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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당나라 기독교(景敎)_ 58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33>
조효근 목사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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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호] 승인 2015.03.12  1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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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 타고 밍사산을 산책하는 중국 둔황 여행객들.

 

“주교! 혼자만 들으시오. 아마 내 시대는 이제 저문 거 같구려.”
“아, 폐하! 무슨 그런 말씀이십니까. 폐하는 아직도 강녕하시나이다. 틀림없습니다.”
“그래, 고맙소. 주교님! 앞으로는 나를 따라서 전쟁터에 갈 일이 없을 터이니 당신들의 선교에 전념하시오. 경교 때문에 당 제국도 빛나는

제국이요 영원한 제국이기를 바랍니다.”
“네, 폐하의 하해와 같은 말씀의 뜻을 깊이 새겨듣나이다.”

 

<당-고 전쟁 ④>

안시성으로 간다. 양만춘, 당신이 연개소문도 껄끄러워한다는 인물이라지. 그래, 내가 진짜 영웅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마.
6월이다. 이세적의 전략에 따라 건안성을 선공하려는 자신의 방침을 접고 안시성을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태종은 안시성 가까이 이르자 전군에 명령했다.
”성을 공격하라!“

그 무렵, 고구려 북부 욕살(수장)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 말갈 병사까지 포함된 1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안시성을 구원하러 오고 있었다. 그들은 당나라 대군이 안시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다음 전략을 의논했다.

당태종의 양동 작전이다. 공성에 대군을 투입했으니 차위 대장군에게 기병 1천 기를 주어 고구려 군과 싸우도록 했다. 좌위 대장군 아사나사이는 고구려 군을 유인해냈다. 그리고 뒤로 밀리는 척 후퇴했다. 고구려 군은 당 군의 유인에 걸려들었다. 그러나 고구려 군은 그들대로 상대를 아사나사이의 1천 기병이 아니라 40리 밖에 포진하고 있는 고연수·고혜진 대장군의 40만 군사와의 전략적 거리까지 생각하는 이중포석 중이었다.

당태종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장손 무기를 대동하고 고구려 대군이 진을 친 동남방을 측정해 보기 위해서 높은 산에 올랐다. 양 진영 대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매복의 위치와 접전 상황의 계획도 세웠다. 태종은 고연수 대장군에게 서찰을 보냈다.

“나는 당신 나라의 난신적자가 임금을 시해했기 때문에 죄를 묻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켜 왔을 뿐 전쟁까지 하게 된 것은 나의 본 뜻이 아니다. 내가 너희 경내로 들어온 것은 부득이한 사정이었다. 이제라도 너희 나라가 신하의 예를 갖추기만 하면 내가 점령한 이 성들을 모두 돌려주고 우리는 철군할 것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고연수는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기 시작했다. 태종은 고연수의 순진한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장수들을 소집했다. 장수들과 긴급전략을 마련해 이세적에게 보병과 기병 1만5천 명을 주어 서쪽 산마루에 진을 치게 하고, 장손 무기에게는 정예병 1만2천 명을 주어 북쪽 협곡을 지나 고구려 군의 배후를 치게 했다. 태종 자신은 보·기병 4천을 거느리고 조용히 산언덕을 올랐다. 태종이 북을 울려 신호를 하자 각 진영에서 북을 울리고 뿔피리를 불며 진군했다. 고구려 군도 뒤질세라 반격했으나 방심했던 터라 진용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다시 군진을 가다듬었으나 빈틈을 노린 설인귀 부대가 뛰어들어 고구려 군을 휘저으니 고구려 군은 드디어 붕괴되고 있었다. 사상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고연수는 남은 군사를 다시 모아보려 했으나 당 군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퇴로마저 차단되었다. 하는 수 없었다. 고연수·고혜진 두 장수는 3만6천여 군을 이끌고 당태종 앞에 항복하고 말았다. 태종은 고연수 이하 지휘관급 3천여 명을 당 군의 후방으로 보내고 나머지 3만여 명의 고구려 군은 각각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고연수의 참패 소식을 들은 고구려는 크게 당황했고, 후방의 조그마한 성들은 지레 겁을 먹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7월 들어 당태종은 어영을 안시성 동쪽 산마루로 옮겼다. 당태종의 전략에 따라 안시성 건너편에 쌓고 있는 토산은 안시성의 성 높이 만큼이었다. 더 높이 쌓을 것이다. 당태종은 8월 들어 다시 어영을 안시성 남쪽으로 옮겼다. 안시성 성벽 위의 군사들이 훤히 보였고, 그들의 말소리도 뚜렷하게 들렸다. 고구려 군은 당 황제의 깃발이 코앞에 있고 당태종의 모습까지 육안으로 들어오자 그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종은 노하여 당장 뛰어들 것처럼 몸을 떨었다. 고구려 군은 당태종을 더욱 놀려대며 아비를 치고 형과 동생도 죽인 자가 황제라고 거들먹거리느냐고 핀잔을 주며,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 나무란다더니 고구려 대막리지 욕을 함부로 하느냐고 꾸짖었다. 태종은 몸을 떨며 분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안시성 공략이 생각만큼 쉽지도 않았다. 성 자체가 워낙 튼튼하고, 성주 양만춘 장군은 용장이요 덕장인지라 그와 함께 죽고살기를 같이 한 군과 민간이 성 안팎으로 줄을 서 있었다. 더구나 당 군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안시성 코앞에 있는 건안성에서 고구려 군과 당 군은 계속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것이다. 태종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토성은 안시성 높이보다 열 자는 높이 솟아올라 성 안의 모습까지 내려다보이지만 토산 전략이 완승의 길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고구려 군의 야유를 제압할 수 없어서 안절부절 했다.

