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19~21

▲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담임

“풍요는 삶에 안전을 더해주는 ‘닻’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하나님은 모세가 죽을 날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모세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기왕 자신이 시작한 일을 완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일견 너무 매정한 것 아닌가 싶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할 때 멈출 줄 모르면 교만해지게 마련입니다. 교계 지도자들 가운데는 영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거둔 세속적 성공이 그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생의 정점에서 죽을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래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신명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는 그 노래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이 그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분노하실 때는 언제인지, 불의한 세상과 하나님이 어떻게 싸우시는지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숙지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런 노래를 지으시라고 하신 뜻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시인은 주님의 꾸지람을 듣고, 주님의 법으로 친히 가르침을 받는 이들이 복이 많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백성들이 처하게 될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계십니다(신 31:20).

백성들이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는 원인이 여기 분명하게 적시되고 있습니다.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결국 문제는 배부름입니다. 내 배가 부르고 내 등이 따뜻하면, 배고픈 사람들과 등 시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공동체에게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출20:3)고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신은 다른 민족이나 부족들이 섬기는 신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도록 하는 신들’입니다.

저는 가끔 한국 교회의 실상을 진단하는 자리에서 한국교회가 이 자리까지 전락하게 된 것은 부유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각인된 교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부유하고 큰 교회들입니다. 그들이 대변하는 것은 대개 배부르고 등 따스한 이들입니다.

부르신 목적을 잃게 될 때 교회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마련입니다. 풍요는 삶에 안전을 더해주는 ‘닻’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욕망이 승하면 이웃 사랑이 사라집니다. 이웃 사랑이 사라지면 세상은 전장이 됩니다. 전장에서 사는 이들은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창4:14)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욕망을 앞세운 이들의 운명이 이와 같습니다. 풍요의 덫에 걸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이들은 마치 물속에 있으면서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닥칠 재앙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인 호세아의 경고도 같은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호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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