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은 교단의 조직 강화 문제였다. 모든 신자의 가정은 부모가
결혼해 자녀를 두고 그들이 자녀를 낳아 기른 후 때가 되면 결혼시킨다.
자녀들이 가정을 안정시키는 무렵인 53세 나이가 되면
부모는 가정을 떠나 수도 공동체로 생활터전을 옮긴다.
그리고 삶을 마무리하고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로 가는
절차를 교회가 책임지는 제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53세가 되면 명실상부한 세속생활을 종결짓는다는
뜻이다. 천국을 앞당긴다는 의미도 담았다.…
이는 힌두교 정신에서 모범을 찾고 있다.
알로펜이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는 제도화 한다는 계획을 가진
천국예비공동체로서의 제도였다.

 

   
▲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수도인 바쿠 시내를 바라보며, 카스피 해를 뒤로 한 필자의 모습

영부 주교는 저녁시간을 기다렸다. 쿰바홀 주교는 쿰가그와 쿰보그 두 아들 중 한 사람을 알로펜이 병들어 있다는 코초로 보내고 오겠노라고 나갔다. 안토니는 오리골 산 너머로 산책을 떠났다. 땅거미 질 무렵 먼저 온 안토니와 영부는 저녁상을 받았다.

“주교님, 이리 앉으시죠. 쿰 주교님은 조금 늦을 것입니다.”
영부가 안토니 주교를 부축할 듯 몸 가까이로 와서 이끈다. 곁눈질로 안토니 주교의 표정도 살짝 살펴보았다.

“왜 그러시오. 주교님! 제가 좀 까다롭게 느껴지시나요?”
안토니가 웃는 얼굴로 영부의 얼굴을 훑는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안토니는 영부의 힘 있어 보이는 두 눈, 그리고 그 총명한 듯한 눈을 받쳐주는 밉지 않게 튀어나온 광대뼈를 본다. 의지력이 강하고 허릿심이 좋아 보이는 골격을 느낀다.

“안토니 주교님, 왜 그러세요?”
영부 주교는 웃으면서도 자기 얼굴을 쏘아보는 안토니의 눈이 두려웠다. 늘 빈틈없이 자신을 다듬어 주시던 열정은 그대로인 듯했다.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코흘리개를 내다 버리지 않고 붙잡아 준 은인이 안토니였다. 부친이 영부를 찾으러 왔을 때 영부는 이미 예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걱정 말고 지켜보라고 했던 사람도 안토니였다. 물론 알로펜 총주교의 신임이 있어서였겠으나 안토니는 종종 자기 어릴 때 모습을 영부에게서 본다며 아들처럼 지켜주었다.

안토니가 영부의 딱 벌어진 두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고 놓지 않는다. 허공을 향하던 그의 얼굴이 영부의 두 눈에 멈춘다. 그리고 웃는다. 그런데 그의 눈 가장자리가 젖어든다. 영부가 그 얼굴을 피하려하자 안토니는 그의 양 어깨를 붙잡은 자기 손에 불끈 힘을 준다.

“피하지 말라! 지금 내 혼과 삶의 열정을 자네에게 부탁하노니….”
영부 주교는 안토니의 잔주름 가득한 미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가 말없이 밥상머리에 자리를 잡는다. 영부는 단정히 앉아서 두 손을 모았다.

“주교님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주교님의 원대하신 꿈을 저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
안토니가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총주교님께 주교님의 사상과 방황에 대해 다 들었습니다. 저는 주교님에 비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야. 영부 주교는 총주교님과 마리아 교수님으로부터 정통 기독교를 배운 거야. 물론 정통을 좋아하는 로마교구 사람들은 우리들을 여전히 이단세력으로 보고 있으나 기죽을 필요 없어. 우리는 예수께서 가슴 속에 품으신 또 다른 길을 알고 있어요. 이미 승부수는 던져진 거야. 지금 당나라 정세가 불안정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상 권력은 늘 흔들리고 움직이기도 하지.”

