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으로 상품 만들어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
깊은 상처 딛고 인간의 존엄한 가치와 아름다움 드러낸 삶 조명

 

   
 

“사람들이 저희더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돕는 단체라고 하지만 저희 그런 거 아니에요. 깊은 상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주신 할머니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팬클럽이랄까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길 바라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돼 광복을 맞이한 지 67년이지만 아직도 당시의 상처와 고통을 가슴에 담은 채 온전한 광복을 맞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다.

우리나라의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지 23년이 지났고, 수요일마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범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마음속엔 아직도 당시 자신들을 짓밟았던 일본군의 군화 발자국 소리가 쟁쟁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들의 고통은 점점 빛바랜 이야기로 퇴색돼 가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빛바랜 이야기에 오색 빛 찬란한 색깔이 입혀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예술 작품으로 가방, 핸드폰 케이스, 패턴북 등 패션잡화나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마리몬드’(www.marymond.com). 최소한의 생산비와 운영비를 제외한 이익의 70%를 할머니들을 위한 단체에 지원하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간직할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기부한다.

자신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팬클럽 회장이라고 소개하는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영통온누리교회), 29살 청년인 그가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가는 이야기에 매료된 이유가 뭘까.

# 할머니들의 존엄한 삶에 눈뜨다

“저도 처음엔 할머니들이 불쌍하다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나선 것도 실상은 그동안 할머니들의 고통을 모른 채 살아온 죄의식을 덜어내고픈 게 컸던 것 같아요. 막상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우리 할머니와 같은 따뜻함을 느꼈고, 오히려 더 아픈 이들을 돕는 모습에서 숭고한 인간애를 발견했어요. 할머니들을 통해 참 많은 걸 배웠죠.”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할머니들과 관련된 일을 했고 군대 제대한 후 ‘가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다시 할머니들을 만났다. 하지만 할머니들에 대한 이해는 전혀 달라진 후였다.

할머니들의 쉼터인 광주 나눔의 집, 그곳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엔 당시의 위안소가 재현돼 있다. 위안소는 그곳을 향하는 일본군의 군화소리를 들을 수 있게 계단이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것을 밟아보며 할머니들, 아니, 당시 너무도 어리고 여렸던 소녀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일본을 우리나라를 괴롭힌 원수라는 민족주의적인 분노 속에 할머니들 개개인의 고통은 간과했던 것을 알게 됐다.

회복의 희망을 상징하는 꽃 ‘마리몬드’를 상표로 정한 것은 “할머니들의 잃어버린 존귀함을 회복하자”는 뜻에서다. 할머니들을 불쌍한 피해자, 일본에 대해 맹목적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도 행복을 꿈꾸던 소녀였고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가길 소망하는 한 개인인 것을 보여줌으로써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그저 역사 속의 한 단편이 아니라 함께 풀어가야 할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회복을 향해 걷는 여정은 할머니들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이 땅에서 아파하는 나와 너의 이야기에 조금씩 눈 떠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걸음이기도 하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들을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멋진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요?”라고 초청한다. 마리몬드를 통해서.

마리몬드의 상품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원예심리치료 과정을 통해 꽃을 눌러 만드신 미술작품(압화)을 주제로 패션·디자인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작품 속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 때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만주의 위안소로 끌려갔던 고 김순학 할머니(1928~2010). 할머니는 “먹는 욕심은 없는데 꽃 욕심은 많다”며 플로리스트로서 활약하며 네 번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예술적 재능을 맘껏 펼쳤고, 평생 모은 재산 약 1억 원을 소년·소녀 가장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경북 칠곡군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열세 살 무렵 일본군에게 잡혀 대만의 위안소로 끌려갔던 고 심달연 할머니(1927~2010)는 그곳에서의 폭행과 정신적 충격 때문에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다. ‘꽃을 사랑하는 심달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할머니는 고양시 세계 압화공예대전에서 두 차례 특별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었다.

마리몬드는 할머니들의 미술작품을 재해석한 디자인을 통해 역사 속으로 잊힐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쟁점이 아닌, 일상에서 표현하고,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성의 이야기로 우리 세대에 전달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다시는 자신들이 겪은 것과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바람에서 증언하시고, 또 해외의 전쟁 성폭력 여성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에 자신들의 정부지원금을 모아서 기부하세요. 저는 할머니들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뿐이에요.”

# 하나님 만드신 모습 그대로…

윤 대표를 비롯해 함께 일하는 6명의 스텝 모두 젊은 청년들이다. 사업이란 것이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시행착오도 있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고민이 커질 때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윤 대표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시키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속에서 인간을 수단과 기능화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꼽는 윤 대표는 그런 풍토에선 나 자신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건 ‘너’의 소중함 역시 보지 못하는 결과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런 속에서 인간의 존엄함을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그 첫 걸음이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색깔을 입히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보이는 현상을 넘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존엄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제시하는 일을 이어갈 것을 밝혔다.

피해 할머니들 가운데 현존하는 분은 54명뿐, 할머니들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윤 대표의 마음은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11월이면 영어로 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배운다는 윤홍조 대표, “마치 하나님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내어 나누는 느낌”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과 보물을 함께 나누길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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