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테마 마을’ 꿈꾸며 8천여 평 숲 가꾸는 ‘섬김의집’ 이 호 영 목사

하나님과의 약속 위해 유명헤어디자이너 접고 평생 봉사의 삶
장애우들과 함께 일군 터전, 은퇴목회자 등 기도와 쉼의 공간

 

   
 

“짧게 깎아주세요.”
“왜 머릴 짧게 깎으려고 하나요?”
“새롭게 살고 싶어서요.”

40대 초반쯤의 가뭇한 얼굴에 마른 체형의 남자, 가위가 바삐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커트보를 타고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지자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미동이 없다.
“인생은 머리 짧게 깎는다고 변하지 않아요. 나도 과거엔 돈과 성공을 쫓고 술 담배로 시간을 보냈지만 예수님 만나고서야 삶이 달라졌어요. 내 의지로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남자의 감은 눈에 물기가 번진다.

평일 오후 시간, 강원도 원주시 정신질환과 알코올 중독 등을 치료하는 한 병원에 간이 미용실이 마련됐다. 미용실이라고 해봐야 의자 몇 개 놓은 것이 전부지만 추석 대목을 앞두고 손님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하루만 3명이 100여 명의 머리를 매만졌어도 머리 깎은 값을 묻는 이나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곳은 헤어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던 이호영 목사(55, 섬김의집 담임, 이홍미용선교회 회장)가 22년간 봉사를 펴온 기관 중 하나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강남을 비롯해 5개 지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성공’을 자부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철저하게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또한 ‘기독교 테마 마을(섬김의집)’을 꿈꾸며 나무가 우거진 8천여 평의 숲을 가꾼다. 그에게 하나님의 뜻이나 응답은 당장 눈에 보이는 요술방망이가 아닌 ‘긴 호흡’으로 한 걸음씩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함께 걷는 것일 뿐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지라도….

# ‘신들린 가위손’ 목사 되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신장리 비봉산자락, 울창한 숲 속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싶은 초록으로 우거진 산을 오르다보니 뭔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제일 위쪽에 예배처소인 섬김의교회를 필두로 그 밑으로는 몇몇의 집채 같은 것들이 점점이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건축자재들이 쌓여있는 이곳은 그가 그리는 꿈의 마을과는 거리가 먼 듯 보였다.

“이것이 앞으로 구축될 기독교 테마마을”이라며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보여주는 조감도에는 근사한 규모의 예배당과 함께 기독교성물전시장, 성지모형화지대, 퇴임목사·사모 숙소, 선교사 숙소, 어린이집, 기도굴을 비롯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진작시킬 공간과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춰진 그야말로 크리스천 마을로서 손색없을 구조였다. 하지만 조감도와 현재의 숲 속에 파묻힌 건물들을 비교해볼 때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도대체 언제쯤?” 하고 묻자 그는 정색하며 “이미 이뤄졌다”고 대답했다.

이 목사는 1989년 대만 세계미용대회 커트부문 금상을 수상, ‘신들린 가위손’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고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미용업계를 주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들었던 건물 주인이 미용실 전세금으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해 상한 마음에 술과 담배로 보내던 중 생각을 정리할 겸 시골 한적한 곳에 봉사 요청 받고 갔다가 찾은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이후 교회를 졸업했던 내가 얼떨결에 기도하는데 입에서 ‘하나님!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돈 버는 목적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게 해 달라’는 말만 반복되었어요. 그때부터 술과 담배가 저절로 끊어졌고 알 수 없는 평안함으로 가득했지요.”

며칠이 지나고, 매달 하루 미용실 문을 닫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식사대접과 무료 이·미용 봉사하는 날이 되어 “하나님, 오늘은 돈 버는 게 아니라 봉사하는 날이니까 내려갔다가 또 마음이 불안하면 올라올 게요” 했는데 그날부터 교회에 출석했고 약속대로 미용실을 모두 접고 신학교에 입학, 2003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기독교 테마 마을’은 신학교시절 전도 집회에 참석했는데 한 은퇴목회자가 “갈 곳이 없다”며 3일 내내 기도하며 슬피 우는 것을 보고 “하나님, 당신 일 하다 저렇게 버려지듯 살아선 안 되지요!”하는 생각에 은퇴목회자들을 위한 처소를 마련하고자 전 재산을 털어 시작한 일이었다.

19년 전에 산으로 들어간 그는 그 긴 세월을 지적장애인 몇몇과 함께 이곳을 일궜다. 나무를 베고 땅을 다지고 모델하우스 등에서 얻은 폐건축자재 등을 직접 옮겨와 건물을 세웠다. 그뿐이 아니다. 범인의 눈엔 초록뿐인 이곳엔 손수 심은 120여 가지의 약초와 과실나무가 자라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성한 먹거리를 내어주는 자연 속에서 이 목사는 인간의 계획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날마다 조금씩 이뤄져가는 것을 목도한다고 했다. 그는 봉사가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톱과 삽을 들고 나선다.

