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 전쟁 ②>

   
▲ 중국, 신장지구 카슈가르 장날 위구르 무슬림들의 즐거운 한 때

당태종은 다음날도 알로펜을 불렀다. 부르니 달려갈 수밖에 없는 신분이지만 조심스러웠다. 또 무엇을 내게 원하는지도 모르는 알로펜으로서는 그래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수년 전부터 당태종이 고구려를 집어삼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지한 알로펜은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시대까지로 거슬러 중국의 한족과 대등한 정신적 비중을 가진 나라가 고조선의 후예인 고구려임을 들어서 알고 있다. 고구려가 당나라 이세민의 공세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낼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알로펜이 얻어들은 고구려 역사 이야기에는 광개토대왕 시절 고구려가 동로마 제국까지 원정 했었다고 되어있다.

아니, 고구려와 동로마 제국이면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렇다면 고구려가 보통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나라와는 달리 신비한 저력이 있는 나라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태종을 알현하려고 기다리는데 방현령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감! 어디 불편하시다더니…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알로펜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다. 오늘은 황제에게서 고구려 침공하는 이유를 듣고 싶으나 그의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터, 개국공신 중에서도 크게 황제의 신뢰를 받는 방현령을 만났으니 사전 지식을 얻고 싶었다.

“주교님, 요즘은 서역으로 활동지를 옮기셨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방현령은 알로펜이 초코국과 사마르칸트로 가서 지낸 일을 놓고 시비를 걸어보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알로펜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대감님, 어찌 저를 향해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황제폐하의 고구려 원정에 종군하라시는 명을 받고 달려온 사람이외다.”
“그럼, 당나라에 충성하는 일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로군요.”
“그래, 그럼.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그러면 그렇지. 알로펜 주교님을 내가 아는데….”
“방 대감님,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방현령이 그의 방으로 알로펜을 안내했다.

“다름이 아니라 형제께서 고구려 원정을 위해 직접 나서신다는데 대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현령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슬픈 빛이 역력했다.
“대감님, 어제 저는 황제께 믿을만한 장수를 보내 고구려를 향해 황제의 의사만 전달하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 역시 황제폐하를 만류하다가 지쳤습니다. 더구나 노구를 이끌고 요동벌로 나가신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거든요.”
“저와 생각이 같으시군요. 금번에 신라에 가있는 제자가 글을 보내왔는데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고 하던데….”

“그런가요. 저희들의 정보는 그 반대라고 하던데요. 영류 왕을 시해하고 국권을 장악해 폭군 행세하는 것에 고구려 백성들이 크게 반발한다고 압니다만…!”
“방 대감님. 어서 황제폐하께 들어가야겠습니다.”
방현령은 알로펜과 함께 당태종 앞으로 나아갔다.

“어허, 방현령. 꾀병이 다 나았습니까? 허, 헛?”
당태종은 유쾌한 표정이었다. 방형령은 ‘황공하옵니다’로 답을 대신하고, 알로펜은 ‘폐하, 오늘은 용안이 환하게 빛이 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로 인사를 올리면서 각기 자리를 잡았다.

고구려 태자의 입조에 답례한다는 명분으로 진대덕을 고구려에 보내서 주요시설까지 살피도록 했는데 진대덕이 어제 돌아와서 고구려의 민심까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방현령, 고구려는 본래 한사군의 땅이야. 우리 중국의 영토란 말이다. 짐이 군사를 내어 요동을 치면 저들은 반드시 국력을 기울여 이를 구하고자 요동으로 몰려올 거야. 그때 우리는 수군을 동원하여 바다를 건너 평양을 치는 거야. 그러면 신라가 고구려 후방을 교란하고 그들의 주력군은 우리 당군과 합세하여 단숨에 평양성을 함락하는 것이야.”

황제는 일이 끝났다는 듯이 두 손을 마주치며 호탕하게 웃어넘기고 있었다. 방현령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알로펜이 민망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저도 폐하의 용맹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18살부터 10여 년 동안 폐하께서 전장을 누비실 때 대적이 없었나이다.”

“그래, 그럼. 그렀지, 그랬어. 주교도 다 알고 있구먼.”
“알로펜!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지금 폐하가 스무 살 청년기이신가요?”
방현령이 알로펜을 향하여 고함을 지른다.
“방현령! 내게 고함을 지르는 것이지. 나도 다 안다. 그러나 이번 한 번만 나를 따르라. 고구려만 무릎을 꿇리면 다 끝나는 거야.”

“폐하! 이미 고구려는 신하국의 예를 표한 바 있사오며 봄가을로 조공을 바치는 나라입니다. 그들을 멸망시켜야만 속이 시원하시겠사옵니까?”
“방 대감, 당신 왜 그래. 왜 그렇게 끝까지 고집이야.”
“폐하! 알로펜이 한 말씀 드리옵니다. 고구려에 원정군을 보내시되 폐하가 나서지 마옵시고 태자 마마를 총사령관으로 보내심이 좋은 줄 아옵니다.”

“그래, 주교처럼 이렇게 대안을 내놓으면서 대화를 해야지. 저 사람 방현령은 젊어서는 안 그랬는데 이제 고집불통이야. 이제는 위징보다 더한다, 더해.”
위징은 세상을 떠난 당태종의 최측근 신하였다. 본디 그는 황태자 이건성의 사람이었는데 현무문의 변 때 이세민(현 태종황제)이 승리한 후 당태종의 신하가 되었다. 태종은 특히 현무문 사태 이후 황제에 오른 뒤 신하들의 충언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황제가 되었다. 위징은 태종에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등 결코 만만한 신하가 아니었다. 너무 지나치다싶어서 한 번은 당태종이 분한 김에 이놈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나서는데 황후가 간곡히 만류해 분을 참아냈다는 고사가 전해올 정도였다.

