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 _ 43

▲ 터키 하란에 있는 아브라함의 집터에서 그 주변을 살피다.

“아버지께서 지켜 주소서. 저들이 그곳 신라는 물론 한반도와 일본까지도 복음을 들고 가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게 하소서.”

“신앙문제로 상대와 싸우다가 서로가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저들 이슬람을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오늘 우리의 과제가 되겠습니다.”

“우리 주교님의 종교적인 포부는 제왕적입니다. 그래야죠. 종교나 정치가 지닌 기본 속성이 제왕 그 이상이거든…….”
“황상 페하! 이 늙은이가 무슨 제왕적 포부를 갖겠습니까. 폐하의 뜻을 받들어 저 한반도가 폐하의 은혜를 입은 후에 복음을 온몸으로 사는 백성이 되기를 바랄뿐 저희 승려들은 더 이상의 욕심이 없나이다.”
“아니오. 짐은 일찍이 주교의 포부가 세계적이라는 데서 감동을 얻었고 그래서 지금도 주교님의 가르침을 흠모하는 것입니다.”

알로펜은 무엇이 당태종에게 경계심을 심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만약 당태종이 자기 자신의 원대한 아시아 기독교 포부를 안다면 정말 경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등허리가 오싹해 짐을 느꼈다.
“알로펜 주교! 짐은 당신을 존경하오. 주교가 페르시아는 물론 중앙 유라시아와 북방 오랑케의 땅, 그리고 한반도는 물론 짐의 나라에도 요순시대 이상 가는 태평성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같은 큰 포부를 언짢게 생각해본 일이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당신을 보면 나도 알로펜 같은 꿈 이상의 꿈을 실현하는 제왕이고 싶어요. 나는 주교님을 선의의 경쟁자로 봅니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정치와 종교, 곧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상 폐하! 감읍 또 감읍이옵니다. 저는 폐하의 은혜를 힘입어서 도교와 불교, 그 다음 순번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폐하의 나라를 지상 천국으로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기회를 폐하께서 주셨으니 더욱 기도하면서 폐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합니다.”
“오 주교님!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시오. 주교가 가지고 온 기독교는 거룩하고 빛나는 종교지. 그래서 내가 경교(景敎)라 하지 않던가요.“
“네, 폐하. 하늘같은 성총을 힘입었으니 더욱 은혜에 보답하겠나이다.“

알로펜은 오늘따라 당 황제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그럴까.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두려움을 느낄까? 이는 내 마음 속에서 불손하고 또 불의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좌일까?
그는 궁성을 벗어나서 교회로 돌아오면서도 안토니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생각에 빠져 있었다.

“주고님, 왜 떠세요? 무슨 언짢은 일을 겪으셨나요. 혹시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던가요.“
“아닐세. 아니야. 내가 유승을 멀리 떠나보냈으니 마음이 조금 허전해서 그래.“
“그러세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유승은 주교님께 자기 인생을 떠맡긴 사람이잖아요. 또 부친의 불교를 떠나 기독교로 개종한 태도가 분명한 인물인지라, 저는 그가 신라에 가서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리라고 봅니다.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야 그렇지. 뭐…….”

알로펜은 안토니의 위로에도 심기가 편해지지는 안았다. 그러나 안토니의 위로 말이 고마워서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안토니! 자네는 내 곁에서 마냥 궂은 일만 하는데…….”
“아닙니다. 저는 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알지. 알고 말고…….”
“알아주심이면 됩니다. 아니, 알아주지 않으셔도 저는 세상 끝 날까지 주교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알로펜이 걸음을 멈추고 안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스쳐간다. 알로펜은 다시 걸음을 걷는다. 말없이. 안토니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다.
대진사에 돌아오니 점심때가 되었다. 안토니는 식당으로 가고, 알로펜은 그의 서재로 갔다. 서재에 들어선 알로펜은 자기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여, 신라로 떠난 사명자들. 피루즈나 유승, 그리고 그의 동행자들이 멀고 먼 신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지켜 주소서. 저들이 그곳 신라는 물론 한반도와 일본까지도 복음을 들고 가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게 하소서.”
알로펜은 기도를 멈추고 기도 자세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주여!”
주 예수의 이름만을 입속으로 부르고 있다. 주님의 위로가 그리웠다. 주여…….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듯이 당태종의 말에 무엇인가 불만스러움이 있는 듯 했다. 알로펜의 기독교가 아시아 전역을 향해 선교의 포부를 구체화하려 한다고 당태종은 알고 있으며, 그는 알로펜이 당나라 중심의 선교를 중앙아시아로 중심이동하려 한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지금 장안 땅에 머물고 있는 선교인력은 알로펜이 당나라에 처음 올 때 21명보다 2백 명 이상 외국인이 와 있고, 당나라 현지의 신자들도 상당수 된다. 일단 150여 명을 서역 지역과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로 이동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알로펜은 안토니를 불렀다.

