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9년 된 김포시 통진읍 열린문교회(방성문 목사)의 열정적인 신자·이웃 사랑 이야기

1년에 두 차례 배추나 파 등 독거노인·주민에게 무료로 나눠 ‘아, 열린문교회!’
어린이 전도, 자연히 ‘부모 전도’로 이어져-결손가정 자녀 위한 ‘공간’ 기도 중
상가 월세 건물이면서도 개척 당시부터 선교 시작, 2년 전 캄보디아에 교회 건축

 

 

   
▲ 방성훈 목사

열린문교회(방성문 목사·59)는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마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올해 9주년을 맞는 열린문교회는 어린이, 학생부와 장년 7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9년 전에도 개척은 쉽지 않은 선택의 길이었다. 더군다나 방 목사는 뒤늦게 신학의 길에 들어서서 50세에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개척교회이면서도 열린문교회는 지역 주민들 선교와 해외 선교에 열정이 대단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을 보면 젊은 부부들이 많은데, 대부분 이주노동자, 새터민, 서울에서 이사 온 이들이었다. 노인들 또한 적지 않았다.

방 목사와 전수윤 사모는 교회가 이들을 위해 무언가 줄 수 없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척 다음해에 남대문 업체에서 7박스의 옷을 보내왔다. 그래서 이것을 마당에 풀어놓고 ‘바자회’를 열었다. 500원씩 받고 진행하자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몰려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이것을 계기로 ‘행복나누기’를 지역주민들과 계속 했다. 좋은 배추, 파 등 농산물과 계란을 저렴하게 구입해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주민들에게 1년에 한두 차례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첫 회엔 배추 300포기를 160여 가정에게, 다음해에는 대파 170단을 150여 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 입에서 ‘열린문교회’가 오르내리고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개척단계에서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감당해 왔을까. 그것은 이들 부부의 복음 열정과 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 헌신이 돋보인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사모가 몇 년 동안 어린이집 교사 일을 했다. 4년 정도를 건장한 아들 2명과 방 목사 부부 4명이서 예배당에 딸린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몸을 부비며 살기도 했다. 그러나 큰 불편을 못느낀 것은 그만큼 이들에게 절실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5년 개척 당시 가족 4명이서 시작한 열린문교회가 7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하는 교회로 조금씩 성장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기존신자 No!, 성경 원칙대로 살

   
▲ 전수윤 사모

“성경 말씀을 토대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타입이세요. 말씀에 비춰보면 틀리지 않지만 신자들 중에서는 힘들어하는 이들이 생기곤 했어요.”
전수윤 사모의 말이다.

방 목사는 예수 초청 잔치에 기존의 교회를 다니는 이들은 절대 오지 못하게 했다. 간혹 신자들 중에 그런 기존 신자를 데려온 이들이 있음을 알아차리면 결국은 한마디 한다.

또 새벽예배에 타 교회에 다니는 신자가 오랫동안 다니다가 ‘왜 나에게 이 교회에 오라는 얘기를 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할 정도다.
방 목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남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따를 뿐입니다. 사람의 약삭빠른 생각으로 꼼수를 부리지 않고, 사람을 이용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산다는 방 목사, 사실 그 가르침대로 따르려 애쓸 뿐인데 이것이 오히려 새삼스러워진 것은 한국교회의 질서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신자들 중에 기존 신자를 데려온 이들은 방 목사에게 혼쭐이 나기도 하니 그 가르침대로 순종하기를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사 등의 이유로 열린문교회에 등록한 신자들 중에는 장로를 시켜 달라, 기도 시켜 달라며 ‘들이대는’ 신자들도 있었다. 원칙대로 방 목사는 고수하니 그것이 싫어서 떠나기도 하더란다. 다른 곳에서 직분을 받았더라도 열린문교회의 새신자 교육 및 직분임명자격 규정에 따라 철저히 하는 편이다. ‘작은 교회에서 뭘 그런 걸 따지냐’며 억지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방 목사는 장로를 시켜 달라는 한 신자에게는 “당신은 장로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직구’를 날리며 그 이유를 조모조목 설명하고 지도했지만 결국 그 신자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지금 그런 기존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갔고, 새로운 신자들이 함께 열심히 하고 있다.

