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2

▲ 아제르바이잔 최초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제단의 모형도.

 “아, 하!”
일시에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 침묵을 깨는 알로펜의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그렇소!”
그리고 다시 침묵이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만을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이어지는 찬송소리에 모두가 파묻혀서 뜨겁고 간절하게 찬송을 불렀다. 찬송 소리가 잦아들자 쿰바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당돌하게 이렇게 말씀 드리는 뜻은 일찍이 제가 받은 충격 때문입니다. 제가 초코에서 주교님을 만날 그 무렵인가 싶은데 627년경입니다. 그때 저는 저보다 훨씬 젊은 승려 현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어요. 그는 수나라가 당나라에 의해 망할 무렵 그의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라 불가(佛家)에 입문하였고 큰 목표를 가진 인물이었죠. 취경(取經) 차 천축국 여행을 떠나는 그가 초코국에 들른 일이 있어요.

우리나라 왕이 그를 붙잡고자 했으나 그는 죽음의 사막인 타클라마칸을 넘어 천축국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어요. 그가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것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몸을 버려라. 몸은 참나가 아니다. 몸에 사로잡힌 자는 참됨이 무엇인지, 부처가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 했습니다. 더는 그 승려 현장의 설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압니다. 거 있잖아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예수님은 훨씬 쉬운 말씀으로 우리의 갈 길을 말씀하셨죠.”

“쿰바홀 부주교님, 그때 현장 스님에게 국왕이 주고자 했던 선물이 있다면서요?”
삼손이 말했다.
“그래요. 사원도 크게 지어주고,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불교를 크게 일으켜 주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가 죽음의 사막 저 너머로 갔나요? 그럼 그는 지금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겠네요.”
“어허, 무슨 그런 질문이 있소.”
안토니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는 지지 않았다.
“왠가요? 불교는 사탄의 종교인데 그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어찌 넘겼을까요. 그가 죽기밖에 더 할까요.”
안토니가 다시 말했다.

“이봐요. 젊은이, 우리는 타종교에 대해 야박한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불교뿐 아니라 우리들과 가까이 부딪히는 중국의 도교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물론이고 마니교, 그리고 우리를 만나면 마치 죽일 듯이 덤벼드는 로마 교황의 기독교와도 늘 충돌을 피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천하 만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들 모두는 우리의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그리고 현장 승려에 대해서도 말씀해 드릴까요? 그분은 불경을 구하러 갔던 길에서 성공했고 지금 장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그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당나라는 도교와 불교를 자기들의 국교만큼 존중합니다. 우리는 뒤늦게 입국한 후발 종교로서 대접을 받고 있음을 늘 명심하고 조심스러운 언행이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만 하고 모두들 개인 기도나 묵상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마리아가 제안했다. 그리고 그녀는 쿰바홀과 안토니를 자기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부주교님은 먼 길을 오셨는데 피곤치 않으세요?”
“교수님, 저 아직 건강합니다. 호랑이도 잡아오라시면 잡아오겠습니다.”
“아, 농담도 잘 하십니다. 그건 그렇고, 현장 스님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저는 달마대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네, 저도 들었습니다. 법력이 뛰어나고 온 세상을 한눈에 바라보는 큰 인물이라 하더이다.”
안토니의 말이다.
“아, 우리 주교님 같은 분이 중국에 또 계셨군요.”
쿰바홀이 말했다.
“네, 그런데 그 승려가 천축국인가 페르시아 출신이라더군요.”
안토니가 다시 말했다.
“주교님은 그분에 대해서 일찍부터 잘 알고 계시나 보더군요.”
마리아의 말이다.
“아, 그럼 어찌 달마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이 없으셨을까요?”
쿰바홀이 놀란 눈으로 묻는다.
“왜 놀라시나요. 주교님 성품이시잖아요.”
“전에 한번 말씀하신 기억이 있는데요.”
안토니가 참견했다.

“주교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우리는 페르시아 난민들이 몰려올 것에 대해서 방법을 좀 더 자세하게 의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쿰바홀은 알로펜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주었으면 하고 출입문 쪽을 자주 바라보고 있었다.
“쿰바홀 부주교님, 그리고 안토니 사제님. 우리는 우리 기독교 역사에 뛰어난 인물을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요. 그래야죠.”
쿰바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막의 은둔자 출신 한 분을 소개하죠. 사막의 은둔자 안토니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교회에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가르침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그 말씀을 따라서 가진 재산을 다 버리고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의 뜻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내가 오늘 밤은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AD 347-420)에 대한 아름답고 눈물겨운 이야기 한 토막 들려드리겠어요.

히에로니무스는 어거스틴과 동시대 인물로 예민할 정도로 청빈하고 순결했어요. 그는 학문적 수준이 높아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탁월한 실력을 가졌어요. 당시 성경의 번역판이 조잡했는데 그것을 바로 잡는데 그의 번역 실력이 크게 공헌했답니다. 특히 그에게는 부유한 로마인 과부 마르켈라(Marcella)가 있었는데 그녀는 재혼도 사양하고 히에로니무스 수도사의 일을 적극 도왔어요. 그녀는 히에로니무스에게 배운 실력으로 나중에는 스승이 망설이는 부분을 명쾌하게 번역해낼 만큼이었답니다.

마르켈라는 스승을 돕는 뜻으로 또 한 사람 로마귀족 가문의 과부인 파울라(paula)를 동료로 함께하며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공동체 일원이 되었답니다. 파울라 역시 히에로니무스가 두려워할 만큼 뛰어난 학자였답니다.”

“….”
쿰바홀과 안토니는 말이 없었다.
“어찌 말씀들이 없으세요. 우리 교회 역사에는 참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 저들뿐일까요. 앞으로 저의 적은 지식이나마 역사인물들을 가끔 소개할게요.”
“너무 감동적이어서 입을 열지 못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중국선교에 있어 무엇을 더 서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암시하는 바가 있군요.”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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