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21

아제르바이잔 사도 다데오의 순교터로 전해오는 성지

열흘 지난 후 쿰바홀 부주교가 달려왔다.
“주교님, 못난 저를 아껴 주시고 또 이렇게 불러 주시니 가슴이 터질 듯 황홀하옵니다.”
“어허, 뭐 그렇게까지…. 내게 복이지, 이만한 재목을 하늘 길 동행으로 삼았으니.”
알로펜은 쿰바홀의 믿음직스러운 등짝을 어루만지면서 흐뭇해했다. , 더구나 그의 두 아들 쿰가그와 쿰보그는 알로펜 교단의 좌우 기둥과 같았다.
쿰바그가 달려왔다.
“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응, 그래 잘 있었는가? 나 지금 막 달려왔구나. 주교님이 이 늙은이를 살갑게 보살펴 주시니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네, 그러시죠.”
아버지의 말을 쉽게 동의했으나 쿰가그는 아들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주교님 앞에서만 모든 열성을 다 바친다고 생각되는 부친께 얼마간은 섭섭함이 있었다.
“주교님, 금번에 쵸코에 있는 본부의 터전을 넓혔습니다. 투루판 포도원 뒷산 일대 약 3만 평 정도의 야산을 모두 구입했습니다. 수도자들 3천명 정도는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려고 합니다. 주교님이 1년에 한 번은 오셔서 특강을 해 주십시오.”
“어디 한 번 뿐인가, 내가 더 자주 가봐야 하는데 늙은이가 돼서….”
“어찌 그리 약하신 말씀을…. 주교님은 앞으로 30년 정도는 뛰고 달리시며 주 예수의 아시아나라를 꼭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이는 이 쿰바홀의 기도이며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허어, 쿰바홀 부주교가 내 곁에 있으면 내가 힘이 난다니까….”
“그러면 곁에서 모시세요. 제가 대신 쵸코국으로 가서 부주교님이 하실 일을 할께요.”
마리아가 한 말이다.
“아이코, 마리아 교수님! 그간 강녕 하셨어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교님 곁에 꼭 마리아 교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주교님의 현역 활동 앞으로 30년은 마리아 교수님이 아침 저녁으로 동행해 주신다는 조건이 될 것으로 압니다.”
“뭘 그렇게까지….”
마리아는 쿰바홀의 말에 감동되어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그의 눈 가장자리가 은근히 젖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묶여야 한다….”
알로펜은 쿰바홀의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묶이다니요. 동행해 주시면서 보좌한다는 뜻이죠.”
“이보소, 쿰바홀! 그게 그거 아닐까. 그러나 일단 앞으로 30년 간의 계획을 짜야 하겠구먼. 그건 그렇고 쵸코는 물론 허탄과 쿠처 이야기 좀 해 주시오.”
“아, 네. 일단은 다들 잘 계십니다. 그보다 저를 급히 부르신 부르심은요?”
“그래. 그 일은 안토니가 말해 보시오.”
안토니는 쿰바홀에게 페르시아 난민들이 이주해 올 것을 가정한 건축계획을 말했다. 단순한 난민 이주가 아니라 금번 기회에 페르시아의 신자들이 이슬람 종파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외곽지원을 해 갈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자는 이야기이다.
“부주교님. 쵸코국과 사마르칸트가 중심이 되고, 쿠처나 허탄과 파미르 지역의 판지갠트까지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조언이었다.
“아니야. 쉐키와 트빌리시에 우수한 우리의 기업이 있지요. 비잔틴의 에뎃사는 페르시아의 길목을 지키는 곳이지.”
알로펜의 추가 확인이다.
“그리고, 아직은 당나라 황제가 강건하니 최소한 황태자의 대까지는 우리가 당나라의 협조를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은 사탄이 주관하고 있으니 지혜롭게 해 나가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모두가 알로펜의 조심성 있는 말에 동의하였다.
쿰바홀은 알로펜을 따라서 회관 건축 예정지로 갔다. 안토니와 쿰가그가 동행했다.
안토니의 현지 설명을 듣던 쿰바홀은 별도의 의견 제시를 했다.
“주교님. 지금 여기다가 큰 건물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당나라 조정의 눈도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의 실력을 늘 최소한으로 감춰야 합니다. 맹수들은 늘 자기의 능력을 감출 줄 압니다. 독수리가 태어나면 어미는 새끼에게 발톱 감추는 법부터 가르치고 호랑이는 새끼에게 본능을 감추는 능청스런 행동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곳에는 100평 넘지 않도록 건축하고, 그 대신 일단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야영장 시설을 준비하는 겁니다. 서역이나 중앙 아시아 초원에 가면 흉노나 몽골, 투르크 사람들이 짓는 천막집이나 북방인들의 게르 비슷한 이동식 주거지를 우리도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감추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주로 가난하고 비천한 하층민들의 현장에 그들의 수준에 맞는 주거를 마련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히야! 놀랍네. 쿰바홀! 주님이 우리 부주교 쿰바홀에게 하늘의 비법을 가르쳐 주셨구려. 나도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죠.”
“감사합니다. 주교님, 저는 주교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커가는 아이입니다. 더욱 가르침을 주소서.”
쿰가그는 그의 부친의 변화에 혀를 찼다. 알로펜 주교를 만난 후 그의 부친은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았다. 감히 가까이 대하기가 무섭기까지 했다.
안토니가 쿰바홀의 두 손을 맞잡고 머리 숙여 예를 올렸다.
“부주교님. 뵈올 때마다 선보여 주시는 지혜와 겸손의 힘을 저는 깊은 감동으로 받아들입니다.”
“뭘요. 저는 안토니 사제의 지식 앞에서는 어린애일 뿐입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자, 그럼 건물은 50명 정도를 수용할 크기로 짓고, 그 대신 이 산언덕에 임시 건물 10여 명씩 피난 할 수 있는 시설을 200개처로 예상하면서 우선 기초 공사부터 진행합시다.”

그날 밤. 알로펜 제자들 모두가 모여서 쿰바홀의 서역 지역의 선교 보고를 들었다.
쿰바홀은 치고 빠지기 전술, 또는 모였다 흩어졌다의 전술을 말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서역 땅은 일명 ‘성곽국가’로 이름하는 작은 나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오아시스 국가들입니다. 많을 때는 50여개의 나라가 천산과 곤륜산 지대를 중심으로 있었지만 현재는 30여개의 나라가 있어요. 저의 나라 쵸코국은 서역에서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도 정세가 늘 불안해요. 요즘도 흉노의 잔당들이 일년이면 한 두 번씩 출몰하여 분탕질을 하는 등 늘 불안을 안고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 이동, 하룻밤 이동, 조금 여우가 있으면 한 주간 준비해서 이동하는 생존법을 익혀야 합니다. 제가 예수의 복음을 모를때는 이같은 생활이 괴로움이었으나 지금 저는 여기서 최상의 축복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쿰바홀의 이 말에 청중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말을 맞추기도 했으나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어렵나요? 그럴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 가슴속의 탐욕, 그것이 목구멍까지 늘 차 있는 그 욕망 제거용 복음 훈련 방법임을 저는 발견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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