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⑧[장편소설]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44
조효근 목사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63호] 승인 2015.06.24  14:51:4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이슬람의 아시아 진출을 막아야 해요.
아니야. 그보다는 이슬람을 우리들의 형제로 불러내야 해요.
이슬람은 로마식 기독교에게 맡겨두면 장차 유럽기독교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거야.”
이 말을 하는 영부주교는 낙루(落淚)하고 말았다.
요수아와 시몬이 민망해 얼굴을 들리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말이다.
“두 분도 아시오. 우리의 총주교님이
수리아 다마스커스에서부터 무함마드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현 서안(장안) 옆 도시 난주, 실크로드 시대 카라반 숙소가 있던 곳

영부 주교와 아침 식사를 같이 한 안토니 주교는 오리봉 수도원 강의실로 향했다. 아침모임 참석자들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늘은 30가정을 빈민촌에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해야 한다.
안토니는 수도원장실로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드렸다. 주여, 이 사람들이 빈민촌 사람들과 허물없이 사귈 수 있게 하소서. 우월감을 갖거나 또는 열등감 따위도 없게 하소서. 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안토니는 인기척에 기도를 멈췄다.
쿰 주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으면 저를 부르시지 그냥 계셨습니까?”
“아니오. 금방 왔어요. 오늘은 좀 더 활발한 대화를 해도 괜찮을 겁니다. 모두들 모습이 든든해 보이는군요.”

“그렇겠지요. 저들은 페르시아에서 떠날 때 맨주먹으로 온 사람들이니까 겁도 없고 망설임도 없을 겁니다. 소유가 없으니 자유롭겠죠.”
“그러게요.”

안토니와 쿰바홀이 강의실로 들어가자 모인 사람들이 박수치며 환대했다.
“오늘은 모두 넉넉한 얼굴들이네요.”

“그럼요. 우리는 거칠 것이 없어요. 우리 앞길은 탄탄대로입니다. 여기 당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연명(AD 365~427)의 노래처럼 우리는 남의 땅을 빌려서라도 농사지을 것입니다. 그분의 시 내용을 보면 순(舜)임금이나 우(禹)임금이 농사지으면서 통치했다면서 도연명 자신도 나이 40살에 관직을 내던지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집에 내려가서 농사지어 먹고 살았고 62살 말년에는 궁핍하여 때로는 걸식하는 일이 있었지만 드높은 기개의 선비도를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비도 군관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소?”
안토니는 그의 말에 신기하다는 식으로 되물었다.

“네, 시몬 수사님이 어제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당나라는 변경으로 나가면 노는 땅도 많다. 땀 흘려 일할 준비만 되어 있으면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다. 먹고 사는 일에 자유로워야 복음도 당당하게 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옳거니! 그 말 맞소! 나도 무조건 동감이오. 우리는 낮은 곳으로 갑니다. 가서 일하다가 혹시 당나라 사람이 그건 내 땅이라 하거든 언제든지 그러냐고 하면서 되돌려주고 우리는 또 다른 땅을 파 엎으면서 씨앗을 뿌리면 됩니다.”

“옳습니다. 저희들 모두는 주교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교님도 짐작하셨겠지만 하비도 군관을 우리의 반장으로 임명해 주세요.”

“걱정 마시오. 그렇게 하겠소.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요수아와 시몬 수사를 종종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 분만 더요.”
“누구를 말입니까?”
“누구긴요. 안토니 주교님이시죠.”

안토니는 두 손 들어 찬성을 표해주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영부 주교가 한쪽 구석자리에 이미 오래 전에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영부는 진지한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옆자리에서 듣고 있었노라면서 찬성한다고 했고 하바도가 전하는 시몬 신부의 도연명 이야기를 다시 묻기도 했다.

안토니는 30명의 이주자들을 자기가 터 잡고 살고 있는 뱀골 마을 사람들의 조직과 연결해 자리를 잡아 주었다. 기거할 집이 별도로 준비되지는 않았다. 지역 사람들의 별채나 사랑채 등에서 더부살이하다가 한 해쯤 후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정도의 계획을 세웠다.

