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성경 보관 및 읽기를 금하는 왕의 칙서에도 불구하고 온갖 방법으로 성경을 숨겼으며, 계속 성경을 읽었다.
발각되면 남자들은 노예선으로, 여자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 송승호

마리 뒤랑(1711~1776)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프랑스 남동부 론 계곡 주변의 부쉐 드 프란늘. 지리산 자락 오지를 연상케 하는 첩첩산중을 지나며 길을 잘못 들기를 수차례, 힘겹게 다다른 그곳에선 3백 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석조 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소박한 예배실을 지나, 박물관으로 꾸며진 살림집 공간으로 들어선다. 벽난로 위의 글씨가 눈에 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1696년 그녀의 아버지가 새겨놓은 성경 구절이다. 순교자 가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좌우명과도 같은 문구다. 말씀과 기도로 지켜낸 믿음의 현장이기도 한 방마다 옛 자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재현해 놓은 전시물과 유물들 사이로 그녀와 가족들이 금방이라도 말을 걸며 다가올 듯했다.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난 마리 뒤랑은 19세 때, 오빠가 목사라는 이유로 악명 높은 콩스탕스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후 감옥에서 지낸 38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그녀는 동료 죄수들을 돌보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가운데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녀는 환자들의 간병인 역할을 했으며, 환경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여인들을 다정스럽게 대해주었다. 바느질을 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어 주는가 하면,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매일 밤 여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편 말씀을 낭독해줄 뿐 아니라 오빠 피에르 뒤랑 목사의 감동적인 설교를 눈물로 전해주었다. 그녀의 보살핌과 설교말씀을 통해 사람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후에 그녀는 박해당하는 프랑스 개혁교도들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 보관 및 읽기를 금하는 왕의 칙서에도 불구하고 온갖 방법으로 성경을 숨겼으며, 계속 성경을 읽었다. 발각되면 남자들은 노예선으로, 여자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문득 벽면 한쪽, 사람 어깨 폭 정도의 장방형으로 파인 곳에 시선이 멈춘다. 이렇다 할 장식도 없고, 그냥 지나칠 법한 공간이다. 도대체 이 공간은 무슨 용도일까? 안내하는 분의 말대로 오른쪽 벽면 안쪽으로 왼손을 넣어 본다. 그 안으로는 다른 홈이 이어져 있는데, 바로 그곳에 성경을 숨겨두었다는 것이다. 불시에 가택수색을 할 때, 보통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홈이 파인 공간의) 왼쪽 벽면을 더듬어 찾기 마련인데, 바로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반대쪽 벽면 안쪽에 성경을 숨긴 것이다.

방을 나오기 전, 그 홈 안에 다시 손을 넣어 본다. 말씀을 위해 이토록 고심했을 분들의 간절한 마음이 차갑고 깔끄러운 벽면에서 손끝으로 느껴오는 듯하다. 박해와 순교라는 말이 피부로 와 닿기 힘든 오늘날, 첨단 매체로 손쉽게 성경 말씀을 대할 수 있게 되었건만, 이 벽면 안쪽 홈에 성경을 숨겨두던 분들의 믿음에 턱없이 못 미칠 우리의 인스턴트 신앙을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송승호 / 홍성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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