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6:14~18

   
 

• 절망의 땅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오늘, 우리는 차마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 또 그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공포 가운데 바라보았을 사람들, 그리고 그 어린 자식들 생각에 억장 무너지는 슬픔에 잠긴 부모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픔이 오늘 우리가 불러야 할 기쁨의 노래를 삼켜버렸습니다.

2014년 4월, 주님이 못 박히신 골고다는 바로 저 차가운 바다였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의 손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은 알았을까요? 주님도 그 자리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물으며 그들 곁에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무리들,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이들을 보고 차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거기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숨을 거두셨습니다.

한 주간 내내 그뤼네발트의 그림 ‘십자가 책형’을 묵상하고,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며 지냈습니다. 부활절이 다가오는데도 도무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시간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모두 울고 있는데 어찌 우리만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찬양대에게 ‘할렐루야’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직은 그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만들어낸 이 땅의 참극 때문에 누구보다 아파하실 분이 주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너무 쉽게 부활의 영광을 노래하지 말아야 합니다. 깊게 절망하지 않고는 진정한 희망에 당도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아파하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참담한 상황 속에서 마가복음이 들려주는 부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마가복음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을 두 가지 단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였다’, ‘믿지 않았다.’ 제일 먼저 무덤에 달려간 여인들은 ‘그는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증언을 듣고, 무덤 밖으로 뛰쳐나가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지내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16:11).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돌아와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16:13).

그런데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14). 그 꾸짖음은 격노가 아니라 점잖은 책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과 ‘불신’은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선 인간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주님의 꾸짖음 속에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 꾸짖음은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하듯 인간의 인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애정어린 꾸짖음을 통해 그들을 부활의 현실 속으로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 새로운 소명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주님은 이제 당혹감에 휩싸인 제자들을 세상을 향해 파송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세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초대 교회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입증된 하나님 나라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은 지배와 피지배가 갈리고, 섬김을 받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이 갈리지만, 모두가 형제자매의 우애를 누리며 사는 새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귀히 여기고, 아픔을 나누고,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충만히 누릴 수 있는 세상의 꿈이 가뭇없이 스러지지 않도록 자꾸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울면서라도 씨를 뿌리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희생은 결코 헛되이 스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런 부활의 실재성이 드러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무서워하고’, ‘믿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현실 속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절망의 자리를 딛고 일어나 주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라 명하십니다.
저 진도 앞바다에 세워진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이 부활하심을 확고히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과 실천을 통해 이 땅에 오고 계십니다.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일, 모든 사람이 자기 몫의 삶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여는 일, 그것이 부활의 주님을 믿는 우리의 소명입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상처 입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과 우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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