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목사 / 삼일교회

내편만 사랑하는 지도자는 나라도 교회도 분열시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지도자들이 먼저 진정으로 자성해야 합니다

 

   
▲ 하태영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모세 혼자서 무려 60여만이나 되는 백성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비효율적이기도 했거니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지휘관 혼자서 작전, 보급, 훈련, 치료, 재판 등 모든 일을 감당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세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백성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모세는 백성들 가운데서 경륜이 많은 사람 70인을 장로로 세워 일을 분담케 하기 위해 그들을 하나님의 성소인 장막에 둘러 세웁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영이 장로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장로로 선임된 70인 가운데 엘닷이라는 자와 메닷이라는 자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회막에 나가지 못하고 거처에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한 소년이 이걸 지켜보고 모세에게 달려가서 사실을 고합니다.

그러자 모세 곁에 있던 여호수아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이건 영도자 모세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야, 제 멋대로 하나님의 예언을 하다니.’ 이렇게 충성심이 발동해서 “영도자이신 모세여, 저놈들이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엄히 금하십시오”라고 간언합니다. 모세의 반응입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는 여호수아가 두 사람을 시기한다고 하지 않고 “나를 시기하느냐”고 되레 여호수아를 나무랍니다. 모세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측근정치를 하는 사람 같았으면 여호수아의 말대로 ‘이 고얀 놈들!’하고, 엘닷과 메닷은 곤죽이 됐을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했습니다.

‘주인보다 더 고약한 게 종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성 경쟁은 동료 인간에 대한 시기심과 서열의식에서 비롯됩니다. 고약한 주인은 내편은 무조건 사랑하고, 내편이 아닌 자는 무조건 배척합니다. 이런 음침한 분위기는 지금도 권력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 최고 권력의 측근들은 참혹한 일을 당한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대통령 비위 맞추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내편은 무조건 끌어안고, 내편이 아닌 자는 무조건 배척하는 권력자 주변 풍경입니다.

이 고약한 동료 인간에 대한 시기와 서열의식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수제자 요한이 여호수아 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막 9:38).

여호수아는 그래도 모세에게 먼저 자기 생각을 여쭸는데, 요한은 아예 예수께 묻지도 않고 처리해버렸습니다. 그것도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가 아니라,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정점으로 한 서열구조 가운데서 자기 나름의 하부구조를 거느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막 9:42)는 바로 이런 제자들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작은 자’는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아직 온전히 예수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에 대해서 호감을 지닌 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자기 조직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적대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를 대적하는 죄악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성령강림 사건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행 2:42~47). 서로 질투하는 일도 없고, 시기하는 일도 없습니다. 누구를 경계하는 일도 없습니다.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보살핍니다. 저들 가운데서 높임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성령 강림의 결과로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이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는 말씀입니다. 이 당시 사도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삶과 일치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실질적으로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내편만 사랑하는 지도자는 나라도 교회도 분열시킵니다. 안에서는 부패가 만연합니다.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지도자들이 먼저 진정으로 자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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