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32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10m 높이의 장벽 앞에서의 필자(팔레스타인지역).


알로펜은 페르시아 피난민들을 만나기 원했다. 피루즈 황태자가 알로펜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은 안토니와 드보라 뿐이다.
피난민들은 군 막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여러분, 저는 알로펜 주교님을 모시는 안토니 사제입니다. 졸지에 고국산천을 떠나서 타국에 와 있으니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얼핏 살펴도 대다수가 남자들이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를 더 생각하면서 피난생활을 해야 할 줄 압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군중 앞자리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서 묻는다.

“그것은 조국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함이고, 또 하나는 초월적인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초월적 삶이란 무엇인가요?”
“좋습니다. 초월적 삶이란 영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세속에서 떠난 살림이죠. 다시 말하면 죽고 사는 경계가 없는 생활을 말합니다.”
“아, 저런! 죽고 사는 경계가 없는 삶이란 현생과 내세를 구분하지 않은 삶의 자세를 말하는가요. 또 달리는 주교님과 같은 종교의 생활을 초월적 삶이라는 것이로군요.”
“비슷하군요.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군요.”
알로펜의 말에 군중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조용했다. 기독교에 귀의하여 새로운 기회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당연히 말할 줄로 알았는데 알로펜은 아니라고 하면서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알로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군중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알로펜의 입을 주목하였다.

“여러분의 생각도 내 생각이나 비슷하겠죠. 다만 종교생활은 어느 특정 종교를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기독교인이니까 여러분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어 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최선의 선택을 위한 고민을 거듭하다가 원하는 종교에 뛰어들면 좋겠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희는 주교님 말씀대로 아라비아 놈들에게 빼앗긴 조국 페르시아를 되찾는 일에 몸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종교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알로펜 주교님의 종교를 따르면 좋을 듯합니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주교님께서 자신이 신봉하는 기독교를 소개해 주신다면 저희들의 종교 선택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알로펜은 페르시아 유랑민 모두를 향하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기 신앙을 말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과 만물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고, 오신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인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고 죽는 것을 같이 하려고 어린 나이인 다섯 살 때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이만하면 내 종교 소개가 되었나요?”

이날 밤 페르시아 유민들과의 대화는 충분히 이루어졌다. 우선 150명은 지금 당장 국경지대로 향하여 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질 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지금의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였다. 150명은 기독교 신앙을 알로펜 주교의 선교단에서 충분히 익힌 다음에 페르시아로 가서 제국을 재건하는 데 공헌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200여명은 대개가 기독교 신자로 분류되었으니 알로펜의 교단에 등록하고 신앙 교육과 훈련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 알로펜은 피루즈 황태자를 찾아갔다.
“어서 오세요. 주교님! 저에게 들려주신 지혜의 말씀에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정부에서도 저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저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언제쯤 신라로 떠나는 게 좋을까요?”

“신라국 사절단이 당나라에 정기적으로 옵니다. 봄 가을로 말입니다. 현재는 황태자 님이 약속하신 대로 기독교 신앙의 단계를 높여야 합니다. 황태자 님은 페르시아 대표단을 이끌고 동방의 작은 나라인 신라에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길입니다. 당나라 정부의 최종 결정이 난 후 태자님은 저희 교회로 오셔서 책임 있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신앙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옳아요.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교님.”
“6개월은 넉넉하게 공부해야 하겠지요?”
“그렇습니다.”

“네! 참, 내 문제만으로도 손이 모자라실 터인데 피난민들까지 주교님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아닙니다. 전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란 그 흐름이 있습니다. 태자님이 신라에 가셔서 신라인 가슴에 기독교를 심어주신다면 그것으로 얼마나 큰 은혜와 복이 될까를 생각해 보세요. 난민들 문제도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심을 공부하여 장차 페르시아 영광을 재현할 인재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주교님은 하늘이 내신 분이 분명합니다. 어리석은 패전국 황태자보다 백배, 천배의 지혜를 가지신 주교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피루즈 황태자 문제와 함께 난민들은 본국 전투요원으로 훈련시킬 생각을 하니 앞길이 어두워 보인다.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당나라 조정에서 책임지겠다고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두렵기도 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에 비하겠는가.
다음날 아침 조회 후 안토니가 주교실로 찾아왔다.
“주교님 피루즈 황태자가 신라에 가겠다고 하니 당나라 정부에서 오히려 멈칫거린다는 것입니다. 낯선 먼 나라인데다 신라가 페르시아 황태자를 보호할 힘이 있을까가 걱정된 것일까요? 신라로 가라 해놓고 막상 간다고 하니 주춤거리는 것은 왜일까요?
“안토니, 미리 겁 먹지 말게.”
알로펜이 안토니의 걱정하는 마음을 달래주었다.

