 사망한다. 그가 사망했던 해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은 에뎃사, 니스비시, 크데시폰을 경유하여 페르시아 전역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네스토리우스 파 교단의 이름으로 선교하였다.
그리고, 본지의 주인공 알로펜 주교는 부친 압바스 대 감독의 후계자 되기를 거절하고 젊은 나이인 18살에 부모를 떠나 에뎃사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며 신앙과 신학 수련을 하면서 제자를 길렀다.
당나라 입경 전 60살 정도의 나이에 높은 학덕과 신앙을 가진 인물이 되어 그는 현재 작품의 진행 속도를 따라 80살 무렵까지 선교활동을 지휘한다.
당나라의 당태종, 태종의 아들인 당고종, 그리고 측천무후 시대까지 전성기 당나라 기독교를 이끌게 된다. 당나라 전역에는 알로펜 스타일의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다. 알로펜 주교 시대에 페르시아 마지막 황태자 피루즈가 당나라에 신분을 의탁하고 지내다가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이 된 후 당과 외교관계를 열면서 페르시아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신라로 피신하여 기독교는 물론 초기 이슬람이 신라에 소개되기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작품 경교, 다음은 몽골리아 기독교 편이 연결되면서 원제국 쿠빌라이 칸의 사위인 고려 왕조 충렬왕 시대 고려와 원제국의 일본 정벌기가 나온다. 그러니 원나라 군사 중 10만 명이 더 되는 기독교 군대가 마산과 부산 지역에 주둔하는 과정에서 비록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터전인 고려 왕조에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을 쓰게 된 작가의 말

본인은 50여 년 전 세계 교회사 공부를 하다가 비운의 교회 지도자인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신변과 신학, 그리고 그의 최후는 물론 잘 길러낸 제자들이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지에 선교활동을 하게 된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몽골, 한국 지역에는 그들의 맹렬한 활동에 비하여 유적이 턱없이 부족함을 보았다.
역사학도의 자세로 자료를 모으면서 공부하다가 30여 년 전부터는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 등지로 찾아다니기를 수십 차례였다. 험난한 여행을 통해서 노력을 많이 했으나 얻은 바 소득은 넉넉하지 않다.
작가가 확보한 역사 기록 자료도 만만치는 않으나 지금쯤 내 기억과 건강이 감당할 수 있을 때 역사책 이전에 사건별로 연결하면서 소설 형식을 통해서 표현해보기로 했다.
현재 작가는 알로펜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편은 책으로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편(경교)은 본지에 연재 중이며, 후속으로 몽골리니아 편까지 전 3권으로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작가는 전도자의 심정으로 호소한다

이 작품을 선교에 뜻을 가진 전문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일명 이단자 네스토리우스 파가 중앙아시아와 중국선교를 했으니 역사의 근거나 흔적도 없지, 그까짓 거 더 볼 것 있느냐고 할 사람들은 ‘나는 참으로 무식합니다’를 바닥에 깔고 말해야 한다.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는 결과적으로 이단이 아니었고 이단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들이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중국과 몽골 등지에서 활동한 선교 내용에서도 이단 근거가 없다. 다만, 그들은 도교나 불교의 심장부에 들어가서 토착화 경쟁을 하다가 대세에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네스토리우스 파가 유적이 너무 적다는 말을 하지만 1천6백여 년 전에 시작한 아시아 선교이면 로마 제국이 영국 선교 하던 때와 맞먹는 아득한 옛날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 남아있는 자료나 유적은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많다. 우리는 좀 더 아량을 가지고 깊이 관찰해야 한다.

둘째는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아시아 선교를 시작해서 계속한 선교 방법론이나 그들의 인내가 현대선교사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원주민 위주의 선교나 현지인 생활환경 개선을 복음전파의 중심내용을 삼았다는 점은 놀랍다. 그리고 그 시대 네스토리우스 파 선교사들은 목숨을 내던지는 ‘오직 희생’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셋째, 큰 틀에서 형식조건이 현대 선교사들의 선교방법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교방법이 일치한 네스토리우스 파 선교를 실패로 결산한다면 하는 수 없이 현대 선교 또한 실패할 것이다.
끝으로 본인은 작가의 심정 그 이전에 전도자의 본마음으로 오늘의 기독교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있다. 네스토리우스 파 천년 선교가 실패라면 지금 우리들의 선교 원칙과 방법론 또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들의 선교를 몇 백년 후의 후손들이 “실패였다”고 결산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무서운 경종이다. 독자여, 들소리신문 독자여! 작가의 심정이 가슴에 오는가? 그러면 알로펜의 아시아 선교 천년을 조금씩 읽으면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충고를 부탁드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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