   
▲ 열린문교회 예배


개척단계에서 겪은 일 중에 ‘귀신 들린 자들’과의 싸움이 제일 버거웠다고 방 목사는 말한다. 정신질환에 걸린 자들이 유독 많았는데, 심방을 와달라고 하면 정말 쉽지 않았다. 냄새가 나고, 여기저기 더러운 것 투성이고, 이상한 욕과 불평을 계속 쏟아놓는 그들에게 다가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며 기도했지만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았다.

목사라고 해도 두려움과 강박증이 생길 정도로, 그들의 증세는 심각했다. 개척해서 3년 정도는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낫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해서 지금은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난 상태다.

전 사모는 “한 목회자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며 “처음에는 많이 두려워 하시기도 했지만, 회피하지 않고 다가가 기도할 수 있게 하신 것은 모두 다 주님의 은혜”라고 회고했다.

#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삶

복음의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 충천할 때인 개척교회 시절에는 어느 교회든지 전도에 더 열심인데, 열린문교회도 마찬가지다. 인근 초등학교 앞에서 전수윤 사모는 ‘솜사탕’을 통해 아이들 전도에 힘썼다. 교회 나가지 않는 이들은 따로 분류해 1.5배 더 크게 솜사탕을 만들어주면서 교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그 약속을 지켰고, 주일학교는 부흥이 되기 시작했다.

“어른 전도에 비해 아이들 전도는 용이한 편이었습니다. 부모가 교회를 나가지 않으려 해도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오시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발걸음 하면서 복음을 알게 되고, 열정을 발휘해 지금은 젊은 엄마 권찰들이 교회에서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단다.

‘119 기도회’로 모이는 데도 열심이다. 처음에는 사모와 몇 명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권찰들이 다가와 ‘우리도 같이 기도하면 안돼냐’고 제안을 해와 지금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9시‘119 기도회’로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역의 영혼들을 위해 긴급하게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어주고 있다.

한 권찰은 다섯 살 된 자녀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됐다고 배석해서 설명한다. 아이가 한번 교회에 갔다 오더니 교회에 자꾸 가고 싶어 하고, 한번 가면 집에 오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아이를 따라서 교회에 발걸음하게 됐다.

이 권찰이 교회에 와보니 할머니 권사들이 설교 내용을 받아 적으며 그렇게 열심일 수가 없었단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다녔던 교회보다도 모이는 숫자가 더 초라했지만 주고받는 그 열의에 감복했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데, 나 같은 젊은 사람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났다. 그리고 ‘아빠를 전도하는 게 소원’이라는 아이의 소원이 자신의 기도제목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있다.

   
▲ 열린문교회 활동

이런 젊은 일꾼들이 생겨나자 신이 난 것은 목사와 사모다. 모든 것을 앞장서서 전도, 교육 등을 해왔던 이들을 대신해서 이제는 일꾼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여러 필요한 일에 솔선수범하니 무슨 일을 해도 힘이 넘친다.

또한 젊은 다문화 주부나 젊은 엄마가 많은 지역에서 전수윤 사모는 이들에게 김치나 고추장, 된장 등 손수 정성껏 만든 것을 주면서 서로 정을 쌓아가고 관계를 맺어 끈끈한 주님의 공동체로 이끌며 세워가고 있다.

 

# 개척 때부터 선교

열린문교회는 ‘선교’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례비를 몇 년 동안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개척 당시부터 선교를 시작했다. 지금은 점차 늘려 4~5곳에 협력 선교를 하고, 캄보디아에 라오열린문교회를 지어 2012년 헌당하기도 했다.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건축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헌당예배 때 가보니 라오열린문교회 신자가 우리 교회 신자보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열린문교회는 여전히 월세를 내고 살고 있다. 그러나 건물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다. 단지 이 지역의 어려운 신자들과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위해서는 옆 건물에 자리한 ‘모텔’을 인수해서 복지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다.

“서민층과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직장 나간 엄마가 집에 없어도 마음껏 쉬고, 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합니다. 공간이 생기면 먹이고 공부시키고, 책도 마음껏 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마음 문이 닫혀 있는 이들도 이런 비전을 나누노라면 ‘사모님,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호응할 정도란다. 전수윤 사모는 아이들을 위한 이런 사역이 가정 전도, 미래세대의 전도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말씀과 기도로 세워가는 교회, 구령운동에 앞장서서 선교하는 교회, 지역사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교회, 온전한 신앙 인격자로 훈련하는 교회의 비전을 위해 방 목사 부부와 열린문교회 신자들은 오늘도 주님의 섭리를 좇아 나아가고 있다.


양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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