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4

   

▲ 터키 에뎃사 박물관 뜰에 있는 네스토리우스 교단이 사용한 십자가 등 여러 조형물 문양이 각인된 돌 항아리.

 “저런! 이거 어인 일이옵니까? 죄스러워서 어찌합니까?”
알로펜은 피루즈 황태자 앞에서 의자에 앉았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를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서러웠다.
어려서부터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의 아들로서 지도자 훈련을 받느라 제국을 위해서 별도로 한 일은 없었으나 페르시아의 황태자가 피난민 속에 섞여서 이웃나라인 당나라까지 흘러 들어온 현실이 너무나 서글펐다. 세계 1등 제국 고레스의 파르시아가 알렉산더에 의해서 기울었으나 곧바로 파르티아 왕국, 그리고 주후 2세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고레스나 다리우스 대왕 시절을 회복했다고 믿었거늘, 저 아라비아 종족에게 조국을 빼앗기다니….

“알로펜 주교님, 진정 부끄러운 사람은 나요. 제국과 황제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가 크오. 그러나 어찌합니까. 훗날을 기약하면서 이 꼴로 여기까지 왔소이다.”
“….”
모두가 침묵. 애통한 눈물을 삼키면서도 앞날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들 중 마리아는 역사학자다운 판단력으로 피루즈 때문에 막 시작한 당나라 선교에 자칫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우려를 했다.
저녁 시간. 알로펜은 마리아, 쿰바홀 부주교와 안토니 사제 등 4명을 불렀다. 피루즈 황태자를 붙잡지 못하고 난민촌으로 돌려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서 우울해 있던 알로펜을 설득하여 마리아가 사실상 소집한 모임이다.

“제가 먼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피루즈 황태자를 우리가 모실 수 없었던 것은 자칫 우리의 선교 입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피루즈 황태자가 예배를 위한 방문 외에 우리 교단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당나라 조정이 싫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요. 마리아 교수 말씀이 옳습니다. 이미 페르시아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마, 로마보다 훨씬 강력한 이슬람으로 인해 제국 페르시아나 로마 기독교는 물론 우리들의 당나라,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선교기반도 위협 받게 될 것입니다.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안토니의 발언이었다.

“그래요. 정확한 진단이오. 마리아 교수나 안토니 사제의 안목은 높아요. 내가 인정합니다. 나는 오늘 낮에 피루즈 황태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후회합니다. 그때, 쿰바홀 부주교가 황태자에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권한 그 순간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렇다. 피루즈 황태자는 쿰바홀이 기독교에 귀의해 달라, 하나님이 황태자를 붙잡아 주시면 잃어버린 제국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던 말에서 큰 용기를 얻고 돌아갔었다.

“그렇습니다. 주교님! 이슬람이 저토록 거센 아라비아의 돌풍으로 몰아치니 당나라인들 안전하다고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아이고, 부주교님. 한계가 있어요. 중국에는 달도 차면 기운다는 격언이 있지요. 페르시아까지는 혹시 모르지만 중국은 아라비아 식 문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마리아가 쿰바홀의 우려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지금 당장 수녀원과 수도원 짓기를 마무리하도록 합니다. 두 수도원이 위치한 산언덕을 오리봉이라고 하고 싶소만.”
알로펜이 제안했다.
“그래요. 오리는 다정한 동물들이죠. 수녀원과 수도원도 각기 수도행에는 무섭도록 각각 노력해야 하지만 오누이처럼 지내야지요.”
안토니였다.

“안토니 사제. 수도자들이 오누이처럼 지낼 시간이 있겠어요.”
“마리아 교수님. 그래도 소망이라는 것이 있지요.”
“혹시 꿈꾸시는 마음 있거든 모두 지우시오. 날 보면 잘 아시면서….”
마리아는 알로펜에게 한번, 그리고 안토니에게 한 번씩 뚫어지라고 눈길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나는 수도원 쪽에는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 꿈은 오직 주교님을 닮고, 그 뒤를 이어 당나라 땅에 묻힐 때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만 몰두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께 영광….”
쿰바홀이 두 손을 높이 들어 할렐루야를 외쳤다.

