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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①
조효근 목사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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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호] 승인 2015.04.22  16: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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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지키스탄 남부, 아프가니스탄 국경선 언덕에 있는 12세기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의 동굴 천장십자가와 필자

불교는 당나라의 국교다. 측천 황제는
불교를 숭상하며 당태종과 고종이 아끼고 숭배했던 기독교를 무차별 학대하기 시작했다.
안토니 주교가 은퇴하고
새로 임명된 지도자인 영부 주교의 짐이 무겁다.
고종 치세 후기에도 측천의 성깔이 보이기는 했으나 이제는 제국 안에서
무측천을 넘볼 권력도 없으니 그녀가
늘 눈엣가시 같았던 경교를 손볼 때가 된 것이다.

 

황제가 알로펜 주교에게 진국대법주(秦國大法主) 칭호를 내렸다. 서양교회 식으로는 당나라 기독교 총대주교에 해당한다.
알로펜은 당고종이 이렇듯 크게 대접했는데도 초코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고종은 그의 부친 태종이 존경해온 알로펜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AD 683년 세상을 떠났다. 당 고종은 당나라 각 주(州)에 경교 교회당을 세웠다. 358개 처의 교회당과 수도원을 건립했으니 대단한 관심이었다.

그러나 고종 치세에 참으로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의 부친 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조를 감업사에서 훔쳐온 것이다.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 후궁 이하 비빈들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야 했던 법도에 따라 감업사에서 여승노릇을 하던 무사확의 딸이요 태종 이방원의 후궁이었던 무 씨가 아들 황제의 애첩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무측천의 경교 탄압

후궁들 중 하나로 신분을 확보한 무조는 드디어 황제의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 아들을 고의로 죽이고 죽인 당사자가 황후라고 둘러댔다. 꼼짝 못하고 무조에게 당한 황후는 쫓겨나고 무조가 황후의 자리에 앉았다. 이름 하여 측천무후, 무측천은 조정을 장악하고 드디어 자기 이름으로 왕조를 창업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국명은 주나라다.

불교는 당나라의 국교다. 무측천 황제는 불교를 숭상하며 당태종과 고종이 아끼고 숭배했던 기독교를 무차별 학대하기 시작했다. 안토니 주교가 은퇴하고 새로 임명된 지도자인 영부 주교의 짐이 무겁다. 고종 치세 후기에도 측천의 성깔이 보이기는 했으나 이제는 제국 안에서 무측천을 넘볼 권력도 없으니 그녀가 늘 눈엣가시 같았던 경교를 손볼 때가 된 것이다.

영부 주교는 장안성 변방에 가 있는 안토니를 만나러 갔다. 늘 아름답던 산야가 오늘따라 어둡고 무겁게만 보였다. 산새들의 지저귐이나 산짐승들의 뛰노는 것 또한 별 즐거움이 못되었다. 영부가 가는 곳은 뱀골 마을이다. 다섯 채의 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붙어있는 토담집들 중 가장 허름한 집이 안토니의 집이다. 안토니는 1년 전에 주교직을 영부에게 넘긴 후 이곳 뱀골 마을로 와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영부의 방문에 안토니는 놀라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바닥은 흙과 돌로 다져진 흙바닥이다. 아랫목은 널판자를 깔아놓았고, 방 한켠에는 침대, 한 가운데는 둥근 탁자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 세 개가 놓여있다. 벽을 아무렇게나 뚫어 들창문을 만들었는데, 그곳 창문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어서 숨통은 막히지 않을 정도였다.

“어인 일인가요? 바쁜 주교님께서 여기까지 오시고….”
“아, 큰일 났습니다. 짐작하실 수 있겠으나 무측천 황제께서 장안과 낙양에 교회당들을 여럿이나 폐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당을 불교 사찰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 당나라 기독교는 위험합니다.”
“….”
안토니는 천장을 쳐다보기만 할뿐 말이 없었다.
“제가 너무 서두는 것 같죠. 주교님!”