그 무렵, 연개소문은 어디에 있는가?

안시성이 무너지면 그 담은 평양이다. 평양이 함락되면 고구려는 끝장이다. 신라 군까지 평양성 남쪽 40리 밖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당 군이 몰려오기를 기다리는데 고구려의 대들보인 연개소문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이 무렵 연개소문의 행방은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에 의하면, 안시성을 양만춘과 오골성 성주 추정국에게 맡기고 정예병 3만 명을 이끌고 적봉진(열하 부근)으로 올라서 다시 남쪽으로 당나라의 상곡(하간)을 습격했다. 당나라 태자 이치가 어양에 머물고 있는데 그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태종의 아들 이치는 놀라서 급히 봉화를 올렸다. 봉화는 삽시간에 안시성까지 이어졌다. 봉화가 태자로부터 날아온 것을 본 당태종은 나라가 변란이 났음을 직감했다.

바로 그 시간, 토산과 안시성 군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한 토산 한쪽이 무너지는 시간과 동시에 안시성 성문이 열렸다. 순식간에 토산을 고구려 군이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대역전이었다. 안시성을 공략하기는커녕 당 군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리고, 사기마저 떨어졌다. 안시성 함락은 언제라는 것인가.

요동의 9월은 벌써 겨울 냄새가 짙다. 풀이 마르고 물이 얼기 시작했다. 더구나 식량마저 부족했다. 태종은 안시성이 아니라 장안의 궁성이 반란세력에게 함락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철군이다. 태종은 안시성주 양만춘이 성루에 올라 당 군을 전송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양만춘의 불굴의 정신을 치하하고 비단 백 필을 주며 격려했다.

다시 철군이다. 아니, 회군이다. 그러나 당 군이 염려했던 대로 연개소문이 만든 봉화가 솟아오를 무렵 당 군이 도망칠 것을 예견하고 추정국과 양만춘은 당 군의 퇴로에 진을 치고 작별의 전투를 했다. 그때 양만춘의 화살이 당태종의 한쪽 눈을 멀게 했고, 목숨마저 위급했으나 설인귀의 도움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쫓겨 가는 당태종과 고구려 군의 추격을 대비해 이세적 군 4만 명을 후미에 배치하고, 요하를 건너 요택에 들어섰으나 진창과 구덩이 때문에 수레와 말이 지나갈 수가 없었다. 장손 무기가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풀을 베어다 길을 메우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었다. 태종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 직접 섶을 나르며 길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10월이 되자 기후가 돌변해 광풍이 불고 큰 눈이 내리더니 기온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젖은 옷을 입은 군사들 중 동사자들이 많이 생겼다. 태종은 행군이 더디더라도 군사들을 위해 불을 피우고 추위를 녹이게 했다.

요하의 80리 진흙탕 길을 지나 발착수에 이른 태종은 숨을 돌리는가 했으나 요동 길 1천여 리를 지나는데 흙이 먹 가루처럼 진한 곳인지라 비를 맞으면 마치 엿처럼 끈끈해 걷기 힘들고 자칫 수렁에 빠질 경우는 허리까지, 더 심하면 몸 전체를 삼켜버리는 곳을 지나야 했다.

