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노 시몬스(1496~1561)가 1536년 사제(신부) 직을 던져 버리고 재세례파에 합류했다. 뮨스터 교구의 ‘재림예수’ 운동의 파행으로 재세례파 모두에게 매우 불행스러운 오명이 주어졌으나 시몬스가 등장하여 활동하면서 재세례파는 완벽에 가까운 중흥기를 맞이했다.

오늘날 세계 침례교 연맹(BWA,Baptist World Alliance) 산하 신자가 4천만명인데, 그 첫 번째 신자가 멘노 시몬스의 제자인 얜 문터(Jan-Munter)의 빵집에 몸을 의탁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이 토마스 헬 위즈(Thomas Helwys)이다.

헬 위즈는 1607년 얜 문터로부터 재세례파의 가르침에 공감했으나 그의 본국인 영국의 핍박이 잠잠해지자 1611년 경 귀국한 후 시몬스파에 보편성을 부여하여 일반 침례교회(General Baptist Church)로 호칭했다.

멘노 시몬스는 네덜란드를 중심하여 유럽 전역에 재세례파가 지닌 신앙, 신학, 교리적 특징을 충분히 가르쳤다. 그는 단순 목회자나 전도자가 아니라 역사와 신학까지 정리해 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지도자들 수명이 길어야 2, 3년이었는데 시몬스는 붙잡혀서 죽지 않았다. 그는 그의 몸에 3개의 현상금이 붙은 중범자였다. 국왕, 신성로마 황제, 가톨릭 교황이다. 그들은 많은 현상금을 걸고 시몬스를 잡으려고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 복음활동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25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잡히지 않았다.

이같은 기적에 대해 몇가지 생각해 본다. 그들 재세례파의 비밀결사 조직력이 얼마나 치밀했을까, 또 신자들 간의 신뢰가 얼마나 돈독했을까. 또 시몬스 자신의 민활·민첩성은 얼마나 뛰어났을까. 그리고 하나님이 시몬스를 지켜야만 재세례파가 생명력을 갖게 되고 본격 개혁시대를 열 수 있다는 배려를 하셨다고 보게 된다.

멘노 나이트로 호칭하는 재세례파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 주, 펜실바니아 주, 카나다, 아프리카 등지에 약 5백여만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다.

맨노 나이트와 함께 후터 라이트 아미쉬가 있다. 후터 라이트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공생관계를 주목했고 그래서인지 그들은 공동생활을 그들의 목표로 삼는다.

아미쉬는 마치 수도 공동체와 같은 순수한 원시지향의 공동체이다. 그들은 19세기 말 까지의 문명조건을 용납한다. 저들 후터 라이트와 아미쉬는 다음 시간에 본 지면에서 만나겠다.

 

조효근 목사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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