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 37-16

프랑스 리옹. 때는 1176년 한 음유시인의 노래가 부유한 상인었던 피터 왈도(Peter Waldo)의 가슴을 움직였다. 왈도는 한 신학자를 찾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최상의 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왈도의 질문을 받은 학자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일러주었다. 가르침을 받은 왈도는 그날 즉시 자기의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바로 그 시간 그가 신고 있던 가죽신을 벗어서 던져버리고 탁발 수도행에 나섰다.

피터 왈도의 호소력은 탁월하여 당시 수천 수만 명의 제자들이 그의 뜻을 따랐고, 수도원 인허가를 관할 교구나 교황청이 내주지 않아서 그의 제자들은 이단자들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중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부르짓었다.

어느 날 피터 왈도가 성 프란시스의 모친 피카의 소녀시절 그녀의 고향 집 앞에 나타났다. 신앙심 깊은 소녀 피카는 골목길 저쪽에서 자기를 향하여 다가오는 거칠은 옷을 입은 덥수룩한 수염의 중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중년 남자는 그녀에게 가까이 오더니 물 한 모금을 요구했다. 피카가 물을 떠다 주자 그 사람 피터 왈도는 고맙다고 두 손을 모아 쥐고 인사를 하는데 피카의 마음이 움직였다. 따르고 싶습니다, 라고 했으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년 사내 왈도는 피카의 마음언어를 알아들었다. 뒷걸음질로 멀어져 가면서도 말 없는 소리로 피터 왈도는 피카를 부르고 있었다.

피카가 따라 나서려는 순간, 2층 발코니에 서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던 피카의 부친이 ‘안돼!’라고 소리치자 피터 왈도를 따라서 수도자의 길을 나서려던 피카의 발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카는 얼마 후 성 프란시스의 부친에게 시집을 갔다. 프란시스가 젖먹이이던 때부터 어머니 피카는 프란시스가 수도자 될 것을 위해서 기도했다.

앗시스 프란시스는 1226년 탁발수도자가 되었고, 피터 왈도에게 수도원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교황 인노센트 3세에게 수도원 허가를 받았다. 프란시스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인노센트 3세에게 ‘당신이 앞장서서 탁발행을 하고 거리 전도를 해야 할 터인데 그 일을 우리가 대신 하겠으니 수도원 인허장을 내 놓으라’고 고함 질렀다는 일화가 있다.

요즘 한국교회와 그 주변에서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 재산을 버릴 줄 아는 목사 한 사람도 없고 교황을 찾아가서 당신들이 갈라놓은 신구 기독교를 다시 하나로 합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신부 한 사람도 없는 씁쓸한 이때에 나는 1,000여년 전의 옛님들이 그리워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한국교회에도 인물 있으라. 도둑질하고 도망다니는 자들도 있고, 세월호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들도 대한민국의 법을 우롱하고 국민을 비웃고 있으나 한국교회여 어서 속히 인물다운 인물 내거라.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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