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십자가를 공유한 기독교는 타종교와 타인을 붙잡고
무조건 개종시키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공갈처럼 휘둘러 대지 않는다.

 

이슬람을 가르치려고 덤비지 마라. 이슬람은 기독교에게 배우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독교 사람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이슬람을 가르치려고 서두른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종속물이 아닌데 그런 지나친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어떤 이들은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가 구약성경을 표절했다느니, 쿠란은 성경의 짝퉁이라고 우긴다. 그럼 수메르의 신화나 함무라비 법전이 성경의 한 부분과 유사함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하려는가.
그리고 이슬람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 그들에게도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 사람들은 유대교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무슬림들을 만나면 자기 집 하인이나 죄인 다루듯이 요란을 떠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슬람 종교 사람들은 기독교로부터 인격적인 대접을 받기 원한다. 역사 기록을 보면 십자군 전쟁 후에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가 보다 악화되었다. 13~16세기에 이슬람 문화에 열등감을 갖고 위축되었던 유럽기독교가 18세기 이후에 이르러 이슬람을 앞서면서 뒤늦은 우월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슬람이 문명에 열등하다 싶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반드시 해야 한다.

또 기독교는 이슬람 사람을 만나면 첫마디부터 대속(代贖)의 교리를 들이미는데 그건 큰 실례가 된다. 이슬람도 문명사 위에서 기독교와 대등한 고등종교인데 어찌하자고 그들을 만나면 첫인사도 마치기 전부터 예수가 널 대신하여 죽었으니 너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면서 윽박지르는가.

예수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동의하고, 아멘 하는 기독교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예수생명을 대신 사는 자답게 겸허하고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자답게 당당해야 한다. 진실로 예수 십자가를 공유한 기독교는 타종교와 타인을 붙잡고 무조건 개종시키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개종이 아니라 인격의 감화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동케 해야지, 너 예수 안 믿으면 죽는다(지옥 간다)고 공갈처럼 휘둘러 대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 사람이 참된 진리의 사람으로 무게감을 갖췄을 경우, 상대방이 내 스승이거니 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두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 했다. 한 사람이 나보다 지혜롭다면 그래서 그가 나의 스승 되고, 나보다 조금 모자라면 내가 또 실수하지 말아야 하니 그가 내게 긴장감을 유지케 해 주어서 선생이 된다는 식의 말씀을 했다지 않은가.

기독교의 복음이 인류 최고 최상의 진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진리는 입으로 중얼거려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또는 인격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한국사회 구성원 가운데 이슬람이 백만 명을 훌쩍 넘기는 날이 곧 올 터인데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부축하여 또 때가 되면 기독교가 이슬람 신자를 대신해 죽어주는 날도 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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