“여러분, 수도원과 수녀원이 완성되면 페르시아 난민들 중 신자들을 남녀로 구분하여 각기 시설에 수용합니다.”
알로펜의 말이었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요?”
“가족끼리는 임시 숙소를 만듭니다. 가족 중에 고령자나 환자가 있으면 이곳 본관 시설을 개방합니다. 아시겠어요.”
모두 찬동이었다.

“그리고 난민 문제가 정리되면 페르시아 제국 내의 신자나 교회들 현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사마르칸트나 중앙아시아 각 지역 사정도 살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마리아 교수님이 드보라와 함께 조사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딱딱해진 알로펜의 지시였다.

마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주교님! 저녁 모임 때 우리 본부 선교단의 좀 더 효과 있는 선교를 위한 독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요. 나 역시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마리아 님.”
“네, 님자를 붙이면 교수님까지로 해서 부르세요. 쿰바홀 부주교님, 좀 도와줘요. 주교님은 아직도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헉, 그러실 리가 있나요. 주교님이 마리아 교수님을 얼마나 소중한 동지로 모시는데요.”
“네, 알아요. 그건 동지지 어디 제잡니까? 제자이면 가끔씩 ‘마리아야’라고 불러주셔야죠.”
“그건 그렇군요.”
안토니가 킥킥, 웃다가 한마디 했다.

“두 분 왜 그러세요. 저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오늘 저녁식사나 교수님 요리 솜씨를 발휘하셔서 저희 모두 회식을 하면 좋겠군요.”
“엉뚱하게 무슨 회식…. 아니야, 그거 좋군요. 제가 솜씨 발휘를 해볼게요.”
마리아가 밖으로 나가고 알로펜은 무엇이 좋은지 피루즈 황태자를 만났을 때와는 달리 얼굴이 환해졌다.

저녁 모임 시간이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 좀 더 진실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으면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페르시아의 황위 계승자 1번인 황태자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장안으로 망명해 왔습니다. 황제는 산악지역 부족들을 의지하여 피신하고 있는 지경으로 영광의 제국이었던 페르시아가 아라비아의 이슬람 군대에 의해서 장악되었습니다. 어디 페르시아뿐인가요. 이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며 기독교의 도시 안디옥, 다마스커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아라비아 이단자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지 말고 내일부터는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하층민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파해야 합니다.”

“옳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토니 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결의에 찬 화답에 저 안토니는 감격했습니다. 다음은 마리아 교수님이 말씀하시겠습니다.”
“여러분, 페르시아 이슬람에게 먹히고, 또 우리가 이슬람에게 마치 쫓기는 듯한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압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으로 치료받아야 할 상처가 있습니다.
이슬람은 더구나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숙한 아이와 같습니다. 물론 로마제국 교회가 저들에게 치명적 약점을 보였고, 저들 이슬람은 기독교의 약점을 자기들의 강점으로 삼아서 지금 득세하고 있습니다.”

“저기요, 잠깐. 죄송합니다. 무엇이 이슬람의 약점이고 또 무엇이 강점인지가 궁금하네요.”
드보라가 질문했다.
“저도 주교님께 배워서 조금 알고 있어요. 주교님이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니오. 계속 말씀하세요.”
알로펜이 마리아에게 위임했다.
“그럼 제가 아는 대로 말씀 드리죠. 아라비아 종교의 약점은 십자가의 대속을 모르고 삼위일체 원리를 못 배운 것이지만 그들의 강점은 기독교가 놓친 종교와 세속권력 관계를 단일화 했다는 점입니다. 종교와 정치의 단일화는 계속해서 이슬람의 위력이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 기독교와의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문제는 기독교 역시 이슬람의 약점 부분인 십자가의 대속이나 삼위일체 신앙의 취약함은 같습니다. 무함마드가 10년이 넘도록 배우고자 쫓아다녔으나 기독교는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지 못했답니다.”
“왜요. 왜 그랬을까요?”
드보라의 계속되는 질문이다. 그녀의 질문은 몰라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재교육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르니까 못 가르쳤지요. 아마 앞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은 마치 숨바꼭질 하듯이, 또는 서로 속고 속이듯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계 역사의 동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모인 사람들 중에서 탄식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네스토리우스 제자들이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원형을 복원해내고자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알로펜을 강단으로 나오도록 권했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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