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46

   
▲ 난루 황하(강) 건너편 산 언덕의 탑. 경교탑을 많이 닮았다.

“놀라지 마세요. 황제가 비잔틴 동로마 황제와 교감했다면서 당나라와 동로마 간의
비단 무역을 우리 교단이 책임지고 관리해 달라더군요.!
“영부 주교님! 이건 큰 사건입니다. …
로마 황제가 당나라 네스토리우스 교단을 직접 무역 상대로 하면
페르시아 중개무역에 비해 비단을 훨씬 싸게 수입하겠죠.
그러나 그런 큰 이익을 위해서는 우리 교단을 이단정죄에서 풀어줘야 합니다.”



 

 

안토니 주교의 뱀골이 흥청거린다. 전에 없이 주민들이 활기 넘치는 것은 안토니가 30세대의 페르시아 난민들을 이끌고 온 이후부터이다.

마을은 뒷산이 세 개의 봉우리로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 잡고, 뱀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뱀이나 잡아다가 몸 보양은 물론 어떤 뱀들은 불치의 병을 고친다 하여 병자들이 주거지를 빌려서 눌러앉아 뱀탕을 고아 먹으면서 완치의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안토니가 이곳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마을사람들이 그에게 배움을 얻으며 흥얼거리는 말이 ‘우리 마을에 하늘이 성자를 보내주셨다’고 좋아들 하던 터에 얼마 전에는 안토니의 인도로 마을에 새로운 주민들이 몰려왔으니 좀 좋은가. 안토니를 따라온 그들은 뒷산 골짝에 터 잡고 집 지어 거주하며 살림을 시작했다.

산 중턱에 임시거처로 만든 회당 모임 날이다. 난민들이 모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안토니는 말했다.
“여러분 중에 예수를 섬기면서 사는 생활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예배 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토니의 퉁명스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누굴까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웃는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있다 한들 우리가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사는데 따로 놀 사람이 있겠어요.”
‘그치요’ 등 한마디씩을 하면서 깔깔 웃는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신앙을 건성으로나 또는 체면치레로 습관 삼으면 안 됩니다. 저 자신의 경험을 생각해 봐도 한때는 어머님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했어요. 그러나 그건 내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어요. 후회됩니다. 여러분, 이곳은 당나라 땅입니다. 당나라에서 살면서 차츰 여러분은 훌륭한 선생들이 존경받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공자, 노자, 맹자, 장자, 순자, 묵자 등 수많은 인물들이 높이 존경받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존경받고 존경하는 사회가 또 얼마나 훌륭합니까. 저는 선교한다고 이 나라에 와 있고 여러분은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외세에 침공 받아서 자기 나라에서 이 나라로 피난 온 것이잖소. 여러분 다수가 페르시아제국의 시민들이죠. 여러분의 페르시아가 한때는 당나라보다 더 크고 훌륭한 나라였지요. 그러나 아라비아인들이 몰려와서 여러분을 본토 자기의 고국에서 살 수 없도록 했어요.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제 생각에는 여러분의 생활 중심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받으며 앞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도 있고 또 여러분이 힘을 모으면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페르시아보다 더 좋은 새 나라를 만드는 용사들이 되고 싶습니다.”
안토니의 열변에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던 에스라가 말했다. 이 청년은 마니교 사람이다.
“오, 에스라 님. 형제는 마니의 제자이신데?”

“네, 저는 마니교의 포교사입니다. 그러나 나의 사부이신 마니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섬기며 따르기로 했습니다.”
“언제 그런 결심을 했나요?”
“안토니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최종 결단은 지금 여기 계신 증인들 앞에서입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차기도 하고 안타깝다는 아쉬움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좋습니다만 저는 물론 우리들의 스승이신 알로펜 총주교님이 생전에 누누이 하신 말씀이 개종시키지 마라, 개종하지도 마라였습니다.”

