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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⑨[장편소설]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45
조효근 목사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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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호] 승인 2015.07.08  14: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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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나 이설은 어느 종교에도 있잖아요. 기독교는 정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하나님이시며 또 사람이신 구원자 예수는 오직 한 분이고
그분의 성격 또한 신과 인간의 두 모습이지만 본질의 성격은 하나님을
천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신자들은 아직
가르침에 이르지 못한 자로 분류하면 됩니다.”

 

   
▲ 중국의 돈황 석굴 모습

알로펜의 퇴장

알로펜이 세상을 떠났다.
영부 주교는 한밤중에 쿰바홀의 고함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알로펜 총주교의 위독이었다. 영부와 쿰바홀 일행이 초코에 당도했을 때 총주교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마리아와 드보라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찌된 거냐는 말이 필요 없었다. 쿰바홀이 알로펜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그는 침착하게 알로펜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숨이 거칠거나 불규칙하지는 않았다. 평온했다. 평소처럼 조금 피곤해 누워서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부는 쿰바홀 곁에 앉아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알로펜이 눈을 뜬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너희들 언제 왔느냐는 눈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흐른다. 마리아가 하얀 수건으로 이마를 조심스럽게 훔치면서 선생님, 선생님을 혼잣소리로 읊조리고 있었다. 알로펜이 마리아의 손을 잡는다. 뭐라고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 같았다. 마리아가 말했다.

“그냥 편히 계셔요. 선생님이 누워계신다고 서운해 할 사람은 여기에 없어요.”
마리아가 알로펜의 손을 잡았으나 그가 뿌리친다. 이마를 찡그리며 짜증스러워했다.
“알았어요. 그럼 일어나 보세요.”
마리아와 드보라가 알로펜의 등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비스듬히 상체를 고정시켰다. 알로펜은 쿰바홀과 영부의 손을 각각 잡으려 했다. 그들이 알아차리고 한 발 가까이 다가와서 알로펜의 어깨를 부축하며 눈을 맞춘다.
“총주교님, 우리들의 아버지여. 기운을 차려 주세요. 아직은 더 우리를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하시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요.”
쿰바홀이 흐느끼며 안타까워했으나 알로펜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기만 했다. 마리아가 쿰바홀에게 말했다.

“총주교님은 그런 말씀을 싫어하세요. 지금 너희와 내가 만난 지 몇 십 년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꾸중하세요. 또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고통이 더하실 것 같기도 해요.”
쿰바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총주교님, 맞습니다. 저희가 가르침 받은 지가 얼맙니까. 저희가 어리석어서 다 배우지 못했으나
앞으로는 영부 주교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배워가겠습니다.”

알로펜이 무척 기뻐했다. 다시 두 사람에게 잡힌 손을 흔들어 보이고자 했으나 힘이 없었다. 영부는 말이 없이 울고만 있었다. 드보라가 영부에게 말했다.

“총주교님을 안심시켜 드리세요. 어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지금 총주교님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여러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총주교님. 지나온 날을 저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미덥지 않을까봐서 총주교님이 40년간 저를 가르치던 말씀을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저의 생명을 다 바쳐서 총주교님의 가르침을 당나라 천지에 굳게 세우겠습니다. 당나라가 지금은 탐욕스러운 여인 하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곧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저희를 믿어주시고 어서 속히 건강을 회복해 주세요.”

총주교님이 머무는 방문이 열린다. 옆문까지 모두 열렸다. 수십 명의 중간 제자들이 말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안토니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알로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마리아가 일어섰다.

“여러분, 총주교님께 하직인사 드리세요. 지금 앉아계신 자리에서 인내심을 발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아버지 총주교님! 이제 우리 아시아 선교단 모두의 약속으로 보고드립니다. 저희는 당나라 본토와는 별개로 반드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아시아 기독교의 본부를 세우고 장차 세계기독교의 중심을 이루겠습니다. 이제는 이 사업을 저희 모두에게 맡기고 편히 쉬시면서 지켜봐 주세요.”

