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인 소장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마르다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자기 마을에 도착하자 자기 집으로 그들을 초청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반면 마르다는 청소하고 손님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했다. 얼마 후 마르다는 자신의 처지와 동생 마리아의 태도에 화가나 요리하던 냄비를 시끄럽게 내리치며 마리아가 게으르다고 비난했다. 예수는 그 상황이 계속 진전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예수는 마르다가 걱정하고 안절부절 하는 상황을 꿰뚫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는 마리아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고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예수가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청소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보다 사람들 관계 속에 들어가 그 상황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고 좋은 선택임을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메시지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어떻게 화가 나는지를 깨달으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마리아의 선택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행했기 때문에 옳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가 사람을 돕는 방식이다. 예수는 정직하고 단순한 태도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예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물었다. 때때로 그 이유도 물었다. 예수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했다.

나는 돌봄에 있어 베풀고 사랑하고 도우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는 것을 본다. 성경 어디에도 다른 사람을 돕고 나서 그 사람의 눈을 할퀴고 상처를 내라는 메시지는 없다. 성경 어디에도 함께 5리를 더 간 후에 그 사람의 지팡이를 빼앗아 그 사람을 때리라는 메시지는 없다. 사람에게 관심 갖고 베푸는 일은 선하고 가치 있는 속성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동반의존자(상대방을 통제하고 돌보고, 책임지려는 중독자)는 그 제안을 ‘상처가 날 때까지 계속 베풀어야 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한다. 우리는 돌보는 일로 인해 상처받고도 몸서리치는 심각한 고통을 경험할 때까지 한참 동안 계속 베푼다. 뭔가를 거저 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소모하다시피 하며 거저 주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그것들을 우리 안에 남겨 두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돌보는 일과 관련하여 가장 필요하고 흥미로운 일은 돌보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언제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회복사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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