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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천년여행] 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115<당나라 기독교(景敎) _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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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호] 승인 2014.09.19  10: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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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령 안에 품으신 성령께서는 성자와 함께 성부 하나님 보좌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에 참여했으니 성령 안에서 살고,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의 보좌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나와 당신, 또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종교가 흔들리는 제국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까? 카라손 목사는 잠시 눈을 감고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페르시아를 침공해온 아라비아 이슬람 군사들은 한결같이 정치발언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유일신 알라의 자손이다. 너희도 유일신으로 알고 있다. 유일신 종교는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는 종교다.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 군대에게도 서로간에 피를 한방울도 흘릴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그때 우리의 말을 알아듣거나 믿는 사람들은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다.

종교가 하나이니 제국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아라비아 군대들의 회유전략은 설득력이 컸었다. 페르시아 수도권 방어병력이 무너진 이후로 내륙 깊숙히 들어오는 아라비아 군대는 저항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카라손 목사는 앞으로 알로펜 곁에서 그의 참모 노릇을 하고 싶었다.

저녁 때 카라손은 알로펜과의 독대를 요청했다. 안토니가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카라손이 머뭇거렸으나 안토니에게 말을 해도 문제될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그는 중앙 아시아에서 돌궐인들을 붙잡아야 된다는 내용을 말했다.

“안토니 실장님, 지금 북방 돌궐 세력이 동과 서로 나뉘어 있음을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주교님께 중앙아시아 쪽으로 남하해 오는 돌궐인들을 붙잡아야 함을 건의하려 합니다.”
“아, 역시 카라손 목사님의 전략이 매우 민첩해 보이는군요.”
“별스런 칭찬을 다 하시네요. 저는 페르시아 크데시폰에서 압바스 총감독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압바스 총감독님은 중국 세력이 붙잡지 못하는 돌궐인들을 중앙아시아에 정착시키면서 개종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정말!?”

안토니는 언젠가 알로펜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중앙아시아 선교를 말할 때 돌궐인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자기 계획을 알로펜은 말했었다. 안토니는 저녁 공부시간이 시작되는 사이에 알로펜에게 카라손 목사와의 대화 내용을 말했다. 알로펜은 대단히 만족해 하면서 시간을 만들라고 했다.

저녁 공부를 마친 후, 카라손과 안토니가 알로펜 서재로 들어갔다.
“카라손 목사! 대단하군요. 돌궐인 전략이 놀라워요.”
알로펜이 카라손의 어깨를 툭 치면서 친근함을 표시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의 생각이 얼마간 가치가 있다면 크데시폰 총감독님이 칭찬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알로펜이 카라손을 향해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압바스 총주교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교차는 중원세력과 북방 오랑케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역할이 있다고 했었다. 그는 그 내용을 알로펜에게 말했다.

알로펜은 카라손의 말에 공감을 표하면서 어디서 그같은 논리를 터득했느냐고 물었다.
“압바스 총주교님이 늘 말씀하셨어요. 늘 시간만 있으면 사마르칸트지역으로 진출하여 미래시대를 앞당겨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가?”
알로펜은 부친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서역의 각 나라에 전향적 선교기지가 있어요. 허탄, 쿠처, 판지갠트 쵸코 등지에 있어요. 쵸코는 사마르칸트와 함께 주요 선교기지입니다. 카스피 해 인근의 쉐키도 중요한 지역입니다. 트빌리시는 쉐키와 함께 아나톨리아가 주요한 우리의 활동기지입니다. 현재 그곳들에는 작게는 몇 십명씩, 그 이상 지역은 쵸코와 사마르칸트가 대단위 선교무대입니다.”
“아이쿠! 대단합니다. 저들 가운데 우리의 동역자들은 얼마나 되나요?”
“몇 십명씩이고, 몇 백명은 쵸코와 사마르 칸트일거예요.”
“주교님! 존경합니다.”
“존경은 무슨……, 그러나 동돌궐과 서돌궐 할 것 없이 우리는 저들을 복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요. 우리 교회가 저들을 못 잡으면 이슬람 몫이 될 수 있어서 안타까워요.”
“…….”
“쵸코와 사마르칸트 동지들을 좀 더 강화시키기 위하여 잠시 다녀오겠다는데, 우리 교수님이 막무가내로 나오는군요.”
카라손은 ‘우리 교수님’이 누군지 몰라서 두리번거린다.

“주교님은 몸을 아끼셔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안토니는 싱글거리면서 말을 한다. 카라손이 어느 교수를 말하느냐고 눈짓으로 안토니에게 물었다.
그때 마리아 교수가 다과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가시죠. 다녀오세요. 주교님 몸은 무쇠덩이로 만들었으니 무슨 걱정인가요.”
카라손은 마리아 교수를 바라본다.