영부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알로펜에게 보고했다. 영부가 어느 순간 흐느끼기 시작했다. 곧이어 마리아와 드보라의 통곡소리가 났다. 이를 신호로 알로펜의 죽음은 확인되었다. 광장에 모인 제자들도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다. 알로펜은 115살이다. 참으로 긴 날을 살았다. 중국에 입성하여 80년이다. 당태종의 사부로 또는 친구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년에 이르러 선교의 중심지를 당나라가 아닌 중앙아시아로 계획했다. 알로펜이 당나라를 피하려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나라가 너무 완벽한 제국이라는 점, 또 하나는 당태종 시대가 끝난 후 수리아 기독교가 알로펜이 주도하는 당나라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장악한 뒤 밀려드는 난민들과 함께 수리아 기독교 학풍이 동반해 들어온 것이다.

알로펜이 페르시아 기독교보다 수리아 기독교의 성격을 경계하는 것은 그들 수리아 기독교가 이슬람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주었고, 신학적 선택 또한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지목하는 단성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너는 제자들을 기를 때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고 또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으나 하나님의 동일본체
임을 지켜내는 신학적인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너는 당나라에서 후계자를 세운 후 이곳 초코로 달려와서 나를 도와 중앙아시아의 기독교를 건축해야 한다. 저기 저 파미르고원처럼 우람하고 두터운 산하만큼 튼튼하고 견고한 기독교를 만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쯤 여유가 생기면 로마제국 교회와 친분을 맺고 신학교류하고 유학생을 주고받을 수 있는 때까지 지경을 넓혀야 하느니라.”

“그런데 스승님! 저는 정통 기독교와 이단 기독교 간의 벽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네,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 오직 정통교리를 두고 이단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삼갈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이단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라, 이단이나 이설은 어느 종교에도 있잖아요. 기독교는 정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하나님이시며 또 사람이신 구원자 예수는 오직 한 분이고 그분의 성격 또한 신과 인간의 두 모습이지만 본질의 성격은 하나님을 천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신자들은 아직 가르침에 이르지 못한 자로 분류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신 분 예수를 오해하는 단계의 모든 사람들은 과정에 있는 자, 목적에 다다르지 못한 자, 그리고 끝내 딴소리하는 자들은 실패자로 구분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정통 가르침에 도달하지 못한 교회나 개인을 성장과정에 있는 자들로 아량을 어느 때쯤인가는 베풀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옳다. 네가 나를 잘 배웠다. 내 생각이 늘 그렇다. 다시 말하면 예수 메시아의 경지는 과정을 거치는 거다. 그래서 학풍을 만들어라, 학자들을 양성해라, 사람을 기르라는 말을 내가 하지 않더냐.”
이 같은 대화를 영부 주교는 생전의 총주교로부터 많이 들었다. 이제 더 가르쳐 주지는 않겠다 하시는 듯이 떠나버리셨으니 어찌하는가. 영부는 총주교님의 임종을 보지 못한 안토니 주교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졌다. 뒤늦게 달려와서 겨우 장례식에 참석한 안토니 주교의 통곡소리가 장례를 치른 지 한 주간이 지났으나 그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형님! 형님! 접니다. 한때는 제가 형님을 오해했으나 저는 형님의 동생이고 제자입니다. 저를 한번 안아주시고 떠나시지 왜 그렇게 바쁘셨어요.”
영부는 몸살이 나서 누워있는 마리아 곁으로 가서 장안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드보라에게도. 마리아는 영부에게 장안은 안토니와 쿰바홀에게 맡기고 영부가 초코로 일단 와서 중앙아시아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종 이융기

당나라 제 6대 황제(AD 712~756)가 등장했다. 본명은 이융기(李隆基)다. 시호는 명황(明皇)·무황(武皇), 무측천(武測天)의 아들 예종의 셋째 아들로 AD 687년에 주공(周公)으로 책봉되었다.