“아니오. 낸들 무슨 대책이 있어야지. 그래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계획이 있으시지 않을까요. 좀 더 기다려 봅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가 주교님, 아니지 총대주교님을 모시고 당나라에 들어올 때 창업주인 당고조나 또는 현무문 왕자의 난이 없고, 처음 황태자 이건성이 곧바로 왕조를 이었을 경우는 우리 기독교가 당나라에 들어오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왜냐면 고조나 이건성 황태자는 불교신자들이고 그들 대에는 외부 종교들에게 문을 쉽게 열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답니다. 성격이 호방하고 국력에 대한 자신감뿐 아니라 현무문 왕자의 난 때 황태자인 형과 동생을 죽인 사건들까지 당태종의 너그러움에 보탬을 주었다더군요. 특히 페르시아와의 협조관계도 당태종 대에 이르러서야 좋아졌다더군. 그렇다면 세상사가 모두 하나님의 손바닥에서 움직인다 할 수 있지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금번의 측천 여황제의 기독교 박해 또한 하나님의 어떤 섭리의 연장선상에서 살펴야 하겠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영부 주교님은 역시 판단이 빨라요.”
“과찬이십니다. 안토니 주교님. 그리고 이곳 환경은 그만 바꾸셔야겠어요. 주교청 인근으로 숙소를 옮기셔야겠습니다.”

“아니오. 아니야. 내가 아무리 은퇴주교지만 내 주거환경은 내 뜻을 존중해 주시오. 부탁이오!”
“….”
안토니의 강한 요구를 꺾을 수가 없었다.
“영부 주교! 내가 한 말씀 더 하고 싶구려.”
“말씀하시죠.”
“그래요. 나는 여기 뱀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만년을 보낼 수 있어서 마음이 매우 편합니다.”
“….”

“선황이신 고종조에 우리 교단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어찌 말로 다 하겠소. 우리들 중 유력한 이들은 궁성의 관직 진출도 했고, 또 이슬람 지식인들에게 기독교 신학을 전수했던 일, 페르시아 아랍 왕조를 도운 일, 이슬람 신자들이 우리 네스토리우스파 중국 기독교의 도움으로 사업, 문화, 외교 문제에서 당 왕조로부터 도움 받게 한 일, 특히 콘스탄티노플 동로마 제국이 우리들의 신용으로 페르시아를 거치지 않고 당나라와 직접 무역을 하게 한 일, 그리고 당나라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를 통해서 무역하는 일로 로마 교황청이 시비할까봐서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 사면령을 황제가 발동했던 일까지, 우리 당나라 기독교는 당고종의 많은 은혜를 입었어요.”

“그러니 지금 당나라를 배신하고 주나라 왕조를 연 측천무후의 박해를 잠시 견디자는 뜻까지 저는 주교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역시 영부 주교님은 탁월하십니다.”
“부끄럽습니다.”
두 주교의 담소가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는 여러 형태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무측천의 잔혹한 모습을 그들도 알고 있다. 황후를 내어 쫓을 때 그녀가 낳은 아이를 보러 온 사람이 황후 한 사람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자기와 고종 사이에 얻은 친자식을 죽였다. 그리고는 황후의 소행이라고 둘러씌웠고, 그에 대한 죄를 물어 황후를 그 자리에서 물리치고 자기가 황후 자리를 꿰찼다. 그것도 모자라서 전 황후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여 그 시신을 내팽개쳐 버리는 기상천외의 방법을 동원했던 여인이다. 당나라 이름으로는 여 황제 되기가 어렵자 나라 이름을 주나라로 바꿔 중국 역사 유일의 여 황제가 된 여인 아니던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끝내 해내는 무서운 여인이 당나라 땅에서 기독교를 몰아낸다는데 그 누가 말릴 것인가?

“안토니 주교님! 아무래도 우리가 그냥 물러서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내 목을 친다고 해서 목을 내놓고 죽는대서야 될 일입니까?”

영부가 다시금 초조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안토니가 껄껄껄 웃는다. 그 또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허탈한 웃음소리 속으로 숨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었다.
“웃지만 마시고 한 말씀 해 주시죠.”

