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설립자: 이그나시우스 로욜라)가 주변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후터라이트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고 광분하고 있었다.

예수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을 몰수하기 위하여 후터라이트 마을들을 동시다발로 공격하였다. 역사와 신앙고백, 설교 자료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나 문서들을 없애버리면 후터라이트의 개종이 훨씬 쉽다고 판단했다. 그때 가톨릭의 사냥개 노릇을 했던 예수회의 공격을 피하여 벽 속에 숨겨두고 회반죽을 발라둔 책들이 3백여 년 지난 오늘날 발견되기도 한다.

가톨릭 예배에 참석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상은 아이들이 먼저였다. 부모들이 감옥에 있고 어린아이들이 남아있는 곳마다 예수회는 찾아가서 아이들을 가톨릭교회로 데려갔다. 부모는 잡혀서 매질과 혹독한 고문으로 죽어가고 나머지 아이들과 노약자들은 가톨릭의 회유와 강요로 무너져갔다.

1763년 경 헝가리 후터라이트는 거의 모두 가톨릭이 되었다. 이러한 후터라이트 후손들이 헝가리 현지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그들은 후터라이트 전통의 주요부분을 이어가고 있으나 그들의 외형 종교는 가톨릭이다.

후터라이트의 특징은 재세례파의 멘노나이트나 아미쉬와 달리 물질을 공용으로 나누어 쓰는 공동체로서 결속력이 남다르다. 폐쇄적이기도 할뿐 아니라 지금도 미국이나 캐나다 지역 공동체가 대략 5백여 개 처로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다 모른다.

더 이상 핍박을 피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가톨릭 신자 노릇을 하면서도 후터라이트의 정신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을 알 수 있다.
신·구 기독교 30년 전쟁 시 회유와 속임수, 강압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생존력을 발휘한 것은 멀고 가까운 어느 곳엔가 살고 있는 후터라이트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만 붙어있으면 그들은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드디어 오스만튀르크와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가 전쟁을 시작한 1658년부터는 박해가 끝났고, 전쟁이 끝나는 1661년 무렵까지 숨어 살았다. 그러나 다시 그들은 러시아가 주는 혜택을 떠나 또 다시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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