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제2기의 과제 ④

당시 재세례파 신예 이론가 휘브 마이어와 쯔빙글리의 유아세례에 대한 논전을 보면 어른스럽지 못한 쯔빙글리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논리는 루터보다 급진적이면서 현실적인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독신생활에 자신감이 없었다. 심심찮은 여난으로 그의 투명한 개혁자의 길이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1523년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쯔빙글리와 함께 개혁시대, 인류 평등이요 농노제 해방기까지 마음속에 담고 있던 제2의 개혁그룹인 재세례파의 탄생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1525년 1월 21일 밤. 그들이 목표하는 교회의 앞날은 단순한 영아(유아) 세례 타파에 있지 않았다. 교회의 빛나는 앞날, 곧 회복의 날에 있었다.

재세례파의 사상적 뿌리는 ‘원형교회의 회복’이다. 원형교회의 모형은 ‘사도행전 공동체’(행 4:32~35)고, 사상적 배경은 요한복음 2장 19절이다.

마르틴 루터의 만인제사를 먼저 생각해보라. 이 사상이 구체화 되었으면 재세례파 운동은 만인제사론 안에 잠복했을 것이다.

루터의 성공을 기도하던 유럽 기독교 개혁은 루터가 농민반란군에게 대안을 마련해주지 못하면서 폭발하였다. 최선의 대안이 아니면 귀족과 농노들 사이에 화해를 시도하여 역사의 시간을 벌어야 했었다. 대한민국 격동기의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씨처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봄이지만 아직 봄이 아니라네)이라면서 세월을 1백년쯤만 기다려보자 했으면 유럽은 무혈혁명, 곧 18세기 영국의 웨슬리(Wesley) 혁명기 같은 날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에게는 그런 지혜나 힘이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교회(原形敎會)는 재세례파의 무한희생과 고난을 요구하면서 싸움판이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곧바로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1525년 1월 21일 밤 펠릭스 만츠 집에서 다시 세례를 받는 행동을 역사 앞에 제시했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 가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 모두의 공적이 되어야 했다. 반역이다. 세례를 다시 받는다는 행위는 신·구 기독교의 체제를 거부하는 공동의 적, 곧 사단의 세력으로 몰리게 되어 있었다. 그들의 죄는 선동, 무질서, 신성모독, 불경, 위선 등 모든 불법의 대명사를 자처해야 했다.

왜 그랬을까? 앞서 말했다. 체제의 거부다. 만국교회가 가는 방향의 이탈이었다. 결과론으로 말하면 로마 가톨릭이나 마르틴 루터와 그의 개혁의 동지들이 가는 동반의 길에 반역자가 된 재세례파에게 주어지는 역사의 형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시대의 역사 위에 그 어느 누구의 동반자가 될 수 없어서 죽고 무너져야 했듯이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사실상 옷만 갈아입고, 제사상 순서만 조금 바꾸는 식의 ‘시대 종교’ 노릇을 자처했을 때, 재세례파는 결코 동반을 거부했다. 로마 가톨릭과 함께 할 수 없었듯이, 시 의회와도 동반할 수 없다. 우리는 세속의 체제를 거부하고 완전한 개혁, 또는 예수의 종교 아닌 종교에의 도전이라고 했다.

다시 정리하면 재세례파의 구원적 요구(욕구)는 새 시대와의 만남이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와 야합하여 1천년 암흑기를 보냈으니 이제는 예수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분명한 견해였다.

재세례파는 여러 형태가 있다. 크게는 신령주의자들, 곧 성령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는 니콜라우스 스트로크(Nicolaus Storch)와 토마스 뮌처(Thomas Muntzer) 등 예언자 그룹, 이성주의자들, 또는 뮨스터 운동자들마저도 그들의 기본적 사상이 재세례파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들 모두(재세례파라는 이름)에게 급진, 열광, 심지어 반역자 그룹으로까지 교회 역사가들이 몰아붙이는데 지금쯤은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하고, 오늘의 21세기가 16세기 재세례파의 요구에 동반해야 한다는 자세를 피해서는 안 된다.

주요 제자들

1.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 1498~1526)
콘라드 그레벨은 쯔빙글리의 제자라기보다는 친구에 가깝다. 아주 친한 친구였다. 그는 또 취리히의 부유하고 유력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문은 취리히의 명문가로 통했다. 1517년부터 쯔빙글리와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를 했고, 1522년경에는 내적인 변화를 받았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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