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는 배우’ 꿈꾸며 거리에 서는 1인 극단 배우는사람 김건희 대표

귤에 캐리커쳐 그려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픈 세상, 조건 없이 내 편 되어주신 분 만나는 시간

 

   
▲ 김건희 대표

“단원이요? 저 혼자예요. 무대요? 지금 여기, 오늘 만나는 누구든지 관객입니다. 매순간이 최고의 공연이지요.”

단 하나뿐인 단원이자 연출과 재정을 모두 맡은 1인 극단 ‘배우는사람’의 김건희(33, 광명 우리교회) 대표가 연극 소재를 찾는 곳이자 공연을 서는 곳,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바로 거리이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모토로 나선 길, 만남이 이뤄지는 매개는 ‘귤’ 이다. 단순한 먹거리로서의 귤이 아니라 거기에 각 사람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주면 그대로 훌륭한 ‘선물’이 되고, 거부감 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로써 그는 배우와 화가라는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게 된 셈, 만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일깨운다.

첫 만남인데도 마법처럼 깊은 대화로 이어지면서 각자 나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하는 시간은 나이, 성별, 종교를 넘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신 분, 우리를 지으신 분께 향하는 시간”이라고 믿고 있다.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으로 사람이 두려웠고 그것은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심각했다는데, 거리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고, 삶을 나누고, 생명을 전하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살아계신 하나님

“배우로 무대에 서면 조명과 박수갈채를 받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공연을 준비해도 보러 올 힘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한 사람의 삶에 박수 쳐주고 조명을 비춰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예수님이 그러셨더라고요.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연출력으로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기셨어요.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지극히 작은 자’는 바로 나 자신이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에요.”

배우로 무대에 선지는 8년차, 생명 살리는 배우가 되겠다며 그 무대에서 내려온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 귤을 선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즉석에서 연기로 재연해 보여준다. 그 삶의 이야기를 다시 교회와 학교, 기업 등에서 모노드라마 형식의 강연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연결시킨다.

‘바쁘다. 바빠!’가 우리나라 국민성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라는데, 바쁜 속에서 서로 진실을 나누는 대화는 접어두고 사는 것은 아닌지. 처음 보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깊이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처음으로 사랑받는 기분”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김 대표에게는 최고의 관람료가 된다.

호칭은 만나는 모두에게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이면 다 통한다. 가벼운 일상의 대화로 시작해 어릴 적 꿈을 상기시키고, 고민을 나누고 삶의 가치를 서로 알아가는 깊이로 나아가다보면 “참 소중한 나”로 이야기는 귀결된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치 있는 것을 좇아가도록 하는 것이 복음의 힘, 원색적으로 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냐?”고 반문해올 때면 그들 속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며 김 대표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때로는 귤 하나가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 김건희 대표가 귤에 그린 자신의 캐리커쳐. 그 뒤에는 각자 주인을 찾아갈 귤이 쌓여있다.

“한번은 노숙하시는 아버지께 귤을 드렸더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길에선 한 끼 굶지 않는 것이 최고 목표인데 막상 누군가로부터 먹을 것을 받으니 ‘난 주는 음식 받아먹는 짐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셨대요. 이렇게 구차한 삶, 죽어야지 하고 달리는 전철에 발을 여러 번 내밀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술을 먹고 다시 전철역을 향하다 귤을 받으신 거예요. ‘당신, 누군데 나에게 선물을 주는 거야? 선물은 사람에게만 주는 거잖아…. 내가 사람이라고…? 내가 사람이야? 그럼 살아야지!’ 대박! 귤이 생명을 살렸어요.”

추운 겨울 식당에서 나오는데 70대 할아버지가 만취한 채 위태롭게 맨발로 지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께 자신의 신발을 신기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그가 홀로 사는 반지하인 집은 곰팡이와 오래된 음식물로 인해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상처로 얼룩진 삶은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았고, 이야기 내내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해! 부엌에서 칼 좀 갖다 달라”며 우시는데 김 대표는 어떤 말로 위로할지 몰라 그냥 모자를 훌렁 벗어버렸다.

젊은 나이에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모습을 보고 웃음이 빵~ 터진 할아버지, 그때부터 할아버지와 김 대표의 진한 만남이 이어졌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벽지도 새롭게 갈아드리고, 만날 때마다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한쪽 벽면을 채웠다. 어느 날 옆집 아주머니가 찾아오는 청년이 누구냐고 묻는 말에 “예, 제 아들입니다!” 하며 웃는 할아버지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는 거둬지고 없었다.

“탈모 때문에 고민이 컸는데 그게 다른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됐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지독한 단점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점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 내 이름은 ‘예수 믿는 청년’

그는 왜 거리에 서는 걸까?

한 사람을 살리는 배우가 되겠다는 포부로 나선 길이지만 1년에 6만개의 귤을 나누며 수많은 사람과 만난 여정은 ‘배움’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귤 값만 한 해에 무려 1천만 원. 생명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아무 조건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의 정체를 묻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결같은 대답은 “예수 믿는 청년, 김건희입니다” 이다. 대부분 자신을 소개할 때면 가장 특징적인 부분에 강조점을 두는데, 김 대표는 그것이면 자기소개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름도, 직업도 잊히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같은 편이 되어주셨잖아요. 그것이 복음이 교회를 넘어 세상 속 다양한 삶에서 풀어져야 하는 이유예요. 오늘날 기독교가 욕먹는 건 우리만이 진리라는 독단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맞는 말이지만 표현을 좀 달리 해보면 어떨까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더 이상 교회 안에 박제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픔과 눈물이 없는, 먼 훗날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이어야 하잖아요.”

김 대표는 심각한 탈모로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고, 환경의 어려움까지 겹쳐 마음의 병이 깊어져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앓았다.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데 번뜩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어머니가 나를 쉽게 키우지 않았다’는 거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냥 그 자리에 누워 버렸다. 사방이 꽉 막히고 모든 걸 잃었다고,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힘을 빼고 드러누우니 비로소 보이는 하늘, 그 드넓은 하늘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깨달음에 누운 채 한참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자신과 같이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고통 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33세 청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두려움은 잃을 게 남아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에요.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한 가지를 만나게 되더라고요.”

김 대표의 꿈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연결되고, 그래서 전 세계 모두가 한 명도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거리에 선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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