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독신자들이 함께 하는 성결수도회-원장 박희진 목사에게 듣다

유하면 할수록, 지배하면 할수록 욕망은 커지고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실체
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기쁨 누려야
독신 수도회 2곳 외에 가정을 가진 이들끼리 영성 훈련 하는 제3의·재속 수도회

---------------------------------------

   
▲ 박희진 목사

성결수도회 원장 박희진 목사는 1985년에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폐결핵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이후 1989년 결혼하기 위해 청첩장을 들고 목사님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공용복 선생에 대한 얘기를 듣고 감동받아 결혼을 포기했다. 그리고 공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작정한다. 공 선생의 뜻을 따라 세워진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수도사의 과정에 입문한다. 그리고는 1992년 성결수도회가 시작될 때 일원으로 참여했고, 수도회에서 좀 떨어진 곳에 양문교회도 개척, 특수목회를 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성결·은총 수도회는 현장과 단절돼 있지 않았고, 시끌시끌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이 바로 ‘심령부흥 대사경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흥영성수련원에서 진행된 이 사경회에는 수도회의 일원들인 수도사(목사, 전도사) 그리고 그들이 속한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연합)의 70여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 교단은 공 선생님 생전에 발족한 교단인데, 1년에 두 차례 월요일부터 금요일 밤까지 이뤄진다.
부모와 함께 온 주일학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사경회에 참여하는데, 이번이 56차로 진행되고 있었다. ‘울자, 목 놓아 울어대자. 예수님처럼 울자. 이 염치없는 우리의 게으름과 비뚤어진 삶으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 지금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속히 옮겨갈 때이다. 듣자, 교회를 향한 회개와 각성의 아우성을!’
이런 사경회의 외침대로 신자와 목회자들의 통성 기도 소리가 인터뷰 하는 방에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기독교(신교)에서 현장(교회생활 및 사회생활)과 연결고리를 끈끈하게 하면서도 수도회적 영성훈련에 진력하는 얘기를 나누었다.

---------------------------------------

>> 성결수도회와 그 외에 공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수도회의 현황이 궁금하다.

남녀독신수도회인 성결·은총수도회가 있고, 목사나 평신도 중에서 가정을 유지하면서도 영성 훈련에 매진하기 위해 제3수도회와 재속수도회가 남녀로 구분돼 각각 합숙 및 별도의 모임을 가지며 훈련하고 있다. 그들이 속한 가정과 직장 속에서 철저히 훈련한다. 이처럼 공용복 선생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6곳의 남녀 수도회는 연합회를 형성해 영성훈련을 하는데, 탁발전도를 하기도 한다.

독신 수도회인 성결수도회에는 현재 정회원 5명, 준회원 7명 등 12명이 함께 하며, 은총수도회에는 2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정회원은 그리스도영성신학교와 신학원 6년 과정을 마친 후 3년의 수련기간을 통과한 이들이고, 준회원은 그 과정에 입문하여 훈련받고 있는 이들이다.
기독교에 수도회가 있다는 것도 의아한데 결혼을 하고도 가정 속에서도 수도적인 삶에 진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가톨릭의 모든 수도회에도 그런 제도가 다 있다. 가정에 속한 수도사들이 영성이나 재정 등 여러모로 힘을 많이 공급해 준다. 수도회들마다 그들을 은인이라고 한다. 제3수도회는 한 달에 2박3일씩 훈련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이들로 구성된 재속 수도회는 1년에 몇 차례 모임을 갖는다. 6개의 수도회가 연합으로 하는 영성훈련도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탁발전도는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 지름길로 연결된다. 정신과 육체가 멀쩡한데 남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할 때 자존심 상하고, 무시와 모욕을 당할 때는 선을 행할 때보다 자아가 훨씬 작아지고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프랜시스는 탁발로 성인이 되지 않았나. 이외에도 철야 훈련, 금식 훈련 등이 몸에 배이도록 한다.

영성훈련이 약해지면 다른 것이 아무리 뛰어나도 맹탕이다. 영적인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 가정에 속한 수도사들이라고 해도 평소에 새벽예배, 큐티, 절제 등 힘겨울 정도의 규칙을 따른다. 그런 훈련은 예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고자 하는(롬 8:29~30, 마 5:48, 벧전 1:15~16)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화답이다.