“건물을 짓거나 그 내부를 채우는 데 무엇이 필요하다 싶으면 어느 샌가 그것이 앞에 와 있어요. 필요를 먼저 아시는 분께서 채워주시는 것이지요.”

사실 재정이 뒷받침되었다면 조감도의 ‘마을’은 단시간에 완성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땅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으로 이자를 감당하는 일마저 버거운 현실이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어떻게 확신 속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걸까.

“장애인들을 내보내면 조건 없이 1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곳이 있었어요. 하지만 100억 원을 준다고 해도 함께 헌신해온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순수함을 통해 내 안에 무너져야 할 것들을 봅니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진짜 목사지요. 10년 후쯤이면 누구나 와서 마음껏 기도하고 쉼을 얻는 곳이 될 겁니다.”

장애인들은 이 목사에겐 꿈을 함께 이뤄가는 동역자이자 유일한 성도였다. 일을 하거나 예배를 드리다가도 수틀리면 “에잇! 형, 나 간다!” 하고는 무심히 가버리는 이들, 그럴 때면 이 목사는 혼자 남아 답답하고 속상해서 울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외지인을 경계하는 마을 분위기에서 오랜 세월 곁에서 묵묵히 함께해 준 고맙고 소중한 이들이다. 산으로 들어간 후부터 마을의 어르신들을 매월 한 차례씩 초청해 식사대접과 이·미용 봉사로 섬겼더니 요즘들어 예배 시간에 10여 명이 모이고 있다.

그 긴 세월 무한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의심할 만도 한데 이 목사는 오히려 “모세는 출애굽 사역을 감당하기까지 애굽 궁전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간 훈련 받았고, 노아나 바울도 하나님 일 하고자 스스로 ‘바보’가 되었어요. 또 한나와 시무온은…” 하면서 성경 속 ‘기다림’의 대표적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 할지라도 난 이 길을 갈 것”이라며 의연함을 보였다. 다만, 아내와 중학생인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있는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들까지 희생하는 것에 가슴 깊이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 믿음, 보이지 않는 실상
봉사의 삶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부터였다.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 제대 후 미용기술을 배웠다. 남성이 흔치 않던 직종이라 취직이 어려워 어쭙잖은 실력으로 미용실을 차렸고, 실습을 위해 찾은 곳이 고아원 이·미용 봉사였다. 사실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것인데 그곳에서 만난 한 아이의 뼈아픈 충고는 그를 평생 봉사의 삶을 살게 했다.

“간식시간에 빵을 먹는데 5살짜리가 와서 쳐다보기에 빵을 나눠줬어요. 그랬더니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뛰어와 어린애 배를 걷어차면서 빵을 뺏어 돌려주며 하는 말이 저더러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래요. 충격이었죠.”

   
▲ 미용 봉사중인 이호영 목사

당시 시설은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좋은 일 한다고 생색내는 기독교들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고, 두 번째는 아저씨 같이 때 되면 나타나는 인간들”이라며 “몇 번 와서 정 주고 떠나면 우린 또 버림받는 것”이라며 머리통으로 이 목사의 가슴을 힘껏 들이받는 게 아닌가.

지금도 가슴에 아이가 들이받은 통증이 아릿하게 느껴진다는 이 목사는 그 뒤로 손길이 닿지 않는 낙후된 농어촌이나 고아원, 병원, 외국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한번 간 곳은 꾸준히 봉사를 이어왔고, 처음 창업했던 미용실 이름을 딴 이홍미용선교회를 통해 2,500여 명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봉사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기독교 테마 마을’은 현재 이자 상환이 힘겨워 처음으로 땅을 일부 내놓은 상태, 어려운 상황을 헤쳐가기 위해 자구책으로 그동안 자연 속에서 무농약으로 기른 산야초들로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산야초 효소 가든’이란 간판을 붙이고 음식은 성도 중에서 한 분이 담당하고 있다. 산야초로 반찬을 만들고 갖은 약초를 5시간 달인 물로 지은 밥은 한 끼 식사가 그대로 보약이다. 닭백숙이나 오리탕을 올린 한 상(4인 기준) 가격은 5만원, 한 시간 전에 예약하면 식사가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기쁘게 ‘바보’의 삶을 살겠노라고 말하는 이호영 목사, 그는 봉사도 ‘마을’ 짓기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오늘도 소망 가득한 마음으로(031-67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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