황제가 방현령을 향해 당신은 위징보다 더하다고 하자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평소에 황제의 결정에 크게 반대한 일이 없었던 신하였다. 그는 다만 전 왕조 수나라가 고구려에게 패망했다는 과거사에 매달리지 말고 동북방의 고구려, 신라, 백제가 오순도순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아량을 보일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은 고구려를 직접 정벌하기로 굳혔다. 그는 집권 초기만 해도 신하들의 간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당태종은 오늘날까지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의 황제이기도 하다. 그가 이토록 중국인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는 것은 늘 신하들의 간언에 귀를 기울이는 황제였고, 백성들의 살림을 널리 살피는 어버이 같은 황제였을 뿐 아니라, 근검절약을 자기 삶의 기본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방현령은 뒤로 물러나고, 알로펜 역시 당태종에게 고구려 침공을 만류하려던 생각을 단념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방현령이 상당부분 대신해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는 황제의 종군사제가 되어 고구려와의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도와 불교와 도교 측에서 종군 부제를 파견할 것이라는 명도 겸허여 받았다.

드디어 당태종은 본격적인 고구려 원정에 시동을 걸었다. 정관 18년(AD 644년) 7월 신하들을 홍주, 요주, 강주로 보내서 운량선 4백 척을 건조하여 군량을 싣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태사경 위정을 궤운사, 최인사를 부사로 명하여 운반책임을 맡기고, 위정에게는 황하 이북 모든 주를 통제할 뿐 아니라 황제에게 보고하지 않고도 현장에서 즉각 처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또 태복소경 소예에게는 황하 이남에서 조달한 식량을 싣고 바다로 나가도록 했다. 한편 영주 도둑 장검으로 하여금 유주·영주의 군사와 거란·해·말갈로부터 동원한 병력을 거느리고 먼저 요동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반응을 떠보도록 명하였다.

이미 대륙 전역에 전운이 감돌았다. 같은 해 10월 태종은 방현령에게 경사의 유수를 맡기고 자신은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에 도착한 태종은 의주전사를 지내다가 지금은 은퇴해 있는 정원도를 행궁으로 불렀다.
태종은 수양제의 요동 원정에 종군한 적이 있는 그에게 당시의 전투상황을 듣고자 했다. 태종의 물음에 정원도는 답했다. “요동은 가는 길이 멀어 군량과 말 먹이를 운반하기가 쉽지 않고 위험했습니다. 동이족들은 수성에 능하여 우리가 한참을 공격한 후에도 성이 흔들리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원도의 말을 듣던 태종은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공은 머지않아서 전승의 소식을 들을 것이다”라면서 그를 보내주었다. 태종은 자신의 군대와 전 왕조인 수나라 군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군사들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다.

한편, 요동 공격의 선발대로 떠났던 영주 도둑 장검은 요하의 물이 불어 오래도록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태종은 그의 보고서를 받고는 그가 겁을 먹은 탓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즉각 낙양으로 소환했다. 장검은 태종 앞에서 요하 주변의 지형을 상세히 보고한 덕분에 더 이상 질책을 받지는 않았다.

태종은 그해 11월, 고구려를 향해서 수륙 양면으로 동시에 진격하기로 하고 각 군의 지휘관을 인선하여 임무를 부여했다. 전함 5백 척에 4만3천여 명의 군사를 싣고 내주(동래)를 출발하여 황해를 건너 곧바로 평양으로 진군한다. 요동도 행군 대 총관 이세적에게 대군을 주어 지상군 주력을 삼는다. 또한 보병과 기병 6만 명과 난주, 하주의 항복한 북방 오랑캐들을 별도의 조직으로 참여케 하였다.

태종 자신은 이와 별도로 대군을 이끌고, 시차를 두고 이세적의 지상군 뒤를 따르기로 했다. 한편 신라와 백제는 물론 거란 등에서도 당군에 호응하여 길을 나누어 고구려 공격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해 11월 말, 육군 병력이 모두 유주(북경)에 집결했다. 태종은 출정에 앞서 백성들에게 이번 전쟁에 대해 이해시킬 필요를 느꼈다. 이에 더하여 필승의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서 전군에 포고령을 내렸다. 포고령 내용에는 군대가 지나가는 지방 관청들은 물자와 노역이 없어도 됨을 밝히고, 전 왕조인 수나라와 오늘의 당나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우리는 침략군이 아니고 임금을 시해한 고구려 연개소문의 부도덕을 징치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승리하게 될 이유 첫째, 대국이 소국을 치기 때문이다. 둘째, 정의가 역도를 토벌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엄정하나 고구려는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넷째, 왕성한 힘으로 피로한 적을 무찌르기 때문이다. 다섯째, 기쁜 마음으로 원성이 자자한 적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이 포고령의 핵심요약은 자치통감, 또 구당서에서 발취했다).

당태종의 하얀 머리칼이 그의 투구 사이에서 흩날린다. 유주 드넓은 벌판, 11월의 바람이 찼다. 그들의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다섯 가지 이유와는 상관없이 씁쓸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알로펜은 전쟁터에 나가는 황제의 친구가 되어 시간 나는 대로 말벗이 되어 준다는 마음으로 종군에 임했으나 그가 과연 당태종의 위로가 되어 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들에게 전승을 기원하는 기도는 드릴 수 있으나 자기가 직접 이 큰 전쟁터에서 이변이 없는 한 승전하리라고 보는 당태종의 종군사제가 되는 과정에 갈등이 없지 않았다. 그는 승패를 떠나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똑똑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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