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48

“이곳의 벽화들은 한 사람이 그리다가 늙어 세상을 떠나면 그 아들이 이어서 그리고, 그도 세상을 떠나 미처 마무리되지 않은 것을 그 아들이 마저 그려서 3대가 완성했다고 하오. 어떤가? 저들 불승들이 보여주는 집중력과 목표지향의 간절함을 대충 체감할 수 있겠소?”

   
▲ 둔황의 막고굴(모가오 굴) 현관

“복음이 여기 있습니다.”
알로펜은 다시 한 번 복음의 오묘함을 되새겨본다. 모두가 말없이 그가 한 말을 듣고 좀 더 속 깊은 생각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늘 저 멀리서 쏟아질듯이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 둘 셋 넷 손가락으로 헤아리다가 혼자서 웃었다.

우측으로 뻗어 흐르는 천산산맥 그리고 좌측으로 보이는 곤륜산, 그 산맥을 따르다보면 파미르 산맥의 수많은 봉우리들, 히말라야의 힌두쿠시로 이어지는 도도한 산맥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두르지 말거라. 가슴부터 밀어 넣어라. 머리가 먼저 재주부리면 예수 만나기가 퍽 어려우니라. 알로펜은 50여 년 전 무함마드와 다마스커스에서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때 무함마드의 억양에는 가끔씩 단성적인 감정이 섞여있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본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사람일뿐, 그에게서 신성을 찾거나 신적인 거룩을 기대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그가 신 자신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행위는 미신이요 광신이라고 소리쳤었다. 생각 깊은 곳으로 잦아드는 알로펜은 어느 순간, 누가 그의 곁에 와 있음을 느꼈다.

그가 옆에 선 사람을 확인하려는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알로펜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주교님, 저는 허탄의 어거스틴 주교로부터 배우고 있는 니꼴라이 신부입니다. 동료 세 명과 동무하여 둔황 견학을 왔습니다. 그런데 주교님, 저는 주교님 곁에 남고 싶으니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뭐, 내 곁에 남겠다고….”
알로펜은 말을 하려다가 말허리를 자르고는 니꼴라이를 바라본다.

“네, 주교님. 저는 이전부터 기독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그냥 교리로만 받아들이면서 지내왔으나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확신에 찬 근거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글쎄, 니꼴라이 형제에게는 소속 교단이 있고, 또 로마 교구 사제로 형제를 보낸 가족들도 있으니 너무 가볍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 거야.”
“이전부터 저는 아시아 일대 선교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땅에 먼저 온 네스토리안 사제들과의 많은 충돌을 지켜보면서 왜 저렇게 생각이 좁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주교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고 보니 주교님을 모시고 일하고 싶습니다.”
“글쎄, 그래도 더 생각해봄이 어떨지….”
알로펜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였다. 그의 망설임이 니꼴라이 사제의 마음을 더욱 알로펜에게로 기울게 했다.

“저는 허탄에서 같이 온 친구들에게도 제 생각을 말해두었습니다. 저는 저의 행동이 경솔하지 않다고 봅니다. 교구 간에 교환사역을 하면서 타 교구는 어떤 점이 더 우수한가도 생각할 수 있었지요. 더구나 저는 주교님의 지난 50여 년 간 중앙아시아와 당나라 선교 내용을 전수 받고, 더 큰 것은 주교님의 너그러우신 신앙적 자세를 곁에서 꼭 배우고 싶습니다. 저를 말석으로 받아주세요.”
“거참 배짱도 두둑하구먼, 허허허!”
둘은 더는 말없이 둔황의 하늘 주변을 거닐었다. 둔황의 천산산맥 남쪽을 지나가는 오아시스 길은 두 갈레로 갈라진다. 하나의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언저리인 둔황에서 투루판, 쿠처, 카슈가르에 이르는 곳으로 향한다. 둔황은 또 누란, 먼핑(니야), 허탄, 야르칸트를 지나서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남로의 형식을 가진다.