“저는 개종이 아닙니다. 마니교 교조 되시는 어른께서는 본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니의 초심을 따른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주께서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합시다. 환영합니다.”
이어서 안토니는 공동체 운영을 위한 느슨한 규칙과 함께 기존의 30가정 외에도 좀 더 규모를 확대하고 싶다는 의견을 말했다. 난민들 중에도 희망하는 이들이 있고, 특히 소그드인들을 일부 영입하고 싶다는 말에 모두들 얼마간 흥분하는 분위기였다.

“저 하비도입니다. 안토니 주교님! 저희들 중 혼자 사는 사람이 열 명입니다. 다섯은 페르시아를 떠나올 때 부인과 경황이 없어서 잠시 헤어졌으니 곧 가까운 날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머지 다섯은 주교님처럼 독신으로 주님을 섬기고자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저입니다. 그래서 저희들 독신지망자들 다섯이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뱀골에 이주자들을 더 받아들이는 것도 좋고 소그드 상인들 부르는 것도 좋으나 지난번에 53세가 되면 가정을 떠나 출가하기로 결정했는데 저희가 그분들 모실 시설을 준비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좀 더 상세히 말해보시오.”
안토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네. 53세가 되면 가정을 떠나서 수도공동체로 모일 터인데 그 숫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가정에서 자식들의 모심을 받으며 편히 살아갈 노년기인데 그분들이 한곳에 모여서 생활하자면 시설을 합숙소 식으로 할 수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또 백 명 이상 단위는 한 장소에 모여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하비도 님, 로마제국 교회의 경우 몇 백 명씩 모여서 생활하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 학교나 물건을 만드는 공장도 있고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 로마제국만큼 한 시설과 환경을 만들기는 어렵죠. 그래서 수도원 본원과 함께 분원을 여럿 두는 것입니다. 저희 뱀골에서도 몇 십 명이 모여서 공동생활하는 수도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머, 그러면 뱀골수도원이 되겠네.”
누군가가 이 말을 하자 모두들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아닙니다. 뱀골수도원이 아니라 제가 수도원 이름도 생각해 봤는데, 오삼수도원 뱀골분원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삼수도원이라…. 이름이 괜찮은데, 그러나 수도원 이름은 주교회의에서 결정해야겠지요. 그러나 몇 군데 분원을 설치하고 우리가 그 중에 분원 하나를 감당한다는 하비도 형제의 의견은 좋습니다. 형제는 우리 네스토리우스 당나라 교회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그렇죠?”

“네, 맞습니다. 태어나기 전서부터 기독교 신자였지만 이슬람 종교에게 쫓겨 영광스러운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고 지금쯤은 황제에 오르셨을 텐데 황태자께서 저 동쪽 신라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망명생활 하는 것이나, 저희가 당나라에서 더부살이 하는 현실이 괴롭습니다. 이제라도 저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이 땅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날을 앞당기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나 안토니도 하비도 형제의 소원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돕겠습니다. 또 다른 분들 새로운 의견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수도원 문제는 주교님 등 어른들이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소그드인들을 불러들인다는 말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소그드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업하는 재주를 익힌답니다. 다들 아시는 대로 그들은 매우 재빠른 방법으로 사람을 사귀고 상대방에게 자기 물건을 파는 상술을 터득하고 있지요. 나는 오래 전부터 소그드 사람들의 상술을 배워 우리들 모든 네스토리우스와 알로펜의 제자들이 중앙아시아와 당나라를 휘어잡을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중앙아시아와 당나라 사람 모두가 예수를 따르는 날을 보고 싶다 이 말입니다.”

“저희도 백번 찬동입니다. 저회들의 처지를 저희가 잘 알지요.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터인데 땅 한 뙤기도 없는 처지에 소그드인들뿐 아니라 당나라 사람들도 소그드인 못지않은 상술이 있다고 봅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니 돈도 벌고 예수를 더 잘 믿을 공부도 하렵니다.”
“맞아요. 우리들의 앞날을 안토니 주교님이 책임져주셔야 합니다.”

