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7

   
▲ 서역의 성벽국가 중 하나인 쿠처 여행 중에 이슬람 모스크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필자.

알로펜은 마리아의 빠른 발걸음을 무심한 듯한 눈으로 바라본다. 왜 저렇게 안타까워할까? 그는 마리아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 뒤따라 걸으며 드보라의 부축을 받는다.
“주교님, 좀 어떠세요?”
드보라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 괜찮아요. 어젯밤 잠을 설친 몸으로 무리한 외출이었나 봐요. 미안해요.”
“다행이시네요. 주교님은 마리아 교수님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세요. 그러지 마시고 이제는 두 분 다 연로하신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시면서 우리들의 선교에 차질 없게 해 주세요.”
“지금 잘 하고 있잖아요.”
“제가 볼 때는 주교님이 마리아 님의 마음을 자꾸 외면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힘들다고?”
“마리아 교수님이시죠. 솔직히 말해서 주교님은 교수님에게 갚을 수 없는 평생 부채를 지고 계십니다.”
“거 무슨 억지야. 내가 누구에게 빚을 지다니….”
“그걸 모르시니 지금도 빚이 늘어나고만 있어요. 마음으로 갚을 수 있는데도 모르쇠 하고만 있으시니 제가 보기에는 두 분 다 너무나 답답해요.”
“갑자기 왜들 이러는 거야. 나와 마리아가 같다는 것인가?”
“그래요. 참 그러네요. 두 분 다 조금씩 둔하세요. 어른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두 분 다 바보 같아요.”
“어허! 드보라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알로펜이 드보라를 꾸짖었다. 그러나 드보라는 알로펜을 바라보며 웃기만 하다가 더 정확한 말로 접근했다.

“주교님, 마리아 교수님 만난 지가 50여 년이신데 이제는 마리아 님을 주교님 가슴에 정착시키세요. 두 분 다 사도 바울 같은 독신형도 아니시잖아요.”
“그럼, 독신형은 아니야. 살아가면서 늙었지.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야. 그리고 여러분도 혹시 오해하지 말고, 이곳 중국에 정착한 이상 결혼을 희망하는 이들은 결혼해야죠. 드보라는 내가 보니 안토니가 관심 있어 하던데….”
“아니에요. 저는 주교님이시면 모르나 불가한 이상 독신수도자로 남겠어요.”
“하, 내가 드보라에게 인기가 있구나.”
“주교님, 농담 마세요.”
“나 농담 아니야. 농담이면 드보라가 했지.”

“저도 농담 아닙니다. 주교님! 만약 마리아 교수님이 주교님을 감동시키지 못하시면 제가 정식으로 도전할 거예요. 아니면 지금부터 마리아 님과 공동전선으로 주교님에게 항복을 받아볼 겁니다.”
“야, 이를 어찌 하나.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알로펜은 드보라와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즐겁게 나누고 있었다. 마리아가 가던 길을 멈추고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두 분이 즐거우시네요.”
마리아가 싱글거렸다. 알로펜을 몰아세우던 성깔도 잦아든 얼굴로 드보라와 알로펜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스승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더 이상 주교님의 건강을 방치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오늘 일은 하나님이 주신 위험신홉니다. 더 이상 고집부리면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일 수 있어요.”
“그래, 드보라가 잘 보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드보라, 고마워요.”
“스승님, 고마워하지 마시고 방심도 마세요. 자칫 제가 주교님을 독차지할 수도 있어요.”
“허어, 내가 물건인가?”
알로펜은 두 여인 앞에서 모처럼 껄껄껄 웃었다.
마리아가 드보라의 등을 토닥이면서 알로펜 옆으로 서서 걷는다. 알로펜은 두 여인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기 서재에 자리 잡는다.

저녁때가 되자 알로펜의 제자들이 그들의 터전인 파사사(대진사)로 돌아왔다. 유승이 말했다.
“주교님, 내일 영진사 주교 일행이 주교님을 한번 찾아뵙자 하시더군요. 가능할까요?”
“그래, 겨우 이제야 찾아온다 하던가요?”
“아, 네. 많이 망설였다 하더군요.”
“그래요. 뭐 다른 일은 없었나요?”
알로펜은 유승이 미적대자 또 다른 할 말이 있는가를 물었다.

