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상황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현상적이고 제도적인 교회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심지어 붕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정도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라고 보입니다. 성서적인 신앙의 식견과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성서에 근거한 신학적 개념으로 볼 때, 다른 하나는 한국교회를 전체적으로 볼 때입니다.

우선 신학적인 인식입니다. 건물과 조직과 재정을 중심한 교회의 현상적인 제도는 신학적인 교회 개념에서 일부이지 다는 아닙니다. 현상적인 제도로서는 교회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령의 피조물인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의 교회가 당신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교회가 계속된다고 해도 어느 특정한 지역과 문화권 안의 교회는 역사 속에서 쇠퇴하고 사그라지기도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종종 있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도 여기에서 특별한 예외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의 언어로 말하면 이른바 주님께서 ‘촛대를 옮기는 것’입니다.

건물, 직책, 재정 등을 중심한 제도의 측면에서는 한계점에 직면한 징후가 뚜렷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건강하고 희망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입니다. 비제도적인 영역에서는 아직도 복음 안에 있는 생명의 흐름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갱신에서 가장 중심적인 문제를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흔한 표현으로 하면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문제입니다. 신앙인의 외적인 종교 형식과 내면적인 신앙 인격의 분리 또는 분열 현상입니다. 한 마디로 이분법적 신앙인데 이 문제는 성경에서부터 나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약해지고 병들고 타락할 때마다 늘 중심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문 표현을 빌리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며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이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나 교회 안에서의 신앙 행위와 연관되는 신앙의 정체성이 일상의 삶이나 사회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는 신앙의 관계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신학의 용어로 말하면 칭의와 중생이 성화나 성결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리스도인 개인의 내면 성찰입니다. 이것은기독교 신앙에서 참으로 오래된 신앙훈련 방법입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적 측면에 연관된 삶의 영역에 대하여 분명한 성경적, 신학적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주제로서 세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인륜적 인도주의, 둘째는 법치적 민주주의, 셋째는 상생의 시장경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세 가지에 대한 명확한 성서적 신학적 근거를 구축하면서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서 이 가치를 주도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결국 한계점에 서게 만든 문제들의 근원에는 성서에 근거한 바른 신학적 인식의 결핍이 있다고 보입니다. 신학이란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계시적 진리인 성경에 근거하여 늘 새롭게 복음을 해석하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한국교회는 신학적 작업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은 삶과 세계를 보는 눈, 곧 시야와 지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적 지평과 역사적 지평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타락할 때마다 신앙의 선배들이 외쳤던 것이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근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체적으로는 성서와 교회 역사의 교훈 특히 초대교회의 삶이었습니다.

* 이 내용은 지난 6월 24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전국수련회 주제발제를 요약한 것입니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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