“그렇습니다. 그동안 로마제국을 가르친다고 오만 떨던 로마 가톨릭이 아라비아 이슬람에게 자기들의 신앙적 토대를 절반 가까이 빼앗겼잖아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물론 안디옥이나 알렉산드리아 심지어 페르시아까지도 장악해버린 아라비아 이슬람은 여기 당나라에도 위협이 되겠어요.”
“아닐세. 당나라는 아니지만 코초는 물론 서역의 우리 기반이 위험해요. 사마르칸트는 물론 저 드넓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우리 형제들도 시련기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지. 아, 무서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안토니의 얼굴에 어둠이 서린다.
“주교님, 아닙니다. 저는 아라비아 세력은 장차 오실 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봅니다. 우리는 저들 이슬람과 어떤 형식으로든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아요.”

“물론 쉽지는 않지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네? 안토니 주교님! 전에는 가능한 길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더러 희망을 가지라고 늘 말씀하신 것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이슬람과 만나는 길, 형제의 만남처럼 두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요즘은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려요.”
“어째서요?”
“반성이 없어요. 정통파들, 특히 로마교회가 세계교회 앞에서 또는 하나님을 향해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데 무함마드 세력을 향해 비난만 하고 있으니 길이 자꾸만 흔들려요. 자칫 기독교와 이슬람이 각기 원수 된 자의 길을 가게 될까봐서 겁이 덜컥 납니다.”
“…….”

영부는 안토니의 비관적 발언에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총주교님과의 대화에서도 이슬람은 기독교의 길을 예비하는 선견자요 선지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던 그 입으로 오늘은 정반대 발언을 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영부 주교, 염려 말아요. 바로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은 우리 알로펜 기독교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마 기독교가 무너진다고 모두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300년 카타콤 시대를 이겨내고 로마제국을 예수께로 인도한 관록 있는 기독교 세력입니다. 결코 위기를 방치하거나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로마교회가 우리에게 지원 요청하는 날이 올 수 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지켜내야 합니다. 그런데 쿰 부주교, 아니지 쿰 주교님이 왜 오시지 않을까?”
“아마 곧 오실 것입니다. 잠시만 더 기다리면….”

그때 쿰바홀 주교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어허, 죄송합니다. 두 아들을 모두 보내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네, 두 사람이나요?”
영부가 놀라서 반문했다.

“네, 그래요. 둘이서 가면 가는 속도도 빠르고 또 그곳에 가서 두 아들이 총주교님을 잘 간호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참, 극성스러우세요. 제가 걱정 마시라고 그토록 말씀드렸는데, 쿰바홀 주교님은 못 말리겠군요.”
“네, 말리지 마세요. 총주교님은 우리 당나라와 중앙아시아 교회의 대들보입니다. 지금 그 어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 납니다.”

“걱정 마세요. 쿰바홀 님의 정성 때문에도 총주교님은 이미 병마를 털고 일어나셨을 겁니다.”
“암, 그렇고말고. 그래야죠. 꼭 그래야 합니다.”

쿰바홀은 어린 아이처럼 선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들어 만세 부르는 시늉을 했다.
“저런, 저렇게 좋을까. 그냥 만세를 부르네요. 만세를….”
“만세 못 부를 이유도 없지요. 만세! 만세! 만만세! 총주교님 건강 만세!”
쿰바홀은 안토니의 오른손을 들어 흔들면서 껄껄껄 웃었다.

“어른신들, 그만 자리에 앉으시죠. 오늘은 좀 중요한 의논을 하고 싶습니다.”
영부가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총주교님 여기 계실 때부터 논의되었던 일입니다만 오늘은 결단내려야 할 듯해서요.”
“뭐, 중요결단이면….”
“네, 안토니 주교님께서도 함께 논의했던 안건이요. 남녀간에 53세가 되면 수도원 공동체 생활을 하자는 결의입니다.”