만신창이가 된 태종의 몰골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알로펜은 씁쓸하고 후회스러워서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었다. 저녁시간 조금 한가할라치면 당태종이 알로펜의 옆구리를 친다.

“나의 친구 주교님! 내 꼴이 무척 사납죠. 내가 괜히 주교님을 동행케 해서 이토록 민망한 꼴을 보이는군요.”

“폐하. 황공하나이다. 제가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하니 저 자신의 무능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제 일을 잊으시고 다시 백성과 군사들을 다독이소서. 그보다도 하루 빨리 장안으로 가야 폐하의 건강을 돌보실 것입니다.”

“나 괜찮아요. 이 눈이 좀 걱정이지만 눈이 아주 멀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설사 눈 하나 없어도 큰 문제 없어요. 내 군사들 희생에 비하면 내 건강이 뭐 대순가… 헛허.”
알로펜의 귀에는 황제의 웃음소리가 울음소리로 들렸다. 할 말이 없었다.

“….”
“어째서 주교는 내게 강복을 내리지 않소?”
“넷! 폐하…. 대 당은 이 지상에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제국입니다. 폐하께서는 만백성뿐 아니라 주변의 나라들을 지도하실 천자(天子)이십니다.”
“그런가. 지금 내가 고구려에게 망신을 당하고 도망질을 치는데도 천자인가?”
“폐하! 어인 말씀이시온지요.”
“아니오, 아니야.”

당태종은 차츰 말에 힘이 없어진다. 기운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운가 하는 느낌이었다.
10월 11일, 태종은 영주에 이르러 전장에서 죽은 군사들의 유해를 수습했다. 예를 갖추어 유성 동남쪽에 안장하고 소와 돼지, 양 등 각 한 마리를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가 친히 제문을 써서 이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태종의 행군은 계속되었다. 임유관으로 가는 길에 태자 이치를 만나서 함께 정주에 돌아온 것이 11월 22일이다. 퇴각 행군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이었다.
태종은 낙양을 거쳐서 장안으로 갈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방향이 달랐다. 병주, 즉 태원으로 향했다. 태원은 태종에게 고향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정주에서 태원을 가자면 태항산맥을 넘는다. 부상을 입은 몸인데다가 한겨울 험한 산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그의 결심인 듯했다.

태종은 얼굴 부스럼이 심해 말을 타지 않고 천장을 꾸미지 않은 연을 타고 행군했다. 그는 몸을 누인 채 이동했다. 태자 이치가 곁에 앉아서 가끔 환부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
태원에 도착한지 3일쯤 지나서는 부스럼이 나았으나, 그는 두 달 하고도 보름이나 더 이곳 태원에 머물다가 장안 궁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병은 깊었다. 완쾌된 줄 알았으나 그는 눈병이 도져서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국정은 태자 이치에게 맡기고 몸을 돌보는 데 전념했다. 천하의 당태종이, 전쟁에 패해 본 일이 없는 그가 하룻강아지로 알았던 고구려에게 완패했으니 그는 몸보다 마음의 병 치유가 쉽지 않아보였다.
연개소문의 전략, 그리고 양만춘의 무용은 눈물겨울 정도로 다시 생각나게 하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전술과 전략은 대단했다. 신출귀몰이라 해야 할까.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아, 내 시대는 끝났구나. 당태종은 알로펜을 불렀다. 알로펜이 태종의 부름을 따라서 곧바로 달려왔다.

“알로펜 주교! 지금 당신의 선교는 어떤가? 종군하는 사이에 별일은 없었더이까?”
“네, 폐하. 폐하의 은혜로 저희들은 별일 없었나이다. 그러나 폐하께서 용상을 비우시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걱정이 되옵나이다.”
“주교! 혼자만 들으시오. 아마 내 시대는 이제 저문 거 같구려.”
“아, 폐하! 무슨 그런 말씀이십니까. 폐하는 아직도 강녕하시나이다. 틀림없습니다.”
“그래, 고맙소. 주교님! 앞으로는 나를 따라서 전쟁터에 갈 일이 없을 터이니 당신들의 선교에 전념하시오. 경교 때문에 당 제국도 빛나는 제국이요 영원한 제국이기를 바랍니다.”
“네, 폐하의 하해와 같은 말씀의 뜻을 깊이 새겨듣나이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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