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역사, 아니 더 나아가서 동북아나 세계 교회사에서도 중국의 5호 16국시대, 타클라마칸의 조그마한 성벽국가인 쿠차의 고승 구마라습 같은 실력있는 인물이 나왔으면 한다.

구마라습의 부친은 천축국(고대인도)의 고위 관직에 있었던 인물인데 구도(求道)에 뜻이 있어서 관직을 내려놓고, 당시 서역이라 이름하는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요 다른 표현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조그마한 성벽국가인 쿠처 왕국으로 순례를 왔었다.

쿠처 왕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그를 탐낸 나머지 자기의 사랑하는 여동생인 공주를 아내로 주어 그를 붙잡았다. 그런데 그는 아들 구마라습을 낳고는 어여뿐 아내나 총명한 아들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기도의 삶을 원하여 쿠처 왕국을 떠나버렸다.

졸지에 과부가 된 공주는 아들 구마라습에게 말했다. ‘나도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겠으니 너는 왕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아다오.’

그런데 다섯살짜리 구마라습이 ‘어머니 나도 어머니를 따라 진리 배우는 길로 나서 겠습니다’ 하자 모자가 각기 길을 떠났다. 30여년 후 구마라습은 큰 학자가 되어 쿠처를 방문했다. 그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는 물론 주변국의 언어 또는 중국어까지 통달, 더구나 난해하고 난삽한 경전들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일에 크게 이름을 드날렸다.

그는 고대 인도의 불경을 중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고 가르치는 큰 학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여행자의 이름으로 중국 땅 타클라마칸 사막의 도시 쿠처에 가면, 곧 바로 구마라습의 도장인 ‘키질 석굴’에 갈 수 있다. 가면 정문에 구마라습의 기도하는 모습을 깎아 만든 청동상이 있다. 또 석굴 전면을 바라보면 3,000개의 기도실이 보인다. 3천 제자를 두었다는 뜻이겠다.

할 말이 없어서 타종교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구마라습은 자기 하는 일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욕심이 난 중국은 그 때 위진 남북조 또는 다섯 오랑캐(5호)들이 나눠서 통치하는 16국시대(AD220~589)였다. 그 때 각 나라 왕들이 서로 탐내던 인물이다. 바로 이 사람이 있어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일대일의 실력을 겨루게 되었으니 오늘의 중국불교의 은인이 바로 구마라습이다. 이 사람 구마라습은 임종 전에, 내가 번역한 책 중 단 한 자만 잘못 번역했으면 다비식을 할 때 내 몸이 완전히 불타겠으나 내 번역에 실수가 없었다면 ‘내 혀’는 불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의 장례식인 다비식 때에 구마라습의 혀가 결코 불타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학문이 정확했다, 그는 자기 실력이 어느 경지에 올랐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한국교회 목회자나 신학자, 또는 학문을 하는 이들 중 이 사람보다 더 큰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주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이사야나 요한복음 저자처럼 성경을 기록하는 실력이 있는 인물이 한국교회에서 나왔으면 하는 간절한 내 마음 그 누가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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