“난 무책이오. 방법이 없네요.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
무책. 무책이면 안 돼.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영부는 알로펜을 떠올렸다.
“제가 초코에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총주교님께는 분명히 대처 방안이 있으실 것입니다.”
다시 알로펜을 끌어들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찌 이 모양일까.
“미안하오. 그러나 총대주교님은 이미 백수를 넘기신 상노인이시오. 그 어른께 근심을 드림이 좋을 것 같지는 않소만….”

그렇다고 해서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어른께서는 답을 가지고 계실 거야. 알단 찾아뵙는 것이다.

영부는 초코 행 말에 올랐다. 한혈마다. 하룻길이면 천리를 달리는 명마였다. 바람을 가르면서 달렸다. 밤낮을 달려 사흗날 정오 무렵에 초코에 당도했다.

영부 주교는 알로펜 총주교의 거실로 안내되었다. 알로펜의 나이 120살이다. 그의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패
여 있었다. 촉광이 반짝이는 그의 눈빛은 주변을 안심시키는 불빛이었다. 드보라가 곁에서 알로펜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영부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는 마리아를 찾는 중이다.
“주교님은 어머님을 찾으십니까?”
드보라가 따뜻한 눈빛을 미소와 함께 담아 영부에게 보낸다. 영부는 광대뼈가 불쑥 나오기는 했으나 그의 구레나룻이 감추어 주어 골격이 잘 잡혀있었다. 그의 떡 벌어진 양 어깨는 드보라는 물론 마리아 교수까지 업혀도 흔들리지 않을 듯 튼튼해 보였다.

말없이 웃어넘기는 영부(주교)를 달려가서 한번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드보라는 다시 한 번 물으려 하는데 마리아 교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리아는 오른쪽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어, 교수님! 몸이 불편하세요?”

영부가 벌떡 이러나서 마리아를 향해 달려가 그의 가슴으로 껴안는다. 두 손으로 마리아의 등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토닥여 준다.

“이거 몇 년 만인가? 나는 그렇다 치고 주교님 아니지, 총주교님이 걱정되지도 않더란 말인가?”
마리아는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영부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세 분 어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어머, 나를 위해서까지….”
드보라가 소녀처럼 기뻐한다. 그녀의 나이도 90살을 훌쩍 넘긴 호호 노파이건만.
알로펜이 자리를 고쳐 앉고, 그들은 잠시 기도회를 가졌다.
“그래, 무슨 일로 급히 왔느냐?”
알로펜은 영부가 혼자서 달려왔고, 또 기별도 없이 온 것이 못내 걱정되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총주교님. 드디어 무측천이 심술을 부립니다. 이 나라 국교는 불교라고 하면서 특별히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보다 우리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핍박합니다. 며칠 전에는 장안은 물론 낙양의 큰 교회당을 열 곳이나 폐쇄시켰습니다. 아예 시설을 빼앗아 불교도의 불당으로 내주기도 하고, 도가 지나치니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어서 달려왔습니다.”

“이 사람, 겨우 그 정도야. 그럼 나 죽으면 무덤까지 찾아와서 걱정을 덜어놓으려는가? 그깟 예배당 몇 개 훔쳐갔다고 호들갑이야. 사내들이. 그러지 말게, 혹시 하늘보좌라도 훔쳐갔다면 또 모를까.”
“네, 송구합니다. 저는 아직 어린앤가 봐요.”

“허어. 이런, 진짜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함부로 하네. 회초리 좀 가져와. 어서….”
알로펜의 눈에 노기가 서려 있다. 그 눈이 드보라를 향해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재촉한다.
“오, 네. 네.”
드보라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간다.
“총대주교님, 마리아가 한 말씀 드리옵니다. 우리 둘 나이가 120살이 넘었네요. 또 영부는 현재 당나라 전국을 책임지는 주교좌 어른입니다. 3년 만에 만 리 길을 달려왔는데, 서운하셔도 잠시 노여움을 푸셨으면 합니다. 내 어미 된 마음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가? 그럼 내 아비 된 마음으로 일단 회초리는 접으리다.”
“감사합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니.”
알로펜이 미소 짓고 있는데 드보라가 작대기 하나를 들고 거실로 들어온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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