당나라 관계 진출을 계획하다

시몬과 요수아가 영부 주교의 호출을 받았다. 영부 주교는 시몬이 공자에 대해 지나친 견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마음으로 저들을 불렀다. 시몬과 요수아는 잔뜩 건장한 표정으로 주교좌 접견실로 안내받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그들에게 영부 주교는 당나라 선교의 새 소망이었다. 알로펜 총주교님이 영부를 어떻게 길러냈음을 다 알지는 못하나 지도력을 인정받은 인물로 알고 있었다. 영부 주교는 소그드의 아들로서 그의 생부가 가지고 있는 소그드인들의 조직을 확대해서 아시아 기독교를 당나라는 물론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북방족들의 끝까지 파고들겠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잠시 후에 영부 주교가 들어왔다.
“어서들 오시오. 왔으면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야지 서 계시오. 우리가 어디 남이오.”

영부 주교는 활짝 웃으면서 자리를 권했다.
“오늘 뱀골 인근에 페르시아인들 정착문제는 잘 된 거 같지요. 그렇죠. 감사하게도 안토니 주교님이 열의를 보여주셔서 든든하기도 하고…. 그리고 참 이 저녁에 여러분을 뵙자고 한 것은 우리들 기독교 사람들이 당나라 조정이나 그 밖의 관직에도 진출해야겠어요. 이 점에 대해 함께 의논했으면 합니다.”
“네! 벌써 생각하셨어요?”

“벌써라니요. 총주교님은 오래전부터 계획하셨지요. 그러나 고구려 정벌 이후 갑작스럽게 퇴위하셨고, 고종 황제 치세에는 황후가 워낙 드세니까 우리가 때를 지켜보고 있었죠.”
“아, 그러셨군요.”

“그래요. 그러나 이제 황궁 내부 돌아가는 것을 보니 때가 가까이 왔다는 생각입니다. 황후 무조의 시대가 곧 끝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요. 진시 황 이후로 단 한 번도 없던 여황제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황제 위에 군림한 세월이 모두 황제노릇이기는 하겠으나 민심까지 움직이긴 어렵죠. 그래서 지금은 당나라 문을 닫고 새 왕조를 세우려 한다지만 그게 그리 쉬운가요. 세월이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으니 우리 로마제국 교회 역사에서도 종종 있던 권력, 권력과 종교의 관계가 그거잖아요. 무조가 불교를 끼고돌면서 우리들의 교회당을 탈취해 부처님께 바쳐 인심을 얻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불교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줄 힘이 없지요.”
“그럼요, 그럼요.”

요수아와 시몬은 평소보다 말씨가 거칠어지고 약간은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영부 주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좀 흥분했죠? 자, 우리는 당나라 황궁의 전통에 따라서 과거에 응시할 인물들을 바로 당장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 일은 여러분 둘이서 맡아주세요. 아마 시몬 수사님은 천거할 인물들을 많이 알고 있으시죠?”

“그럼요. 이 사람 시몬은 우리 동료들 중에 중국사상에 호감 갖는 이들을 잘 알겁니다.”
요수아가 가로채서 대답한다.
“주교님, 그러나 저는 이같이 중요한 일에 덤벼들 수 없어요. 주교님께서 이끄시면 제가 아는 바가 있을 때 말씀드리는 것이 더….”

“아니오. 나는 시몬 신부의 실력을 압니다. 다만 너무 공자나 맹자에 기울면 되겠나 하는 조심스런 생각은 있지만 이 시간 내 생각에는 두 분에게 기대와 신뢰가 갑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부터 납니다.”
시몬이 두 손을 모아 쥐고 고개를 숙였다.