안토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그러나 쿰바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필 총주교님의 병세가 있을 때 그 일을 해야 합니까?”
“저런, 금방 총주교님 건강 회복되었다고 만세를 호기 있게 부르더니. 무슨 걱정입니까?”
“아, 아니….”

“네, 총주교님이 저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교단 조직 강화를 서두르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장 실천에 옮겨야죠.”
쿰바홀은 알로펜의 명이라 하니 두말하지 않았다.

“쿰바홀 주교님, 총주교님을 존경하시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영부 주교가 당나라 기독교인 우리 교단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영부 주교님께 힘을 실어드려야 함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안토니가 정색하면서 힘주어 말했다.

“아, 압니다. 그래도 총주교님이 계시니까….”
쿰바홀이 영부 주교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물론 쿰 주교님이 알로펜 총주교님을 존경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것과 함께 교단을 이끄는 책임자의 지도력도 인정해야만 공공의 사업을 힘 있게 해갈 수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영부가 안토니의 말을 들으면서 쿰바홀에게 공손히 머리 숙여 감사를 표시하면서 말했다.
“두 분 주교님의 심중을 제가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두 분이 곁에 계시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네요.”

안건은 교단의 조직 강화 문제였다. 모든 신자의 가정은 부모가 결혼해 자녀를 두고 그들이 자녀를 낳아 기른 후 때가 되면 결혼시킨다. 자녀들이 가정을 안정시키는 무렵인 53세 나이가 되면 부모는 가정을 떠나 수도 공동체로 생활터전을 옮긴다. 그리고 삶을 마무리하고 모든 사람이 하늘나라로 가는 절차를 교회가 책임지는 제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53세가 되면 명실상부한 세속생활을 종결짓는다는 뜻이다. 천국을 앞당긴다는 의미도 담았다.

가정생활이란 가장 안정된 인간 생활을 위한 축복의 장치이기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은 가정에서 발생하고 또 가정이 인간의 탐욕을 생산하는 출처가 된다는 이론적 뒷받침을 가지고 있다. 더 빠르게 가정생활을 교회 공동체로 옮겨야 하지만 세속살림의 형편상 53세까지를 원칙으로 하고 53세가 되는 새해 아침에 모든 부모들은 하늘나라의 예비단계인 교회 공동의 생활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계획이다. 이는 힌두교 정신에서 모범을 찾고 있다. 알로펜이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는 제도화 한다는 계획을 가진 천국예비공동체로서의 제도였다.

세 사람 주교들은 찬동했으나 영부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덧붙인다.
“사실 쉽지 않은 제도의 낯설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두 분 주교님들이 저에게 힘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의 가정마다 강제조항이 아니라 선택 위주로 하면 어떨까요?”
“아닙니다. 선택사항이면 실패합니다. 모든 알로펜 제자 가정은 필수 사항으로 하되 부득이한 가정이 있을 때는 그들의 사정을 살펴서 얼마간의 시차를 두는 선에서 이끌고 가야 합니다. 예외 조항도 주교회의를 거친다든지 해서 강하게 밀고 가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영부 주교는 안토니의 결단력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쿰바홀 주교도 알로펜의 지시라는 말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영부를 격려했다.
“또 하나 묵은 안건이 있지요. 도시나 농촌 등 변방의 하층민들과 생활로 연결하는 공동체 운동 말입니다.”

안토니는 당태종 때부터 시도하다가 중단된 하층민들 계몽운동을 말하고 있었다. 영부 주교가 안토니의 말을 받아 이었다.

“그 문제도 금번에 조심스럽게 재시도 했으면 합니다. 무조가 우리의 교회들을 폐쇄하거나 아예 불당으로 개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그런 교구의 신자들을 변두리 하층민 지대로 이주시키고, 먼저는 신자들끼리 공동체 형식의 살림을 하면서 하층민들과 가까운 이웃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안토니 주교님의 뱀골마을 생활처럼 말입니다.”

“그래요, 조심스럽게 시도해 봅시다.”
쿰바홀이 뒤지지 않겠다는 듯이 힘차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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