“아닙니다. 주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비도가 재빠르게 말했다.
다음날 안토니는 주교청으로 영부 주교를 만나러 갔다. 중앙아시아 문제나 당나라 과거시험 응시자 교육은 물론 새로 들어선 당 왕조와는 어느 만큼 협조관계를 열었는지도 궁금했다.
영부와 쿰바홀이 안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가 부르셨다면서요?”
“안토니 주교님, 새 황제가 매우 총명해 보이더군요. 태종조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듯 보였어요. 우리 교단의 사정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사의 이름을 ‘파사사’에서 ‘경교사’와 ‘대진사’를 병행해서 사용하라 하셨습니다. 일간 황제께서 방문해 현판식을 직접 해주시겠다고 하더군요.”

“저런, 저런. 젊은 황제가 의욕이 대단하시군요. 또 성품이 무척 섬세하신가보죠?”
“네, 어떻게 아셨어요. 새 황제는 시와 예술이 능하고 그런 인물들을 장려한답니다. 저희 종교에 대해서도 예술지향의 선호도를 가지고 접근하려 하더군요.”

“어떻게요?”
“아니, 저희 본부 현관을 높이라고 하더래요.”
쿰바홀의 시큰둥한 말이었다.
“현관을 높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
“종탑을 성처럼 높이고, 또 뭐라고 하셨죠?”

쿰바홀이 영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네, 우리 총주교님의 기념관을 지으라고도 하더군요.”
“그래요.”

“네, 아주 어렸을 때 총주교님의 큰 키와 인자하신 모습을 보았다면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세상을 뜨셨기에 아무 도움을 못 드린 것이 안타깝다며 기념관을 짓고 낙성식(헌당식)을 할 때 장례에 준하는 예를 갖추고 높은 관직을 하사하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군요. 우리 교단의 앞날에 큰 빛이 나타날 조짐이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층민들의 생활 돕는 일을 하려 했음도 알고 계신다면서 허락할 뿐 아니라 필요하면 황실 금고를 열어서 돕겠다고 하셨어요.”

“아, 정말입니까? 대단하군요.”
“그리고 또 있습니다. 가슴이 콱 막히는 충격입니다.”
“그게 뭔데요?”
“놀라지 마세요. 황제가 비잔틴 동로마 황제와 교감했다면서 당나라와 동로마 간의 비단 무역을 우리 교단이 책임지고 관리해 달라더군요.!

“뭐, 뭐!”
쿰바홀과 안토니가 놀라서 동시에 입이 벌어진다.
“아니, 주교님! 저에게는 그 말씀 안하셨잖아요.”
쿰바홀이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쿰 주교님, 죄송합니다. 이 문제는 안토니 주교님과 셋이 모일 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렇지, 그래요. 그건 잘 한 거예요.”

쿰바홀이 즉시 동의했다.
“영부 주교님! 이건 큰 사건입니다. 동로마 황제가 당나라 새 황제와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경천동지! 아니야 이건 총주교님이 들으셨어야 해요.”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우리가 무역업을 해서 선교한다는 식으로 로마교회가 비아냥거릴 걸요.”
쿰바홀은 로마 제국과 로마 가톨릭의 그 다음 태도를 미리서 짐작하고 시큰둥해 했다.

“아니오. 쿰 주교님! 로마 황제가 당나라 네스토리우스 교단을 직접 무역 상대로 하면 페르시아 중개무역에 비해 비단을 훨씬 싸게 수입하겠죠. 그러나 그런 큰 이익을 위해서는 우리 교단을 이단정죄에서 풀어줘야 합니다.”

“예, 그럼.”
다시 영부와 쿰바홀이 안토니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그렇다. 그건 로마제국이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이단의 죄에서 풀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안토니가 알고 있는 바로는 당태종 때부터 두 제국 간에 검토했으나 네스토리우스가 큰 벽이었던 일이 있었다. 그럼 로마의 사정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뒤집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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