소용돌이치는 당 조정의 격동기에 몸 사리기가 쉽지 않아서 권력의 경쟁자 대열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인물이기는 했으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을 계산해보는 습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권력 줄을 매만지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낙천적인 성품으로 권력 때문에 핏대를 올리거나 실력은 부족하면서 억지스럽게 끼어들었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겼다. 그러나 이융기는 그의 할머니인 무측천이 제위를 찬탈해(AD 690년) 그를 영주공(灵州公)으로 책봉함으로써 무측천 말기에 궁궐 내의 금위군에 영향력을 확보했다.

당태종의 후궁에서 그의 아들인 고종의 정비인 황후의 자리에 올랐음은 물론 병약하고 심약한 고종을 대신해 섭정을 해왔던 무측천은 언감생심 황위까지 찬탈해 여황제 노릇까지 했으나 황권 지속이 쉽지 않았다. AD 699년 무측전은 전 황제 중종(中宗) 이현(李현)을 다시 태자로 삼았으나 AD 705년에 이르러서는 대신들과 장군들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황위를 이현에게 내줘야 했다. 중종 이현은 무측천이 주나라로 변경했던 국호를 당(唐)으로 되돌렸다.

그러나 중종은 부인 위후(爲后)의 정치력에 밀려 그녀를 정사에 끌어들였다. 위후는 자기 부친을 왕으로 봉하는 한편 딸 안락공주도 정사에 참여시킨다. 위후는 중종에게 압력을 가해 안락공주를 황태녀로 삼게 했고 장차 황위 계승을 시키려는 야심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무측천처럼 황제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AD 710년 위후가 음란하다는 소문이 궁중에 퍼지면서 황제의 추궁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녀는 안락공주와 공모하여 중종을 독살했다.

위후는 중종 사후 자신의 소생인 16살의 온왕 이중무를 소제(小帝)로 옹립하고 당융(唐隆)으로 개원(改元)했다. 그러나 위후의 영광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는 이융기가 칼을 뽑아 들었다. 이중무는 즉위 1개월도 못되어 황위를 내려놓아야 했다. 이융기가 누이동생인 태평공주와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위후를 죽이고 이중무를 퇴위시켰다.

이융기는 그의 부친 예종을 다시 등극시키고 그 자신은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부친 예종은 AD 712년 이융기에게 양위하고 태상왕이 되어 섭정했다. 그러나 권력은 태상왕 예종이나 황제에 오른 현종 이융기가 아니라 태평공주가 장악했다. 균형은 1년 안에 깨지고 말았다. 태평공주가 권력투쟁에서 현종에게 지고 자결함으로 당조는 20여년의 혼조를 넘기고 드디어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제위에 오른 현종은 관료조직을 개혁했다. 국가 재정도 회복시키고 전 왕조에서 중단되었던 대운하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외치에 있어서 티베트, 돌궐, 거란족들과의 국경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만인가. 암탉이 울어대던 날들. 드디어 당 왕조마저 수나라 꼴이 되는가 싶었을 만큼 위기의 시대를 살아온 당나라, 절세의 영웅이요 지구상의 비교가 없을 만큼 뛰어난 인물, 중국 역사에서 가장 정치를 잘한 인물인 당태종 이세민의 태평성세가 이렇게 끝나는가 했던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걷히고 다시 태종조의 ‘정관의치’를 이루어낼 현군으로 현종을 신뢰해도 될 것 같았다.

위진 남북조의 대혼란 오호 16국이라, 다섯 종족의 북방 오랑캐가 대륙을 16개 나라로 쪼개고 비웃었던 시대를 마감한 수·당대, 이 모두를 포함해 중원대륙의 열망을 넉넉하게 성취했던 태종 이세민 시대의 영광을 다시 부를 수 있는가? 태종은 적의 강약을 꿰뚫어 단숨에 승리를 가져오는 천재적인 군략가였다. 그는 반대파까지 끌어들여 드넓은 포용력의 정치를 했으며, 과거제를 정비해 널리 인재를 구했고, 특히 외국인들에게도 과거에 응시해 동일한 조건으로 합격하면 차별 없이 당 조정에 출사하는 기회까지 열었었다. 세계 각 나라의 인재는 물론 특히 한족과 이민족(북방족)들을 차별 없이 대우했으니 그래서 당태종을 백성들은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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