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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제2기 종교개혁의 발단8]종교개혁, 제2기의 과제 ⑧
조효근 목사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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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호] 승인 2014.03.13  1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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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수난이다. ①

체제의 도전자들이다. 목숨을 내어 놓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예수의 처지가 떠오른다. 그는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오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자들, 곧 예루살렘의 사두가이들 앞에서 예수는 자기들의 밥줄을 잘라버리는 인물이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셔야 예배(제사)를 드리지 사람으로 나타났으니 산 사람 앞에 제사 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제사장’이나 ‘제물’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감히 무슨 수로 명대로 살 수 있는가? 천하에 그 어떤 영웅도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예수께서는 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 북왕조 사마리아의 멸망기(BC 722년)부터 메시아를 본격적으로 보내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이 준비하지 못했다. 포로기(BC 586년)에는 강압을 행사하시기까지 하나님은 강권을 동원하셨다. 예루살렘을 때려부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당시 500여명의 예루살렘 선지자 무리들이 예레미야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님 명령에 귀를 막고 있었다.

메시아 강림이 싫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임마누엘 시대가 싫다는 것이다. 수많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날들을 흘러보내고 천신만고 끝에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오시자 겨우 3년 만에 갈기갈기 찢고, 패고, 꺾고, 못 박아 죽여 버리지 않던가.

예수가 펴고자 하셨던 참된 인간시대, 곧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사람과 함께 사시고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 같은 존엄을 지키며 이 세상을 하늘나라로 바꾸는 일을 소원하셨으나 하나님을 믿는 인간들이 다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의 권능으로 예루살렘의 사도 공동체(행 2:43~, 4:32~)가 잠깐 시작되었으나 율법주의자 사울과 그 일당들이 훼방을 놓았으며, 다시 카타콤 공동체 시절에 사도들의 공동체, 하나님이 친히 지도하시는 공동체 교회를 이루고자 했으나 로마제국의 술수에 휘말려 다시 1천여년이 유예되었다.

그러나,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왔다. 종교개혁기, 마틴 루터의 ‘만인 제사장론’이 보편화 되면서 스위스 취리히 형제단이 예수의 포부를 승계하고자 일어섰다.

소위 재세례 또는 재침례파로 분류하는 AD 1525년 1월 21일 결행한 취리히 종교개혁은 쯔빙글리나 마틴 루터의 개혁 사상과 고리를 달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 재세례파는 세속 국가에 교회가 종속되는 것을 거부했다. 제사권 등 그 어떤 성례집례권도 별도의 계급에게 위임할 수 없으며, 신앙과 인간행위 과정에서 그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 예수의 사람들이 당시 재세례파였다.

그들은 신앙고백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이유 없이 내어 놓았다. 1525년 1월 21일 밤 펠릭스 만쯔(Felix Manz)의 집에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세례(침례)를 준 10여명 모두가 그 해 가을부터 희생되기 시작하여 거의 모두 2년 이상 목숨을 지탱하지 못했다.

어느 날의 순교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한다. 공개 재판을 받은 젊은이가 목에 돌덩이를 메고 강물에 던져졌다. 강 하류를 따라서 젊은이는 물에 잠겼다가 간신히 목을 꺼내 들기를 거듭하며 떠내려 갔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이 울면서 강뚝을 따라서 달리면서 남편의 고통에 울부짖는다.

또 한 사람의 중년 여인이 젊은 여인과 서너 걸음 차이로 뒤를 따르며 소리 지른다. 아이 업은 여인의 시어머니다.

온 힘을 다해서 물속에 잠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강하구로 떠 내려가는 아들을 향하여 함께 달리는 시어머니가 숨가쁘게 소리 지른다.

“아들아! 조금만 참거라! 항복하지 마라. 천국의 천사들이 너를 기다린다. 아들아,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라. 조금만 더~”

어머니의 절규다. 어머니는 아들이 종교개혁자들의 공갈에 항복하고 강물 속에서 죽어야 하는 순교자의 길을 포기할까 봐서 아들의 초심(初心)을 지켜주기 위하여 항복은 안된다고 부르짖었다. 그의 아내도 차츰 남편 구출이 불가함을 발견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강물 속에서 더는 목을 뽑아 올리지 못하는 사내를 바라보면서 강가에 주저앉아서 통곡하면서도 아들과 남편의 신앙을 따르기로 최종 결심을 했다.

감독관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화형장의 불속으로 집어던졌다. 여인의 등에 업힌 아이도 함께.
이같은 실화는 1525년 재세례파가 역사 위에 등장하면서 1618년 30년 신·구교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당시 독일과 네덜란드 일대를 뒤흔들었다.

당시 재세례파 사상에 동의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 목숨을 희생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이 모습을 눈여겨 지켜보던 로마 가톨릭은 자기들이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대단한 것으로 잘못 알고 괜히 겁먹었다고 판단하였는지 30년 전쟁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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