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4

   
▲ 한경석 목사
운화교회 담임

“주님의 약속을 굳게 지켜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성어의 시발은 춘추시대(春秋时代) 노(魯)나라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생(尾生)이라는 청년은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어느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생은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학식이나 배움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신의와 약속을 무엇보다 중하게 여기는 사람인지라 그 여인도 약속을 지킬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아서 망설이는 중에 소나기가 내려 약속한 곳으로 나가지 못했다.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만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고 폭우로 변한 장대비는 점점 불어올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나 미생은 여인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미생지신(尾生之信)이다.

미생에 대해서는 논어(論語)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미생은 너무나 우직하게 신의를 지킨 나머지 이웃집 사람이 미생을 찾아와 간장을 빌려 달라고 하자 자신의 집에도 간장이 떨어진 것을 알고 뒷문으로 나가 다른 집에 가서 간장을 빌려와서 주었던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당시에 이런 미생의 믿음에 대해서 융통성이 없고 미련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는 공자(公子)가 도둑질로 유명한 도척이라는 사람을 개심시키기 위해 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공자의 말을 듣고 있던 도척은 “이런 인간은 책형(磔刑:죄인을 기둥에 묶어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 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입니다”라고 미생의 믿음을 비판하였다(장자 도척편).

오늘날도 미생의 신의(信義)에 대해서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회 풍토가 약속과 신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서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비합리적인 생각(voluntary abstract thought)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평가 내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부정적(negative)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일 미생이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자라고 비난한다면 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 융통성이 없는 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에 못 박히신 예수님도 융통성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 그 큰 사랑을 베푸셨는데도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다마 받게 하시고, 찾을 때마다 찾게 하시고, 두드릴 때마다 열어주시고 도우신다는(마 7:78) 주님의 말씀이 융통성 없는 약속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4:18)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지 아니하시고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 사랑을 베푸신 것은 융통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늘 구원과 축복을 위한 소망도 있어야 하지만 믿음이 믿음 되게 하는 사랑,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이 그 중에 제일이라고 말씀하셨다(고전 13:13).

미생의 일화를 그저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로 여기고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진실과 신뢰가 통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약속을 굳게 지켜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우리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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