>> 생활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하나님께 빌어먹고 있다. 그런데도 내 힘으로 사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저는 비렁뱅이입니다’하며 하나님이 주신대로 만족하며 산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인 청빈, 순결, 순명의 정신을 따라 산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원하는 가난을 기쁨으로 추구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무소유의 정신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고 살아간다. 까마귀보다 형편이 나아 먹고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머리도 스스로 알아서 깎고, 수도복은 우리에게 맞는 일하기 좋고 색상이 튀지 않게 통일해서 입으니 옷을 사 입는 데도 돈이 들지 않는다.

사실 인간은 소유하면 할수록, 지배하면 할수록 그 욕망은 커지고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욕망이 사라지지 않으면 지배당하게 된다. 인간의 실체가 그렇다. 그런데 예수님을 시험한 대목에서 보듯이 마귀는 그런 것을 다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반격을 보라. 물리치시지 않나. 마귀가 유혹하는 것에 아직도 연연하여 복을 추구하는 수준의 신앙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오직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런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이는 세계를 소유한 사람이다.

마태복음 10장 말씀처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듯이 수련회를 해도 회비를 받지 않고 헌금 얘기도 일절 하지 않는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듯이, 머리둘 곳이 없이 사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는 천국을 앞당겨서 살고자 한다.
 

>> 양문교회 목회를 병행하신다고 들었는데.

평소에는 수도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훈련하고, 수요일과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 인도, 상담, 심방 등을 하고 있다. 70여 명의 신자들 중 수도자들과 신학생들이 2/3에 달하고 나머지는 일반 신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수도사들 중에는 교단의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하시는 이들도 있다.
공 선생님은 생전에 제자들 그룹도 형성되고 수도회나 교단, 신학교 등이 조성되는 것을 보면서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다.

창립자의 영성이 1대로 끝나버리는 곳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모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사실 신교에는 독일의 바실레아 쉴링크가 세운 수도회 외에는 별로 없다. 기독교(신교)에서는 수도회가 외형적으로 크고 작은 것을 떠나 거부감을 나타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사당동의 칼빈주의자들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선생님은 앞장서서 뭘 하자고 하는 분이 아니셨다. 제자들이 무엇을 해본다고 하면서 도와주세요, 기도해주세요 하면 그때 조언을 주신다. 저희 지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선생님이 밑거름 역할을 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회칙이나, 수도생활의 교훈들, 중세수도원 자료나 현장 체험 등을 가지고 준비해서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맞는 수도회로 다듬어 주셨다.

장신대 유해룡 교수님(장신대, 은성수도원 영성훈련)과도 교제를 하는데, 기독교에도 이런 수도회가 있는 줄 알았으면 진즉 이곳에서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얘기 하더라. 은성수도원 설립자 엄두섭 목사님이나 주선애 교수님도 여러 차례 오셔서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한국교회에 이런 곳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수도원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왜 수도회가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속화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그것은 죄의 속성을 가진 인간의 실체, 욕심투성이인 인간이기 때문에, 이 땅에 바벨탑을 쌓아놓고 자신을 자랑하고 지배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부하고 갈 수 있는 것이 수도사다. 모든 일에 주님을 사랑하듯 온유와 겸손으로 하고, 신령한 복은 현실의 복이 아닌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임을 몸소 체화하여 완덕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2천년의 역사 가운데 죄인들은 늘 있었고, 죄악은 끊어질 줄 모르고 있다. 흙탕물을 정화시켜야 한다. 맑은 물을 공급받는 곳이 수도회다. 하나님 말씀의 순수한 수원지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빛이 꺼져가서 길에 밟히는 꼴이 되어버렸다. 죄가 넘쳐나고 있다. 마지막 때에 우리도 프랜시스처럼 있는 자리에서 정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이도저도 되지 않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영성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목요일은 새벽 2시 30분까지 회개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북한과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 현 상황에서 교회가 새롭게 되려면 무엇을 가장 시급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기복신앙이란 정욕을 만족시켜주는 것인데, 이것에 맛들려 있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참회와 절제가 필요하다. 철저히 경건생활을 하는 것이 요즘 시대에는 절실하다. 요한 웨슬리의 말처럼 성결의 복음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성결의 은총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요즘 신자들도 먹고 마시는 등 정욕에 빠져있다.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다. 주님은 물질적인 축복을 일절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큰교회나 그 교회 목회자임을 자랑한다.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착각하면서 산다. 웨슬리가 말한대로 감리교가 없어져도 좋지만 성결의 복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던 그 절실한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 23년째 수도사로, 목회자로 사역을 하시는데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가.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제가 수도회에 들어올 때 5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왔는데, 2명이 남아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지지해주고 계신다. 인간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역시도 한계가 있다. 수도자는 예수님 사랑에 맛들린 자이다. 하늘의 원리를 따르는 자이다. 그러나 수도자는 하나님이 내시지 않고는 어렵다. 수도사는 외줄타기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놔버리면 추락해버린다.