둔황은 5세기에 이르러 당나라가 투르크계 유목민들을 물리치고, 쿠처에 안서 도호부를 설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알로펜이 둔황을 여행할 때는 당나라 세력이 둔황을 비롯해 타클라마칸의 사막도시인 서역의 성곽 국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였다. 서역의 완전지배를 시도하고 당나라 기마군이 알로펜의 둔황과 투르판(쵸코국) 여행을 멀지 않은 곳에서 경호도 겸할 정도로 당나라는 여유가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쿰바홀은 일부 자기 수하들과 로마교구 선교사들과 함께 하는 자리인지라 자기 능력을 슬쩍 뽐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양을 잡고 투루판 포도주와 과일은 물론 당나라 요리들까지 푸짐했다.
“쿰 부주교, 왜 이런 일을 합니까? 개척 선교단 책임자답지 않게….”
알로펜 주교의 말에 쿰 부주교는 잠시 긴장하는 표정을 짓다가 하하하 웃음으로 해답을 했다.
“부주교, 나 말고 믿는 곳이 있나요?”
“주교님, 어찌 그럴 리가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내 땅 쵸코국(투루판)에 가까이 오고, 여기 내 제자들이 나를 지켜 주니까 갑자기 이놈의 목에 힘이 좀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주교님이 지켜 가시는 아시아 선교 경영에 부담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만찬은 저의 제자들이 주교님과 점차 주교님처럼 큰일 해낼 우리의 젊은 로마가톨릭 선교사님들을 겸사겸사 대접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르지만….”

알로펜은 웃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쿰바홀의 웃음소리가 왠지 평소와 느낌이 달랐다.
“쿰바홀 부주교! 오늘 기분이 많이 좋은가요?”
“네, 주교님. 처음에는 아차, 위기로구나. 내가 기도가 부족했지 하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런 경우를 그냥 판이 급하게 바뀌었다고 할까….”
쿰바홀은 자기가 말을 이어가는데 자칫 젊은 선교사들이 민망해 할까봐서 조심스러웠다.
“아니오. 됐소. 나야말로 오늘 기분이 좋고, 특별히 둔황에 사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기에 기쁘고, 더구나 이토록 상당한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저 생각 같아서는 일어나서 춤이라도 한판 추고 싶은 마음이구려.”

“그럼은요, 주교님 오늘은 참 좋은 날이구먼요. 특별히 아까 온 군인들이 황궁의 기병들이죠? 그럼 기병들이 타고 온 말들이 한혈마지요? 황상께서 우리 주교님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시는지 오늘 또 알았습니다.”
“아니오. 황궁 기병은 아니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당나라의 주둔 병사들이 있는데 그들이 황제의 지시를 따라서 다녀간 거지.”
“그겁니다. 당나라는 자기들을 ‘대당’이라고 하죠. 바로 그 대당제국 황제가 그림자처럼 우리 주교님을 보호하시니 기분이 더더욱 좋지요.”
“예끼, 이 사람. 겨우 당나라 황제로 인해 이리 감격하는가? 우리는 천사들의 보호를 받는 신분이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직접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자식들이라고. 쿰 부주교 너무 들뜨지 마시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나요. 저 같은 종자는 아직 멀었어요. 주교님께서 과분하게 부주교 직함을 주셨으나 그 값을 못하는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부끄럽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새 친구들 앞에서 내 속 창자를 다 드러낸 꼴이 됐군요. 젊은이들 날 용서하시오.”
쿰바홀이 일어나서 로마교구 사제들에게 머리 숙여 큰절을 했다.
“아니, 아닙니다. 저희들은요….”
로마교회의 젊은 선교사들 20여명이 모두 일어났다가 무릎 꿇고 앉는다.

