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오후 1시 30분쯤, 대학로 거리를 걷다가 마로니에 공원에 들렀다. 도심 한복판에 이만한 크기와 시설을 가진 곳이 드물 것이다. 서울대가 관악산 기슭으로 이사한 덕분에 마련된 장소다. 평년 기온으로 5월 초에 해당하는 3월 21일은 아주 넉넉한 봄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주말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 나도 자리 잡고 앉아서 사람 구경도 하고 시설들도 살펴본다.
나의 시선이 독립지사 김상옥 님의 동상에 꽂힌다. 그의 생애를 떠올려 보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나를 찾는다. 내 앞에 남자 둘하고 젊은 여인이 나타나서 내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동숭교회에서 나왔어요,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이마가 약간 벗겨진 중년신사, 그리고 젊은 사내, 또 잘 다듬어진 호박 상을 한 30살쯤 되어 보이는 여성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교회에서 노방전도를 나왔군. 부목사와 남녀 전도사들이구나, 하면서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한사코 여성이 당신은 내 말을 꼭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타인의 전도 대상이 되어 본지는 19살 이후 처음이다. 나는 19살부터 강단에서 설교하고, 부흥사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오늘 이처럼 이야기하자고 덤비는 교회 전도 팀과 부딪치기는 생전 처음이다. 순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누구신데요?”
“나 42년 차 목사요. 내 얼굴에 나타나 있을 텐데요.”
“아하, 제가 영발이 부족해서 거기까지는….”
그들 세 사람, 그리고 나와 끝까지 영발(?) 있는 대화를 했던 여인은 사라졌다. 허무했다. 그리고, 내가 누굴 줄 모르느냐고 추궁했던 나의 당돌하고 당당한 발언을 떠올려보았다. 말을 해놓고 보니 웃음도 나오고 또 나의 자신감에 놀라기도 했다. 이 놈들아!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부르짖는 나는 성경 속의 누구를 닮았을까?
마가복음 2장을 보면 가버나움 집에 예수 복음을 듣고 찾아 온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 친구들이 도와주는 들것에 매달린 중풍병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예수 앞으로 나아갈 길이 도무지 없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들것을 메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 한구석을 뜯어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들것에 달아서 예수 앞으로 내려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신 예수, 저희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리라!’ 하셨다. 이 말씀 후에 그 자리에 있던 한 서기관은 예수에게 신성모독죄를 지었다고 질책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예수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의 중풍병자지만 그는 자기 병을 고치는 것보다 먼저 주의 영광을 드러냈고, 권세 있는 교훈의 소유자요 중풍은 물론 문둥병 또는 죽은 자도 살려내는 권능의 주를 증거했고, 사명 완수의 지름길인 신성모독죄로 죽게 될 예수까지 증거했다. 겨우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운신할 수 있는 불완전한 자인데도 그래, 중풍병자가 마음에 든다.
나의 오늘이 저 사람 정도는 돼야지, 척박한 현실 속에서 비록 친구들 도움을 받는 중풍병자 저 사람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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