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소피아 예배당 주변전경

 “그래, 너도 장차 알겠지만 그래서 나는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처럼
법당에만 있지 않고 차라리 땅꾼, 걸인들, 광대들, 짐승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천민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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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은 원효와 함께 밤을 세고 싶어 따라 나왔으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사상적 공감도가 서로 좋다고 해도 원효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가. 원효도 처음에는 유승 일행의 처소에 가겠다고 했다가 차후로 미룬 의미를 떠올려볼 때 원효의 밤까지 파고들지 말아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을 정리했다. 유승이 원효를 불렀다. 생각에 잠겨서 말없이 걸어가던 원효가 발걸음을 멈췄다.

“유승 도사, 왜 마음이 바뀌었소이까. 풍찬노숙입니다. 나와 함께 갔다가는 서라벌 구렁이가 도사의 장딴지를 물어뜯을지 모르니 단단히 각오하시오.”

“알겠습니다. 원효 대사님. 그래서인데 우리 서로의 밤은 침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그래야지. 생각 잘 하셨소이다. 오늘은 각기 처소로 가고 다음 기회에 만납시다.”

유승은 원효와 헤어진 후 객관으로 돌아와서 피루즈 황태자의 방으로 갔다. 그는 피루즈에게 원효와 함께 했던 일들을 말했다.

“참으로 귀한 분들의 만남이셨구려. 부럽습니다. 나도 원효 대사 만나는 자리를 유승 사제께서 한 번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인생을 일체무애인이라 하여 하늘 아래 그 어떤 인연, 또는 욕망에도 걸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유승 사제가 원효를 볼 때 우리들의 스승이신 알로펜 주교님과의 차이는 어떻습니까? 혹시 내 질문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습니다만….”

“글쎄요. 거 재미있네요.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굳이 표현해 본다면 알로펜 주교님이 태양이시면 원효는 별 중에 별인 새벽별이라고 할까요.”

“와하, 새벽별이라… 유승 사제는 원효 대사에게 점수를 많이 주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당나라에서 크게 존경받는 현장(AD 602~664) 법사보다 진리의 눈이 밝은 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효(AD 617~686) 대사는 석가모니 붓다와 그 수준이 같다고 봅니다. 석가모니가 인도 고유 사상인 힌두교의 베다(Vedism) 사상의 핵심을 만났다면 원효 역시 고대 인도 사상인 베다에 정통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당나라 사람들은 원효가 신라의 인물이 아니라 인도에서 신라로 귀화한 인도인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런, 저런…. 아니 이제 보니 유승 사제는 원효에 대해서, 또는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군요.”
“네, 제가 아버지 품속에서부터 본디 석가모니 제자였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알로펜 주교의 제자요 예수님의 종입니다.”

“그러셔야죠. 그 점에 대해서 저도 조로아스터교보다는 기독교를 더 좋아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유승과 피루즈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진리의 대화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유승은 어제 원효와 만났던 저잣거리로 갔다. 그런데 원효는 그곳에 없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는데, 혹시 원효는 나를 귀찮게 생각하여 따돌려 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대안, 대안, 어허 대안이로다’를 연발하는 대안 대사가 유승의 눈에 들어왔다. 걸인 행색이 분명하건만 대안 대사가 걸친 누더기는 그런대로 품위가 있어 보였다. 손에 든 사발보다 큰 징을 가끔씩 휘두르듯 두드리면서 대안, 대안, 대안을 소리치면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와 한나절 동행하는 일상이었다.

“대사님!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당나라 기독교에서 온….”
“유승이라고 했지요?”
대안 대사가 유승의 말길을 자르고서는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어제 잠깐 스쳤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놀라운 기억력이었다.

“네, 소인 유승입니다. 그런데 대사님 오늘은 왜 혼자신가요?”
“언제는 내가 누구와 같이 다녔나?”
대안은 유승의 얼굴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더니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면서 유승 주변을 살피기도 하였다.

“대사님, 제 몸에 뭐가 묻었나요. 왜 저를 그렇게 유심히 살피십니까?”
“유승 님은 지금 원효를 찾고 있지요? 그렇죠?”
“네, 스님이 원효 대사를 어디에 감추셨나요?”
유승은 대안 대사가 농담을 먼저 꺼냈으니 살짝 농을 해보았다.

“맙소사! 내가 원효 대사를 어디에 감추다니, 그분은 우리시대의 별이요. 나 같은 냇가에 조각돌만큼도 못되는 늙은이는 감히 원효 대사를 우러러보기도 힘들지. 그럼, 그럼. 대안, 대안, 대안이야, 대안….”
“원효 대사가 그렇게 크신 분인가요?”

“그럼. 큰 인물이지. 신라 땅 중들이 많고 왕궁에 가면 국사가 있고, 금빛 가사를 입고 뽐내는 중들도 많지만 대개는 다 잔가지에 불과하지. 원효는 대들보야. 삼한일통은 물론 저 당나라까지 가르칠 큰 어른이지.”

“원효 대사는 인도의 고전 베다 사상은 물론 중국의 논어, 노자, 장자에 대해서도 달통한 어른이 분명하더군요.”
“뭐, 뭐야. 그걸 어떻게…. 어떻게 유승 포교사가 벌써 알았소이까? 유승이 하루 한나절만에 원효 대사를 알아볼 수 있으면 그대도 이미 원효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인가?”