”주교님, 왜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시는지요?”
알로펜이 장안의 기독교 인력을 중앙아시아로 이동시키는 지시가 안토니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1년쯤 후에는 페르시아 출신들은 페르시아로 보낼 계획이네.”

”왜 그렇게 하시려는 겁니까?”
”이보게 안토니, 페르시아에 이슬람 신자들이 가득이야. 우리는 이슬람과 선의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네. 페르시아 난민들이 이슬람을 얼마나 견제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 참이네. 그리고 우리에게 약점이 있으면 그걸 보완해야 하네.”

”그렇습니까?”
“1년 후가 아니라 곧, 당장아리도 이슬람 견제 인력을 페르시아로 보내고 싶네. 그리고 준비되는 데 일단 150여명을 쵸코국으로 이동시키겠네. 내가 동행하는 거야.”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장안 본부에는 몇 명 남지 않겠군요.”
“장안에서는 자네와 마리아 교수가 온 힘을 다하여 인력증원을 하게. 가능할 거야.”
“네, 주교님”

알로펜은 흥분해 있었다. 오후 시간을 휴식과 생각 가다듬기로 바빴던 알로펜은 저녁시간 전체 모임에서 믿음의 길, 전도자의 길에 대하여 강의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여러분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지가 며칠 되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속이 정리되지 않아서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인지 믿고자 하는 희망 수준에 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한 순간의 변화입니다. 저녁 먹기 전까지 나 자신이 신자인지 아닌지가 구분이 되지 않았으나 이 시간, 주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주 예수의 삶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시간 예수의 인생에 참여하는 사람을 우리는 사명자라고 합니다. 또 믿는 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여, 내가 주님의 삶에 동참하려 하나이다’ 할 때에 주 예수는 내 곁으로 달려 오사 ‘내가 무엇을 도우랴. 무엇을 해 주면 너의 마음이 흐뭇하겠느냐’고 내게 속삭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내 몸 다 바쳐서 너를 죄와 불법에서 구원해 주었는데, 그럼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려느냐?’고 물으실 때가 있지요. 내가 내 생명 모두를 너에게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내 놓으려 하느냐, 이 같은 말씀을 주님께로부터 듣는 신자의 수준은 높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주 예수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요. 그때 동반하여 죽은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사마르칸트를 중심한 중앙아시아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 가면 이슬람 신자들이 벌써 와있기도 하고, 현재까지 오지 않았을 경우라 해도 머지않아 그들이 옵니다. 이슬람 신자는 예수께서 나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대속죄 신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대속죄를 모르면 또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속죄 신앙이 불분명하면 그 신자는 예수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죽지 않았다면 너와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느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나와 관련이 없으면 너의 생명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다’ 하여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주교님 무섭습니다. 내가 주를 믿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어찌 그런 무자비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럼, 그대는 주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는가? 그리고 믿는다면 그 증거는?”
“네, 저는 주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그 증거는 주께서 말씀하셨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십자가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옳치, 제대로 배웠구먼. 좋아요. 주께서 그대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고 있는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 분명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께서 하실 일을 제가 대신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실 일이란?”
“주님이 하실 일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주를 믿지 않는 자들을 모두가 주 예수의 사람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 잘 배웠어요. 누가 당신에게 십자가 예수가 당신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가르쳐 주었습니까?”
“마리아 교수님께서요.”
“그래요. 이렇게 믿는 믿음은 순수하고 또 순결하여 계속해서 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어느 날 ‘당신이 내 어머니인 것을 증거해 주세요. 나를 낳았다고 한 말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나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정이 바로 서겠어요? 나라인들 만들어지겠어요. 주께서 십자가 지실 때 나도 그때 거기에 있었다고 한 바울 선생은 그래서 큰 인물입니다.

여러분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의 사람들이 하는 예수가 내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네 하는 말이 얼마나 거짓되고 가증스러운지 아세요. 예수쟁이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또는 ‘예수쟁이들은 성부, 성자, 성령을 같은 하나님의 신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셋으로 말하여 유일신 신앙을 더럽힌 사람들입니다’라고 여러분의 신앙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들이 누군가요?”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쵸코국과 사마르칸트로 가서 이슬람 신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는 중앙아시아 지대에는 투르크 사람들이 북방에서 많이 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사라센 아라비아 군대와 마주치는데 그들 사라센들이 이슬람 신앙으로 무장하여 여러분과 만나게 됩니다. 저들은 로마기독교를 통하여 예수 믿는 법을 배우려다 실패했지요. 바로 대속론과 삼위일체론인데, 이 부분에 있어 그들은 여러분을 향하여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무서운 사람들이군요. 또 우리의 대적이 될 터이니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이 우리의 친구도 되고 자칫 감정에 치우치면 원수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문제로 상대와 싸우다가 서로가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대속을 믿지 않고 우리로 삼신론, 즉 다신교 신자라고 몰아붙이면 싸움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바로 저들 이슬람을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오늘 우리의 과제가 되겠습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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