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44

갑자기 알로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함마드가 왜 그러느냐고 걱정하는데
알로펜은 ‘이 사람아 자네 마음이 어찌 그리도 잔인한가?
자네 식으로 하면 이 세상은 잔인하고 무서운 살인자들 세상이 되고 말 거야.
그럴 수는 없어. 용서하고 용서받는 은혜가 있다는 것은 저 하늘에
태양이 있고 달이 있는 것과 같아요.
태양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얼어 죽고 말 거야……’라고 말했어요.


   
▲ 서역의 성벽국가인 카쉬가르 시장 안의 풍경


우리 기독교를 삼신교, 신이 셋이서 활동하는 종교로 지적하는 이슬람과는 자칫하면 유일신 종교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기독교가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로 이슬람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게 표현할 때도 자칫하다가는 신이 셋이서 집합으로 활동하는 종교가 되기도 한다.

삼위일체라 하지 않은가. 세 가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일 뿐, 셋이 아니라 셋으로 보이는 것이다. 본체의 형용은 하나님 한 분 안에서의 성격이요 또는 위격이라고 표현한다. 마리아와 드보라가 알로펜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리아 교수님! 우리 복음의 전파자들이 조금은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너무 바쁘죠?”
“드보라여. 아마 주교님의 성격이 바쁘다고 느껴졌나보죠?”
“네, 공부를 깊이 있게 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성급해요.”
“뭐가요?”
마리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페르시아 포로들 가운데서도 우리들의 수도단에 합류하여 곧 ‘수도사’로 호칭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어림없어요. 그들은 기본에서부터 철저하게 다시 배우게 해야죠.”
“어떻게요?”
“나이가 많다고 어른일 수 없듯이 연륜으로가 아닌 수업을 하고 현장 실습을 철저하게 익히면서 다시 태어남의 과정을 철저하게 익혀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다마다요. 신앙이란 머리가 좋다고 해도 공부하듯이 다 되지 않죠. 경험의 과정입니다. 수도원 밥그릇 개수와 비교하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드보라 님, 내 경험으로는 100년 수도과정을 생각합니다. 최소한 100년을 이 몸으로 익힌 복음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아이쿠! 그럼 저는 아직도 어린애로군요.”
“글쎄요, 내가 쉽게 답변하기가 조심스럽군요. 사람마다 달라서 모두 숫자로 계산하기는 쉽지 않지요. 종교의 가르침은 타고난 출신이 있지요. 또 어느 선생님에게 배웠는가도 계산하면 좋겠지요?”
“아, 그럼. 저는 출생 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스승 복이야 말로 지상 최고의 복을 받았죠. 주교님과 마리아 교수님께 배움을 익히고 있으니 말입니다.
“글쎄요?”
“어머, 교수님은 인정하지 않으시군요.”
“그래요. 주교님께 배운 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저와는 아직 아니잖아요.”
“네, 네! 맞아요. 그 말씀에 공감해요. 또 인정해요.”
“그럼, 드보라는 내게 좀 잔소리 들으며 배우기로 하시죠.”
“네, 그러나 마리아 교수님 너무 혹독하시네요.”

“배움을 사양하시겠다는 뜻인가요? 그럼…….”
“아니, 아닙니다. 배우겠어요. 100년을 채우자 하시면 그대로 하겠어요.”
“네, 좋습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요. 드보라 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내 경험으로 본 평가이기에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네, 저는 마리아 교수님을 따라서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를 사양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요?”
“정말입니다. 마리아 교수님! 주교님을 처음 뵈올 때가 언제였나요? 꽤 오래 되었다고 압니다만.”

“내가 열일곱 살 때죠. 그때 나는 다마스커스 박물관 겸 신학교의 선생이었어요. 어느 날 알로펜 주교가 박물관에 들렀어요. 친구와 함께였어요. 그 친구가 바로 무함마드 이슬람 교주였지요.”
“어머, 그래요. 그들이 박물관에 와서 무엇을 했나요.”
“박물관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상과 그 좌우에 죄인들이 함께 매달려 있는 조각상이 있었어요. 그 앞에서 알로펜과 무함마드는 서로 간에 입씨름을 하더군요.”

“죄인들 가까이에 있는 예수는 그들을 구원해낼 사랑의 힘을 계속 생산해 낸다면서 알로펜이 무함마드에게 십자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음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간 사랑이고, 스스로 죄에서 해방 받을 길이 없는 인간은 반드시 예수의 희생을 통해서 새 길을 얻는다고 말했어요.
알로펜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할 때와는 달리 무함마드는 그건 어리석은 소리다. 그 같은 논리가 인간을 나약하게 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 문제는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 무슨 놈의 나약한 인간이 예수님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것이냐고 알로펜을 향해 마치 그가 남의 죄를 대신하겠다는 예수라도 되는 듯 공격형 발언을 하더군요.

티격태격, 한동안 언쟁을 하는데 갑자기 알로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함마드가 왜 그러느냐고 걱정하는데 알로펜은 ‘이 사람아 자네 마음이 어찌 그리도 잔인한가? 자네 식으로 하면 이 세상은 잔인하고 무서운 살인자들 세상이 되고 말 거야. 그럴 수는 없어. 용서하고 용서받는 은혜가 있다는 것은 저 하늘에 태양이 있고 달이 있는 것과 같아요. 태양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얼어 죽고 말 거야……’라고 말했어요.

