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들 중 ‘메노나이트’는 교회운동과 공동체 운동을 겸한 개혁파 교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주까지 소개했던 ‘후터라이트’는 공동체운동을 원칙으로 하여 사명을 다하려 하고 있다.

오늘은 ‘아미쉬 공동체’를 소개한다. 아미쉬인들은 독일, 스위스, 알사스에서 살던 사람들이 심한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1737년 최초의 아미쉬 공동체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란카스타 시에 정착했다. 이어서 1815년, 1860년 추가 이주민들이 유럽을 떠나 미국행을 결행했다.

또 아이오와 주에 1846년에 세 가정이 정책했다. 그러나 아이오와 칼로나에 먼저 정착 공동체를 이룬 아미쉬가 너무 세속화 되었다는 이유로 추가 이주 계획을 가진 아미쉬들이 더 북쪽으로 옮겨 하젤톤 가까이 부차난 시에 둥지를 틀었다.

아미쉬파는 스위스 재 침례운동 출신들로 그들은 루터나 칼빈이 주도하는 우파 개혁운동에 거부의사를 밝히고, 좌파 또는 급진파라는 대접을 잡으면서 신·구 기독교 세력들로부터 비난과 핍박을 감수해야 했다.

아미쉬도 메노나이트나 후터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유아세례, 즉 태어나자마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받는 세례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례 서약은 보통 16세부터 18세에 하는데 세례 전에 6~8번 정도의 ‘신앙교육 모임’에 참여한다. 세례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은 사는 날 동안 교회공동체의 규범을 따르겠다고 엄숙히 선서한다.

아미쉬는 예수의 삶과 산상수훈을 모범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가족 공동체의 결속과 형제애를 중시하며 세속과 분리된 삶을 살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하지 않으며, 겸손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들은 상대방의 욕설이나 폭력에 대응하지 않으며, 타인이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대주라는 가르침을 실행한다.

또한 그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아미쉬인들은 감옥에 갔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또한 신앙에 따라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며, 정부 일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타인이 자기에게 죄를 범해도 법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부러 전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미쉬 신앙을 깊이 체험하기 위하여 심도 있는 훈련을 받고 ‘세상의 빛’이 되기를 원하고, 그들의 모든 소원이 행동으로 표현되기만을 열망한다.

아미쉬는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한다. 여기에는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공동체의 계율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미쉬는 오늘까지 500여년 가까이 초심을 이어가며 그들의 순수를 지켜내고 있다.

 

조효근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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