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푸(Bapu=father) 함석헌의 삶-(52)

함석헌에게 있어 간디는 그렇게 ‘기대어온 언덕’이었음에도 함석헌은 그 약속의 땅 인도를 목전에 두고 또 하나의 약속의 땅을 찾아 되돌어와야 했다. 미국의 초청으로 고국을 떠날 때 함석헌은 약 3년여의 ‘나그네살이’(해외여행)를 계획하고 출국했었지만 그마저도 그에겐 여의치가 않았다. 박정희의 소위 그 군정 연장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 박정희의 군정연장 획책

“박정희의 칼 휘두름” 그것은 뜻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함석헌에겐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함석헌이 박정희의 5·16을 얼마나 죄악시했는가는 박정희가 그 군사쿠테타를 일으킨 바로 다음 달 사상계 7월호(6월호는 이미 5월 그달에 편집이 종료되어 있었으니까·필자 주)의 〈5·16을 어떻게 볼까〉에서 환히 공표된 것이지만 그 이후 그가 직접 창간해 반포하던 월간 〈씨 의 소리〉 1971년 10월호에 발표한 ‘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가 밝혀주고 있다.

“칼이냐 붓이냐.”
“붓이 이긴다.”
“5·16은 빗나간 칼이다. 빗나갔기 때문에 치노라친 도둑은 놓치고 딴 것을 쳤다. 첫째, 그 자신의 목을 쳐서 군인정신을 잃게 했고, 국민자격을 잃게 했고, 인간성을 잃게 했다. 그리고 나라도 죽고 도리도 죽었다. 내리쳤던 칼을 다시 뽑아들었을 때 거기 엎디어져 있는 것은 공(公)이요, 남아 있는 것은 사당(私黨)이었다. 이 10년 정치는 한마디로 공화당을 위한 것이었지 “나라”는 그 눈에 있지 않았다. 칼을 뽑아 들고 ‘모든 사회단체는 해체하라’ 했다. 꿈쩍 못하고 그대로 했다. 칼이 이겼다. 그러나 바로 자른 것일까? 빗나갔다. 모든 사회단체가 죽었을 때 죽은 것은 그 단체만이 아니다. 이 나라의 이성이, 문화가, 의식이 죽음을 당한 것이다.”

함석헌의 죽기로 부르짖는 사자후는 계속된다.
“…생각해봐라. 칼을 설혹 쓴들 어찌 그렇게 쓰느냐? 군인은 칼을 알아야 하는데, 첫째, 칼은 집에 꽂아두는 것이지 뽑는 것 아니다. 집에 둔 채 대적을 이기는 것이 정말 군인인데 네가 몰랐고, 또 뽑는다 해도 칼은 밖에서 쓰는 것이지 어찌 안에서 쓸 수 있느냐? 칼을 집안에서 쓰는 놈은 도둑이다. 반드시 제 집과 저를 망친다. 60만 칼자루(60만군대·필자주)를 이 좁은 집안에서 10년이나 휘둘렀으니 결과가 어떻겠나 생각해봐라!”

# 하나님의 현현으로서의 씨알

함석헌은 씨알을 사랑했다. 함석헌에게 있어 그 씨알은 하나님의 현현이었다. 그래서 함석헌에게는 그 씨알 섬김이 곧 하나님 섬김이었다. 그래서 함석헌에겐 박정희 군부의 씨알 업신여김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십년 군인정치의 가장 큰 죄악은 씨알을 업신여긴 일이다’라는 박정희 군인정치에 대한 그의 정죄는 그의 정신사(精神史)를 웅변한다.

함석헌의 군인정치에 대한 거부는 그의 철학이자 존재이유였다. 그는 세계여행길에서 돌아오기 두 달 여 전 영국에 체류 중 사상계의 장준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선생님의 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 국내 정치 분위기는 민정 이양은 물 건너갔고 군정의 연장이 굳어져가는 형국이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며 쿠데타 세력을 향해 ‘민정이양’을 재촉하는 글이 있어야겠다는 호소(?)였다.

함석헌은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펜을 들었다. 그래서 나온 글이 역시 박정희 군사정권을 정면으로 고발한 그 유명한 글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이다. 백천간두(百天竿頭)에 놓인 조국을 구출하기 위해 은인자중하다가 일어섰다는 그 군을 향해 “지체 말고 지금 군으로 돌아가라”고 질타하는 글이다.

“민정으로 돌아가는 길 묻느냐? 어려운 것 아니다. 간단명료하지 않느냐? 군인은 단도직입이라더라. 이야말로 사뭇 들어가는 칼같이 뻔한 진리지. 군인이 정권 쥐었으니 민정 되려면 군인이 물러서는 거지. 무슨 다른 복잡한 것이 있겠나? 물러설 마음이 없으니 헌법개정이요 민의요 하지, 깨끗이 물러설 사람이 토론이 무슨 토론이냐? 군인은 깨끗해야 한다, 늘 하는 말 아닌가? 소견이 옳았거나 글렀거나, 하여간 생각에 군정을 꼭 해야겠다 하거든 내놓고 군정이라 해라! 또 권력 좀 쥐고 해먹고 싶거든 그렇다고 해라! 호랑이도 내놓고 호랑이 노릇하고 독수리도 청천백일에 내놓고 남의 고기 먹는데 너라고 못할 것 없지 않어? 어차피 민중을 사람으로 아니 여기는 바에야 주저할 것 없지. … 사람의 간 잘라서 술안주 하면서도 태연한 일본군 있었다더라….”