알로펜은 계속해서 말을 하면서도 울고 있더군요. 알로펜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무함마드가 알로펜 곁으로 오더니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자네 같은 친구를 얻어서 기쁘다며 자기도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를 믿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슬람 종교가 은혜가 무엇인지, 또 긍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세상 모든 일을 칼로 다 해결하려 들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마리아 교수님, 주교님이 그때 교수님께 가까이로 다가오지 않으시던가요?”
“글쎄, 그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설명하다가 우시던 모습이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은혜요 사랑이었던가 봐요. 나는 그때부터 내 가슴에 알로펜을 간직하고 이날까지 살아왔어요.”
“정말요? 그 긴 세월, 50년도 더 되는 세월을 말입니까?”
“그럼요. 내 가슴에 알로펜이라는 사내는 예수님과 너무도 많이 닮은 사람이었으니 참고 기다리는 동안 힘들거나 지루하지도 않았지요.”

“아하, 알겠다.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
드보라는 마리아 교수를 다시금 생각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같은 여인이라고 말이다. 그녀 가까이 다가온 마리아 교수의 미소 띤 얼굴을 마주보다가 드보라는 마리아의 품에 안기듯 그 몸을 던진다.
“드보라, 왜 그래. 내가 사낸 줄 착각하는 거야?”
“그래요. 나의 사내로 교수님을 선택합니다.”

드보라는 마리아의 허리춤을 두 손으로 깍지질러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아이고, 허리야! 왜 그래. 웬 힘이 이토록 센 거야.”
마리아는 드보라의 힘에 압도되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다 활짝 미소 지으며 사랑스런 누이처럼 그 이름을 부른다.

“드보라! 나는 드보라가 나처럼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주교님을 함께 보필하는 것도 그렇지만 주교님은 이곳 중국 땅은 물론 서역의 성벽 국가들과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몽골이고 서쪽으로는 다마스커스, 그 너머 예루살렘까지 우리 아시아 기독교의 틀을 생각하고 계시거든, 이 일에 우리들이 주교님의 힘이 되어야 해요. 우리 두 여인이 희생하면 주님의 십자가 길이 조금은 더 가벼울 거야.”

“주님의 길이 그럼 우리 둘의 길도 되나요?”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가 주교님께 배운 예수는 지금 우리와 함께 행동하시는 예수야. 예수가 주교님과 그리고 우리들과도 함께 하는 거야. 반드시. 그래야만 예수 십자가의 대속(代贖)의 동반자가 된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주여! 예수여! 하지만 그들 대개는 예수와 함께 놀지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와 한 몸 한 동작으로 살아야 해요. 마치 예수처럼. 내가 예수인 것처럼.”

“그래요. 뭔가 들려요. 보이기도 하고요. 대속이란 생명의 동일체 같은 것.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이듯이 말이죠.”
“예수처럼 살아가는 주교님을 향해 결혼 동반자보다는 복음 전파자로의 동반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 둘이 서른 살 무렵, 결혼을 하자면 가능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우리가 결혼 문제로 대화해 본 일은 없어요. 그런데 서른 무렵에 주교님이 네스토리우스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아라비아를 주목하는 선교의 포부를 말하더군요. 나 역시 결혼 대상의 욕망이 아니라 아시아 선교를 위한 준비를 더 했지요. 아시아의 언어들, 관습 또는 민족들의 문화현상을 배우는 일에 몰두했어요.

“그럼 주교님과 상의했나요?”
“아니, 아니야. 천만의 말씀. 나 스스로가 알로펜을 이끌 수도 있다는 자부심도 가졌었지.”
“교수님이 오히려 주교님을 독신자의 길로 유도하셨군요.”

“뭐 그건 아니고……. 이심전심이라면 내가 건방지겠지?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겠다 싶던 때에 절대불가라는 명령이 하늘에서 내려왔었어!”
드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드보라가 소리쳤다.
“뭐였어요?”
“알아맞혀 봐요!”
“전 모르겠군요.”

드보라가 마리아 교수를 향해 눈 맞춤을 계속했다.
“그때가 바로 무함마드가 새 종교 선언을 할 때였어요. 나는 그때까지 다마스커스에서 결혼하자고 알로펜이 부를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러나 무함마드가 새 종교를 창업한 이후 나는 주교님의 지시 없이 다마스커스를 떠나 주교님 곁으로 왔어요. 결혼이란 물 건너 간 것으로 정리했지요.”
“왜요? 왜 주교님의 의견도 듣지 않고서 그랬나요?”
“아니, 언제는 그가 결혼하자고 했었나 뭐. 그냥 내 판단이었어요. 후에 그 말을 했더니 주교님도 그랬다고 하더군.”
“숙명처럼…….”
“그래, 숙명이야. 우리는 어렸을 때 무함마드와의 만남에서 그가 예수가 어떻게 내 죄를 대속했느냐고 물을 때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어요. 삼위일체론도 말이죠. 그래서 삼위일체를 삼신교나 다신교로 몰아붙이는 무슬림들의 비난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을 가졌었지. 그런 우리가 결혼 문제를 꺼낼 수 있었겠어요.”

“참으로 무자비하군요. 그 세월이 말이죠.”
“지금 현재 세계 각지의 기독교 종파들 중에 ‘대속론’이나 ‘삼위일체론’을 힘차게 가르치는 곳은 우리들이 있는 이곳이이라고 자부합니다. 예수가 내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확신에 찬 신앙으로 말입니다.”
“이제는 서로 더 정신을 차려야겠어요. 마리아 교수처럼 멋있고 값있게 살기 위해서 말이죠.”
“거 무슨 말씀이신지?”

“복음의 사람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어요. 저도 나를 위해 모든 욕망을 접어버리신 마리아 교수님처럼 살겠어요. 멋지게요.”
“멋지게라고? 그래요 예수 믿자고, 책임감 있게 살자고 독신이면 멋집니다. 주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는 멋진 겁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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