“키르즈 황태자 수행원으로 5명 정도가 필요할 거야. 책임자로는 유승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신라가 불교의 나라이니까 유승의 불교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아닙니다. 주교님. 제가 갔으면 합니다. 신라 주변으로는 백제가 있고 고구려도 있지만 섬나라 일본 또한 흥미 있는 나라죠. 저도 한 번 큰 일을 꿈꾸고 싶어요.”
“이 사람, 거 무슨 소리야. 자네는 내 곁에서 할 일이 좀 많은가. 그런 생각을 다시 하지 말게.”
알로펜의 억양이 높아졌다. 안토니는 곧장 대꾸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만 있다.

“여보게, 안토니. 앞으로 자네가 갈 곳은 따로 있네. 자네가 내 대신 사마르 칸트에 다녀왔으면 해요. 그곳에 우리의 선교 본부를 마련해야 해. 당나라가 지금 누구의 힘으로 움직이는지 아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토니가 반문한다.
“늙어가는 당태종과 그의 후계자가 될 당고종 사이를 오고 가는 여인이 있지요. 후일 그녀는 측천무후가 되어 중국을 다스리게 될 거야.”

“주교님, 그걸 어떻게……?”
“지금은 내 느낌에 지나지 않으나 그녀가 우리들 기독교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거야. 아무튼 우리 아시아 기독교 앞날을 책임질 나와 당신은 힘을 더 모아야 해요.”
“부끄럽습니다. 주교님의 혜안이 두렵고, 더구나 나 같은 놈을 크게 믿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당나라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을거야. 우리는 중앙아시아 대륙을 기반으로 해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의 중심이 되어야만 네스토리우스파 아시아 기독교의 자랑이 될 거야. 자네는 돈황, 허탄, 쿠처, 카쉬가르 등 오아시스 국가들을 좀 더 깊이있게 공부하게. 그리고 판지겐트 지역과 사마르칸트 등 우리는 그곳에 마치 천년성벽을 쌓을 듯이 인재를 심고 인심을 얻어야 해요. 물론 그렇다고 중국의 가치를 작게 보는 것은 아니야.”

“네,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그럼 하나 여쭙겠습니다. 무함마드의 이슬람 세력에게 절반쯤 신앙의 영토를 빼앗긴 로마 기독교의 장래는 어찌 보십니까?”
“그건 모르지. 그러나 현재 무함마드의 세력이 아라비아에서 지중해 지역의 로마 제국과 함께 하는 기독교 세력을 집어 삼켜버린 것을 보니 더더욱 예측이 안돼. 특히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야만인 출신인 아라비아 촌뜨기들에게 제국을 바쳐버린 것을 보면 더더욱 알 수가 없어요.”

“난민들 중 한 사람이 그러는데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가졌으니 페르시아는 이슬람을 선택한 것이라고 하던데요.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가 이슬람을 영접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치 이집트 이슬람 군대가 ‘성문을 열라’고 하니 자발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성문을 열어주어 이슬람이 무혈입성을 하게 한 것에 비교하면서 페르시아의 이슬람화도 서로 전투를 하는 척 하면서 페르시아가 이슬람을 불러들인 것이 맞다고 하더군요.”
“옳지! 옳다! 바로 그거야. 페르시아는 로마가 부러워서 이슬람을 불러들인 것이 맞는 것 같군.”
알로펜은 말을 하면서도 소태 씹은 것처럼 입안이 씁쓸했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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