“카라손 목사님. 마리아 교수님은 주교님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이니 조심하시면 됩니다. 제가 생각해도 쵸코와 사마르 칸트는 쉽게 한번 다녀오셔야 하겠는데 그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어느 자식들이 걱정을 아니하겠어요.”
“자식된 도리로 걱정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면 되지요. 뭐……. 카라손 목사님이 오히려 민망하시겠어요. 서로 간에 가족된 심정으로 하는 말씀들인데요.”
“주교님은 사마르칸트만 다녀오세요. 쵸코의 경우는 쿰바홀이 지키고 있으니 잠시 들러 인사만 나누고 사마르칸트를 집중적으로 보살피시면 될 듯하겠는데요.”
안토니의 말에 모두가 공감을 했는지 어느 누구도 뒷말이 없다.

“참, 카라손 목사님은 결혼하셨어요?”
“아이코, 만약 처자식까지 있으면 지금같은 전시에 어떻게 살아갑니까?”
“옳습니다. 카라손 목사님의 결단이 좋았어요.”
“정말 대단한 목사님이시네.”
마리아가 펄쩍 뛰는 시늉을 하면서 좋아했다.

“훌륭한 판단을 하셨으니 앞으로도 더 좋은 일들이 기다릴 것입니다.”
“저도 기다립니다.”
“북방 민족이 이동 중이고, 또 당나라와 고구려의 자웅겨루기를 보아도 세계는 아직 평화가 멀지요.”
“그래요. 아직도 민족이동기 중이니 더 좋은 사회질서가 되면 복음의 날들도 좋아질 것입니다.”
“두 분은 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전쟁인들 걱정일까요.”
“마리아 교수님, 현재 주교님 제자들 중 시집 장가 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을 아시잖아요.”
안토니는 알로펜 주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주교님, 무슬림들은 시집 장가 문제가 필요없지요. 그들은 한 남자가 네댓 명의 여자를 둘 수 있으니 열심히 자녀를 생산하지요.”
“그러니까 저들은 전쟁의 명수들이라잖아요. 저들은 적들을 많이 죽이면 천국에 간다지요?”
카라손의 말에 안토니가 답을 했다.

“민족 이동기입니다. 지난 3세기 경 동고트 족의 이동 시작으로 게르만 족이 8세기까지 이동을 완료했고, 7세기의 투르크 족을 중심한 북방민족이 몽골 고원에서 북방루트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페르시아에 진을 치고 동로마를 공략하여 유럽과 동등관계가 될 때까지 전쟁은 끝이 없을 게요.”
“주교님, 뭐 그럴 수가…….”
“안토니 자네는 그래서 아직은…….”
“주교님, 아직은이 무엇인가요?”
“이 사람이 뭘 그리 조바심이야. 자네는 나 알로펜이 떠나면 큰 인물로 나타날 거야.”
“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안토니는 마리아 교수를 바라보면서 놀리는 시늉을 한다.

“그럼요. 안토니 사제는 이 사람 마리아까지 사라져야 인물되지요.”
“아이고 난 아니야. 인물이 무엇인지, 나는 주교님과 마리아 교수님이 100년쯤 내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아 이 사람아. 그러니까 자네 한 수 늦은 거야.”
“카라손 목사님도 같은 생각이세요?”
“어른들이 그렇다니까……, 그렇지요, 뭐.”
“애늙은이가 있다더니, 저는 스승님 모시려고 진리의 동네 주변만 어슬렁거리겠구먼요.”
“안토니 선생님. 뭐하러 어슬렁입니까? 주교님과 함께 누리세요. 주 예수께 받은 진리를 말입니다. 저는 제 몫이 따로 없어도 아주 평안합니다. 크데시폰 총주교님 곁에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합니다. 지금이…….”

알로펜은 거듭 카라손이 부친의 안부를 들먹여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걱정하고 기도해야 할 순서 안에 부친은 들어 있지 않았다.

“카라손 목사님! 목사님은 삼위일체 안에서 어느 만큼 자유롭나요?”
“삼위일체 안에서 자유롭다니요. 성경 안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들었어도 삼위일체 안에서라면 하나님 보좌를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감히…….”
“무릇 참된 성도이면 삼위일체 하나님 품 속에서 안녕을 누릴 수 있어야지요.”
“아닙니다. 저는 그같은 논리에 동의해 본 일이 없어요. 그런 말 자체가 참람된 말이 되는 줄 압니다.”
“아니야. 성도는 기본적으로 삼위일체 안에서 주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같은 말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논리는 이단적이라고 해야 합니다.”
“카라손! 면전에서 나를 능멸하지 마세요. 저는 날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품에서 안녕을 누리고 삽니다.”
“주교님! 어떻게요……?”
“카라손 목사님, 참된 신앙의 모든 성도는 성령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립니다. 그렇죠?”
“그럼요.”
“그렇다면 내가 성령 안에서 자유로우면, 내가 성령 안에 머물면 성령님은 불결해지나요?”
“아니죠. 왜 성령님이 그런 욕된 모습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성령 안에 품으신 성령께서는 성자와 함께 성부 하나님 보좌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에 참여했으니 성령 안에서 살고,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의 보좌에 동참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나와 당신, 또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 11세기경 코카서스 산맥 비탈의 트빌리쉬시에 기독교 신자들이 이교도들애게 쫓기면서 산속 해발 3000미터 위치에 집을 짓고 방어를 하던 때가 있었다. 현지에서 이를 알리는 그림을 발견했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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