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코의 사형제도와 속죄의 이야기

   
▲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이선희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가족을 살해한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유족, 과연 그것으로 가슴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그리고 범인은 죽음으로서 자신의 죄를 갚을 수 있는 걸까.
아내가 저녁 찬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강도에게 온몸이 묶인 채 무참히 살해된 8살 외동딸 마나미, 11년 뒤 아내였던 사요코도 한 노인의 칼에 찔려 살해당하고, 그리고 숨겨진 제3의 죽음….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세 사건과 뒤얽힌 이야기를 긴박하게 풀어간다.

작가 인생 30년을 맞은 히가시노 게이코, 일본 문학계의 대표적 상들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작품은 사형제도의 존속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동안 소설을 통해 사회문제를 고발해 온 저자는 이번 작품에선 사형제도에 뒤엉켜 있는 살인과 형벌, 속죄, 사형제도의 존속, 생명의 소중함 등의 주제를 풀어냈다.

이야기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주인공 나카하라 미치마사가 이혼한 전 부인 사요코가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11년 전 여덟 살이었던 딸 마나미를 강도에게 잃었다. 딸을 살해한 범인은 강도살인죄로 수감된 전과가 있었고, 가석방 중인 몸으로 같은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재판에서 범인은 사형을 받았지만 부부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깨진 가정뿐이었다. 딸의 죽음 앞에 더 이상 부부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조차 아팠던 이들은 결국 이혼했다.

딸을 잃은 지 11년 뒤, 딸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나카하라를 찾아온다. 전 부인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딸을 잃고 나카하라와 헤어진 후 ‘사형제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었다. 강도살인범을 풀어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딸은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녀의 절규였던 것이다. 사요코를 죽인 범인은 경찰에 출두해 돈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수했지만 손녀에 이어 딸을 잃은 그녀의 부모가 원하는 것은 역시 사요코가 원했던 단 하나, 범인의 사형이었다.

사요코의 살인 사건을 접하면서 나카하라는 그녀의 원고를 살피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요코의 취재 대상이었던 이구치 사오리, 사요코를 죽인 범인의 사위 후미야와 그녀가 어린 시절 연인사이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사요코의 죽음과 연계된 또 하나의 숨겨진 사건, 21년 간 가슴 속에 선명하게 박힌 ‘살인자’라는 글자로 인해 늘 속죄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남녀의 이야기….
범죄에 대한 가장 큰 형벌로 사형이 내려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잘못된 판결의 가능성과 속죄의 기회 등 사형으로써 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사형제도를 존속하고 있다.

끈질긴 추적 끝에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모든 진상을 알게 된 나카하라는 전 부인 사요코와 다른 결론을 내린다. 가슴 속 깊이 간직해 온 21년 전의 비밀을 고백한 후미야에게 남긴 나카하라의 마지막 말.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이 의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겠지요. 이번에는 당신이 고민해서 내린 대답을 정답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저자가 던지는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로 묶어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의 물음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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