“아니요. 저는 지금 사모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기독교의 원효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거 따질 거 뭐 있겠어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도 남녀가 다르고, 동과 서가 다르니 나는 기독교의 하늘 되어 불교를 땅이나 경작지로 삼고 싶습니다.”

“그거 참, 부럽군요.”
“그러나 일체무애인이거늘 무엇이 문젭니까. 걸림 없이 살고 거슬림 없는 예의를 갖추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허어, 대안이로세. 그럼 또 만납시다.”
“대안 대사님. 오늘 오후는 제가 대사님 자녀들 먹거리를 준비해서 찾아뵐게요.”

유승은 대안 대사와 헤어져 서라벌 시내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다시 어제 원효를 만났던 주막거리 장터 쪽으로 걸었다.

“아이고, 중국서 오신 손님이시죠?”
한 청년이 유승 가까이로 다가오면서 조심스럽게 아는 체 했다.
“누구시죠?”
유승은 청년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 저. 어제 제가 손님께 원효 대사를 만나시게 했잖아요.”
“아이고, 그렇지요. 제가 깜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힘이 없어 보이시네요.”
“네, 오늘은 내 꼴이 소박맞은 여인이나 딱지 맞은 놈팽이 꼴 같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네, 원효 대사가 나를 내팽개쳐버렸구려.”
청년은 유승을 빤히 바라보더니
“사랑하셨나 봐요? 원효 대사와 하루 만나고 정이 깊이 들었던가요?”
“네, 내가 사랑 받았죠. 그런데 원효가 오늘은 나를 버렸구려.”

“아마, 오늘 만나자는 약속은 하지 않으셨을 걸요. 원효 대사는 바람과 같아요. 손님께서 신라에 계시는 동안 원효 대사를 영영 못 만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말 마쇼. 청년이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제가 원효 대사의 사미승입니다. 10년을 모셨지요.”
“뭐요?!”

청년은 원효의 사미승으로 그 이름은 심상이었다. 원효가 요석 공주와 3일 밤낮을 지내고 나온 후 스스로를 소성 거사라 하면서 세속인 옷을 입고 생활하는 지금 심상도 원효의 만류를 사절하고 절에서 나와 원효 대사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키곤 해왔다.
원효는 낮이면 온종일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뒤웅박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 한 목숨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 생겨남이요,
나무아미타불….
이 한 목숨 스러짐은
한 조각 뜬구름 사라짐이라,
나무아미타불….
이 세상 부귀영화
풀잎에 이슬이요, 물 위에 거품이네,
나무아미타불….
(중략)
복을 지어 복을 받고
죄를 지어 벌을 받네.
나무아미타불….
착한 일만 하려 해도
인생 육십 잠깐이니
나무아미타불….
(후략)
 

원효가 이상한 복색을 하고서 바가지 장단에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면 많은 군중이 그의 뒤를 따르면서 ‘나무아미타불…’을 후렴으로 따라서 했다.

처음에는 원효인줄 몰랐던 군중이 차츰 거지복색의 벙거지 눌러쓴 사람이 원효 대사임을 알고부터는 따르는 무리가 수십, 수백 명 되어 종일 따르기도 했었다. 원효이면 태종 무열 왕과 왕비, 또 공주가 초청해서 왕궁을 드나들며 설법했고, 그의 설법이라면 신라의 내로라는 고승들 그 누구도 따를 자 없다 했던 바로 그 원효 대사와 종일 노닌다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가하면 원효는 사람의 빈부귀천을 따지지도 않았다. 땅꾼들과 어울려서 며칠씩 놀기도 하고, 천민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미승 심상과 단둘이 마주앉은 원효는 부처님의 엄한 다섯 가지 계율을 물었다. 첫째, 둘째를 묻고 답변을 했더니 원효 대사는 세 번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네, 세 번째는 불음행이옵니다.”

심상이 세 번째 계율, 곧 음행을 말하자 원효는 자기가 음행죄를 저질렀으니 절집 가까이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참회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원효는 참회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심상은 원효 대사가 진지하게 자기를 상대해주는 것이 감동이 되기도 하고, 불가의 법도 상 한나라의 국사급 이상의 고승이 한낱 심부름꾼인 사미승에게 자신의 내밀한 고뇌를 털어놓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교훈이 복합되어 있을까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면서 원효 앞에서 진땀을 흘리면서 이제 그만 하자는 말이 있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원효가 심상 앞으로 한걸음 다가오더니 그의 두 손을 마주잡는다.
대사님 왜 그러세요, 하면서 심상이 울부짖는데 원효가 심상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했다.
“심상아! 부처님 살아계실 때 유마 거사가 계셨다. 그 유마 거사가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아프고, 중생이 괴로우면 보살도 괴롭다고 하셨느니라.”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아프고 중생이 괴로우면 보살도 괴롭다고요?”
“그래, 너도 장차 알겠지만 그래서 나는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처럼 법당에만 있지 않고 차라리 땅꾼, 걸인들, 광대들, 짐승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천민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느니라.”
심상이 이야기를 유승 사제에게 전하는 순간 그들 둘은 동시에 말했다.

“아, 그럼. 원효 대사는 파계를 스스로 선택하셨네.”
그러고는 심상과 유승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바라보고 둘이 가슴을 맞대어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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