“이거 왜들 이러는가. 좋은 음식이 다 식는구먼.”
알로펜 주교가 식탁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는다.
“주의 말씀에 하늘나라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다 하시더니 오늘 저희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신 스승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니꼴라이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의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심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막고굴 견학에 나섰다. 둔황 시내를 지나 동남쪽 사막 길을 걸어 25km쯤 갔을까? 그곳엔 포플러 나무, 오리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뒤쪽 동쪽에 자리 잡은 산웨이 산(三危山), 서쪽으로는 모래언덕을 이루는 밍사산(鳴沙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두 산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울인 다취엔허(大危河) 주변에는 녹색 풀밭들이 보인다. 밍사산 동쪽으로 1천여미터, 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크기가 배나 더 확대되었다는 석굴들이 바로 모가오 굴(막고굴) 또는 둔황 석굴이다. 산비탈을 따라 길게 일정한 간격으로 뻗은 굴은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 석굴의 유래에 대한 당나라의 설명에 의하면 전진 시대인 AD 366년 낙준(樂樽)이라는 수도승이 이곳으로 왔을 때인데 석양 무렵 산웨이 산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천불상(千佛像)이 보여 그 수도승은 산웨이 산에서 보이는 밍사산 비탈에 석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 후 이곳은 그가 머물러 수도하는 수행장이자 원나라 지배시대까지 1천여 년 동안 불교 수행자는 물론 기독교와 마니교, 심지어 이슬람이나 조로아스터교까지도 그들의 활동자료와 역사기록들을 보관하는 서고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알로펜을 따라나선 로마(가톨릭)교구 젊은 선교사들은 수십, 수백을 뛰어넘는 석굴들을 보고 감탄한다. 각 굴마다 수도자들이 따로 있는 듯한데, 그렇다면 저들 불승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기도할까. 천불동! 그럼 일천불인가, 또는 삼천불인가 하면서 가늠해 본다.
둔황 전역에 불교도들의 기도굴이 많이 있다. 쿰바홀 부주교 말로는 장안에서 둔황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황하가 흐르는 데 병령석굴이 있고, 쿠처에는 구마라습이라는 고승이 개척한 키질석굴이 있다. 그곳들도 삼천석굴이다.

“참 불교도들의 진리 탐구열은 놀라울 정도군요.”
“그렇답니다.”
쿰바홀이 답변을 하는 그때 한 동굴의 사방 벽, 그리고 천장에 그려진 벽화를 살피며 승려와 더불어 대화를 하던 알로펜이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일행 모두는 알로펜이 있는 석굴로 들어갔다. 수많은 부처상들이 청·홍·백 등의 다향한 색채로 그려져 있었다. 젊은 사제들은 저게 뭐야, 하는 식으로 대충 훑어보다가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들을 알로펜이 돌려세웠다.

“여보게들, 젊은 사제들이여! 여기 이 승려의 설명을 들으니 이곳의 벽화들은 한 사람이 그리다가 늙어 세상을 떠나면 그 아들이 이어서 그리고, 그도 세상을 떠나 미처 마무리되지 않은 것을 그 아들이 마저 그려서 완성했다고 하오. 어떤가? 저들 불승들이 보여주는 집중력과 목표지향의 간절함을 대충 체감할 수 있겠소? 바로 이런 부분을 놓치면 안 됩니다. 나는 이곳 서역에서 당나라로 들어가기 전에 10여년 머물렀어요. 서역에 와서 느낀 부처님 제자들의 구도자로의 모습에 많이 놀랐답니다.

우리 기독교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간절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우리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에세네파들이 보여준 집중력이나 속사도시대 초기 동·서 교부들의 고행수도 등에서 감동을 받았으나 기독교가 카타콤 환경을 내던지고 콘스탄티누스의 야망에 휘둘리면서부터는 순수성을 많이 잃었다고 봅니다. 이제 나나 여러분들이 깊이 유념해 진리를 온몸으로 사는 모습을 만들어내야 하고 또 모범을 보여 그것으로 가르침 삼아야 합니다.”

알로펜의 간곡한 권고, 특히 석벽에 새겨놓은 불화를 완성하는데 3대가 희생했으니 대략 10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젊은 사제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 우리가 더는 함부로 사물을 평가해서는 안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래야 하고 말고….”

일행들이 불상이 그려진 석굴들을 지나서 벽화가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알로펜은 이제 그들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눈빛이 반짝이는 젊은이들이 좋았다. 특히 이들이 장차 로마(가톨릭)교회를 짊어지고 나갈 인물들이 될 수도 있고, 저들이 ‘로마 주교’를 ‘교황’이라고 우기지만 교황은 로마교회 즉 유럽교회의 대표이고, 나는 중앙아시아와 서역은 물론 중국 땅에 터를 잡았으니 네스토리우스파가 아니라 유럽교회의 상대인 아시아 교회의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알로펜은 지난 50여 년 간 네스토리우스파라면서 로마교회가 그와 그의 제자들에게 행했던 핍박과 인격모독을 다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알로펜은 크게 외쳤다.
“여보게들! 장차 동·서 기독교의 만남과 교리적 장애에 부딪쳐서 고통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보호자가 되어줄 로마교회의 젊은 사제들이여!”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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