수도사로 입문해 온전해지기를 추구하지만 어느새 여지없이 그런 모습은 없어지고, 인간의 본성인 죄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성령과 육신의 소욕 가운데서 적당히 타협하기라도 하면 하나님은 숨어버리신다. 우리 안의 옛 사람을 들춰내셔서 철저히 부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있다. 모양만 수도사가 아니라 정금과 같은 수도자가 되기를 열망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 능력으로 살게 하시려는 뜻에 철저히 순명하고 있다.

 

 




병상에서 40여 년간 누워서 복음의 감화 감동을 끼친
공용복, 그는 누구인가

   
 

병상에서 40여 년간 생활하면서도 그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하나님이 공용복 선생을 부르신 목적,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게 하고자 하시는 뜻에 가장 철저히 헌신했다. 성도들이 완덕에 이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경건한 행실이라고 여긴 공 선생은 언제나 완덕(完德)을 향해 정진했고, 복음의 삼덕인 청빈, 순결, 순종을 일생동안 철저하게 실천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인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이 발병돼 2년 뒤부터는 급속도로 몸이 악화되어 누워서 지내게 됐다. 사촌누님의 전도로 교회에 등록하고, 그 이듬해인 1967년 대천 성주산기도원에서 성령의 불세례를 체험하면서 560일간을 머무르게 된다.

육체는 꼼짝없이 나무토막 같았다. 목, 허리, 다리가 굳어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도 옆으로 돌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리는 펴지도 못하게 되어 오므라진 채 평생을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5일에 한번 용변을 볼 정도였고, 금식을 많이 했다. 기도원에서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뒤부터는 병 낫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포기하겠다고, 대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병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다.

썬다싱, 내촌감삼, 프랜시스, 이성봉 목사, 이용도 목사 등 성인들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으며 그때부터 1년여 동안 성경을 7독 하고, 예배 인도와 적극적인 증거생활을 하기에 이르른다. 건강과 재정의 어려움, 가정사 등의 시험풍파를 겪었고, 여러 죄성과 욕망을 골고루 훈련받으면서 죄의 법칙에서 해방됐다.
1971년부터는 생명수의 폭주가 시작됐고, 병고침과 귀신 쫓는 일들이 활발해졌다. 영계론, 죄론, 성인론, 속죄론, 성결론 등이 체계화되고 구체화되었다.

5시 반에 기상해 새벽예배, 식사(채식으로 두 끼, 소량), 경건시간, 손님 접견해 몸이 곤죽이 될 정도로 진을 다 빼내는 생활을 했다. 여름에도 겨울 스웨터를 입을 정도로 건강은 좋지 않았고, 통증도 심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엄살을 부리지 않고, 신음소리 하나도 밖으로 나가지 않게 했다.

그러는 가운데 소문을 듣고 진리에 대해, 성경에 대해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찾아와 깊은 영감을 주기 시작했다. 신학적인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고난과 연단을 통해 정결케 하는 신령한 단계에 이르는 실재적이며 체험적인 신앙이 전해지자 역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변화되어 결혼을 포기하고, 교편생활을 청산하는 등 세속의 질서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40세부터는 종말론 연구세미나, 제1차 심령부흥 대사경회를 시작했고,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란 책을 출판했으며, 신학교(현 경기영성신학·신학원)을 설립했고, 교단도 설립하기에 이르른다. 46세인 1992년에 성결수도회(남자 독신), 그 이듬해에는 은총수도회(여성 독신)를 설립했으며, 2002년 시흥영성수련원을 건립했다.

58세인 2005년 1월 3일 소천하기 몇 년 전까지도 뇌경색, 당뇨 합병, 우측 대퇴부 골절 사고로 몇 차례 병원에 입원했으며, 병자들을 위한 기도에 힘쓰기도 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