“네, 영부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을 찾으러 왔습니다. 저를 따라왔어요.”
“그래, 그럼 데려가라지 뭐.”
“그런데 야단이 났습니다. 영부는 떠나지 않고 주교님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 애의 부친이 손찌검까지 하면서 윽박지르는데도 한사코 싫다 하는군요.”
“그래요?”
알로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부의 부친 서역 사람 진홍채를 만나러 갔다.
알로펜을 보자 영부가 울면서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주교님! 저 안 가요. 여기서 예수님과 같이 살겠어요.”
발걸음을 멈춘 알로펜이 진홍채와 인사를 나눈다.

“제가 부실하여 풍물장터에서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이제 보니 존귀하신 대감님께서 잘 보살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아비의 도리로 영부를 데려가야 하는데 저놈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할까요?”
진홍채는 알로펜 앞에서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굽실거렸다.
“그럼, 내게 맡겨두세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아이쿠! 대감님, 영부 놈이 어르신을 배우고 싶다더니 저놈이 어르신을 제대로 알아보았네요. 감사합니다.”
영부는 그날로부터 안토니를 통해서 신앙훈련을 했다. 공부 또한 게으름이 없도록 배려를 했다.

다음 날 정오 무렵 영진사의 승려들이 알로펜을 방문했다. 일행이 여덟 명이었다.
“주교님, 저는 영진이옵니다. 유승 도사님의 가르침을 가끔씩 받다가 오늘에야 높으신 어른을 뵙습니다.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아닙니다. 다 같은 수행자의 길동무인데 누가 누구를 가르칩니까. 잘 오셨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얻었으면 했는데 오히려 저에게 배움을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주교님!”
영진은 알로펜 주교의 호칭을 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토니와 유승이 주교 옆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유승과는 친구나 다름이 없는지라 그는 편한 마음으로 파사사를 찾아온 것이다. 또한 유승으로부터 알로펜이 누구인가를 충분히 들었다. 황제 당태종의 스승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주교님, 황제 폐하와 성경공부는 언제 하셨습니까? 부럽습니다.”
“부럽기는요. 황제는 어려서부터 도교나 불교는 충분히 공부하신 분입니다. 뒤늦게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자 하심은 통치자의 덕목으로 기독교를 알고자 하시는 것이겠죠. 그리고 무릇 종교는 대강 그 기본에 일치합니다. 영진 주지께서도 불교의 도리를 붙잡으면 기독교와도 만나는 셈이니 그리 아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안토니가 끼어들었다.

“주교님, 안 됩니다. 종교들은 저마다 특성이 있고, 우리 기독교는 충분히 별도의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영진 주지가 안토니를 유심히 살폈다. 서양 사람처럼 생긴데다가 서양식 이름을 쓴다 했더니 눈매도 날카롭고 주장하는 바도 뚜렷했다.
“안토니 사제님이시죠. 기독교만의 존재 이유를 저에게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네, 그러시죠. 기독교는 임마누엘이라 하여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법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처럼 산다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런가요. 그 점에 있어서는 사람이 곧 부처라는 화엄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군요.”
“네, 그렇지만 그것은 가르침이시고, 예수께서는 사람이시면서 또 하나님으로 모든 인간이 예수의 길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셨지요.”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석가모니와 부처가 만나는 은혜의 법칙을 누누이 우리에게 설법으로 남기셨죠.”

“그만, 그만!”
안토니와 영진 주지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알로펜이 말길을 가로막았다.
“다른 말이 필요 없지요.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은 道가 道이면 非常道라 했답니다. 진리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마지못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말이요 글이지 그보다는 사람의 모형으로 말해야 한답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알로펜 역시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안토니가 크게 웃었다.
“결국은 말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군요.”
“….”
누구도 그의 웃음과 함께 정리한 결론에 대해서 반응이 없었다. 영진 주지가 일어선다. 저는 오리봉 수도원에 가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좀 쉬어볼까 합니다. 그는 혼잣소리처럼 흘리면서 오리봉으로 가고 있었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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