“당나라 선교의 총책임자가 나요, 나 영부입니다. 여러분은 아시죠. 저는 총주교님을 10살 때부터 이날까지 40년이 넘도록 어린아이의 자세로 배워왔습니다. 그 어른 앞에 서기만 하면 나는 마냥 아이가 된다니까요. 그러나 지금 우리 당나라 기독교는 당나라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태종 대왕 치세나 고종조의 시대는 갔습니다. 앞으로 100년쯤 당나라가 문화와 국력이 융성할 터인데 우리는 이때를 놓치지 말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당장 인재양성을 서두르세요. 다음 번 과거시험이 있을 때 우리도 당나라의 실력 있는 관료를 배출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관직용 공자 공부가 아니라 중국은 사실 우리가 가르치려고 온 나라라고 하기에는 한참 우수한 제국입니다. 로마가 그리스 사상에 맹종하듯이 자칫 우리도 당나라 선교하다가 공자나 맹자의 제자 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종교나 학문 또는 철학에 있어서도 술 취하듯이 취해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패가망신 당하기 쉽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뜻대로라면 여기 당나라 식으로는 ‘중용지도’를 지켜내는 지식의 장치가 있어야 하지요.”
시몬이었다.

“중국의 공맹 사상뿐 아니라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어느 특정한 부분에 취해서 기독교는 이거다, 여기가 정통이다, 가톨릭이다, 하면서 독선을 드러냈고 그 피해자가 이단으로 몰린 네스토리우스 파인 우리들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하루빨리 예수님의 길이신 대속(代贖)의 사상을 높고 또 두텁게, 또 강하고 드넓은 안정감을 가져야 하겠어요.”

“바로 여러분 시몬이나 요수아 신부와 같은 이들이 우리에게도 많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뭐든 말씀하시죠.”
“지금 총주교님께서 구상하고 계신 중앙아시아를 중심한 페르시아 몽골 등 북방의 초원지로의 선교가 시급합니다. 당나라, 앞으로 100여년이 수명입니다.”

“아까도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그토록 쉽게 말씀하십니까?”
요수아의 당돌한 질문이다.
“그래요? 내가 너무 성급한가요? 제 예감인데 중국 고대 왕조부터 살펴봐도 한나라 같은 안정감 있는 강대한 제국도 전·후한 합해도 200여년 수명입니다. 당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군요.”

요수아와 시몬은 영부 주교가 오늘따라 달리 보였다. 그들보다는 훨씬 높은 곳에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중앙아시아로 중심이동을 해야 합니다.”
“중심이동이라니요?”
요수아였다.

“네, 아시아 선교의 축을 중앙아시아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당나라는 선교 확대를 위한 전방기지일 뿐입니다.”
“아, 네. 정세의 요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당분간은요. 중앙아시아도 현재까지는 주인 없는 땅처럼 보이지만 누가 압니까. 장차 우리들 아시아 기독교의 고향이 될 수 있을는지요.”

“주교님, 그 같은 미래가 우리의 몫이 되려면 지금 활화산처럼 유럽을 불태우고 있는 이슬람의 진출을 막아야 합니다.”
시몬이었다.
“앗, 당신!”
영부가 탁자를 치면서 시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아니, 제가 뭘….‘
시몬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아니오. 아니야. 내가 흥분했어. 시몬 신부의 예리한 지적에 내가 놀란 겁니다. 미안해요.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 역시 시몬 사제도 감각이 탁월하군요. 그래요. 이슬람의 아시아 진출을 막아야 해요. 아니야. 그보다는 이슬람을 우리들의 형제로 불러내야 해요. 이슬람은 로마식 기독교에게 맡겨두면 장차 유럽기독교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거야.”

이 말을 하는 영부주교는 낙루(落淚)하고 말았다. 요수아와 시몬이 민망해 얼굴을 들리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말이다.

“두 분도 아시오. 우리의 총주교님이 수리아 다마스커스에서부터 무함마드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네, 그건 압니다. 두 분 다 15살 때었다면서요.”

“그래요. 지금 알로펜 주교님 연세가 얼마인지 아세요?”
“그건 잘 모릅니다.”“모르고 계세요. 총주교님은 중앙아시아에서만큼은 이슬람과 알로펜 총주교가 지키고 있는 아시아기독교가 반드시 형제사랑으로 사귈 수 있는 길을 찾고 계시죠. 지금 연로하신대도 의료시설도 여기 장안보다 훨씬 못한 초코에 머물고 계신 것은 그 어른의 간절한 염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아, 참. 우리 중앙아시아 선교 전략 이야기를 계속해야죠.”

“아, 네! 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조효근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