#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함석헌은 이 글에서 내놓고 민중을 선동한다. “예로부터 오늘까지의 역사는 민중투쟁의 역사다. 정부마다 정부가 곧 나라라고 설명을 붙여 민중을 속이려 하지만 정부와 나라는 다르다. 나라에 대하여는 무조건 충성을 해야 하지만 정부에 대해서는 늘 감시하고 싸워야 한다. 오늘 제 손으로 뽑아 세운 정부라도 내일부터는 그것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만 옳은 길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봉건시대의 도덕에서조차 나라에는 싸우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 했다. 정부정치가가 민중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함석헌은 덧붙여 말한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게 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없이는 안 된다. 독재정치 하는 사람들의 답답한 점은 자기의 의견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제 딴에는 국가를 위해서라 하겠지만 네가 하는 생각이라면 누구도 한다. 스스로 영웅인 듯하는, 스스로 나라일 맡은 듯 생각하는 그런 구식머리 좀 고쳐라. 이 시대를 모르나? 매스컴의 시대라 하지 않나? 인생(生)이 예와 다르다. 한 사람이 걱정해서 천하를 건진다는 생각은 이제는 인생을 망치는 생각이다. 너는 겸손히 민중에 물어라. 그러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 신문잡지를 마비시켜놓고 민정이 무슨 민정이냐?”

그러면서 함석헌은 깬 민중들에게 감옥으로 가라고 선동(?)한다.

# 살고 싶으면 감옥으로 가라

“진리란 참 묘한 것이다. 자유를 구속하는 자들이 민중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감옥을 짓지만 자유는 감옥에서 알을 까 가자고 나온다. 그러므로 진리는 막강하다. 압박하는 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할수 없이 감옥을 넓히고 높일 것이다. 그러나 감옥이 넓어지고 높아질수록 자유의 길은 열려오는 것을 어찌 하나.
민권을 찾고 싶다면 감옥으로 가라!

살고 싶거든 죽음의 입으로 들어가라!
군정의 종식과 민정의 복귀를 위한 싸움은 그야말로 극렬했다. 현실적인 힘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가 싸울 수 있는 무기라곤 말을 내놓을 수 있는 그의 입, 글을 내놓을 수 있는 붓(pen)뿐이었다. 그의 죽고 살기를 초월한 투쟁은 기어히 새 일꾼들을 불러내기에 이른다. 박정희의 군사정권에 찍소리 못하고 있던 신문들이 그 머리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간부가 심야에 함석헌을 찾아왔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사상계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에 저희들 역시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좋으니 글 하나 써 주십시오. 보도하지 못한 채 주신 글을 버리는 일은 맹세코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조선일보사의 그 요구가 있은 그 밤, 함석헌은 100매의 원고를 써냈다. ‘3000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라는 글이다.

이 글은 여섯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첫 단락이 ‘박정희 님에게! 남은 길은 공약준수뿐’이라는 글이다.
“박정희 님, 내가 당신을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양심을 가지고 이성을 가지는 인간 박정희 님으로 알고 대하고 싶습니다. 지위란건 관 덮개 밑에 들어가는 날 같이 떨어져 버리고, 사업도 비석의 글자가 지기 전 먼저 무너져 버리는 것이나 영원히 남는 것은 양심과 이성으로 쌓아 올린 인간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과 군사혁명 주체 여러분의 애국심을 인정합니다. 여러분의 정의감과 의협심도 모르지 않습니다. 나는 또 혁명정부가 이날까지 해온 일 중에 여러가지 잘한 것이 있는 것도 알고 칭찬하기를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 군사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나라를 바로잡자는 목적은 좋았으나 수단이 틀렸습니다. 그리고 수단이 잘못될 때 목적은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여러분은 나라의 기본이 되는 헌법을 깨트리고 직접 정치에 손을 댔을 때 후에 올 수 있는 모든 군사적 동란(반란·필자주)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 또한 여러분은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론 얻지 못합니다. … 보다 큰 잘못은 공약을 아니지킨 것입니다. 당초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국민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있어서는 아니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혁명공약을 세우고, 그 공약을 이수한 다음엔 원대로 복귀한다는데… 묵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한 2년이 다 되어도 물러갈 생각은 아니하고 미리 정당을 만드는가 하면 박정희 님이 출마한다 했다 아니한다 했다 하는데 아주 실망을 해버렸습니다.
… 박정희 님, 박정희 님이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제 오직 남은 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이 지킬 태세를 민중 앞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 다음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하는 내 맘도 슬픕니다.”

원고는 전문 그대로 보도되었고 이어서 동아, 경향, 한국, 하는 신문들도 앞다투어 함석헌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문 대 골
생명교회 원로 목사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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