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도림로에 자리한 문래동교회(양준기 목사) -세대교체 8년째, 승승장구하는 이유 있었다

모교회 출신 후임자로 사역, 신뢰 관계 든든하니 변화가 와도 끄떡 없어
‘우리 교회 목사님은 늘 목양실에’-외부활동 없이 교회사랑, 신자 사랑
일주일에 3일 전도팀 사역-시간 없는 이들 주일 오후 ‘반찬 나눔’ 사역
특새 헌금은 모두 다음세대에 투자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에 위치한 문래동교회는 문래 지하철 역에서 내려 900m 거리에 있다. 근린공원을 통과하니 아파트 단지길이 끝나고 단층짜리 부품 업체들이 즐비해있는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외부에서 강사들이 오면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느냐’며 놀란다고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풍경이 낯설다.

문래동교회는 올해로 58년 된 반세기가 넘는 교회다. 한국 동란 이후 1957년 12월 정운상 목사를 중심으로 하여 성도 17명이 시작했으며, 고 이성봉 목사 등 3인이 주택을 헌납, 교회 건물을 조성하게 된 역사적인 교회다.

15년간 6명의 사역자들이 거쳐 간 후 강용조 목사가 7대 목사로 부임(1972년)했다. 강 목사는 2007년까지 38년간 문래동교회를 강해설교를 통해 ‘말씀’ 중심에 우뚝 세워놓아 교회 뿐아니라 교단, 교계 안팎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양준기 목사(57세)는 그런 문래동교회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모두 이 교회 든든한 일꾼으로 평생을 섬기는 것을 보고 자란 양 목사는 25년 만에 모(母)교회에 담임목회자로 왔다. “이는 저에게 큰 기쁨이요, 은혜”라고 양 목사는 말했다.
 

::: 말씀 토대 위에 ‘행동’의 열매 맺히다

양 목사가 부임해서 보니 강해설교로 다져진 신자들은 섬기고 봉사하는 삶의 적용 부분을 갈망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됐었다. 복음적인 가정·신학의 성향에서 크고 자라 정적인 부분이 강했던 양 목사는 군대에서 20여 년간 사역하면서 다양한 교단의 목회자들과의 교제를 통해 폭넓은 신앙과 일반 신앙인들의 삶을 경험했다. 또 군인들을 향한 사역은 역동적인 목회를 마음껏 펼치는 장이 됐다.

이런 경험은 문래동교회에 사역에 접목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예를 들면 찬송가 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드럼도 없고, 박수나 통성기도도 하지 않는 교회였는데,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해 지금은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기본적으로 신자들과의 신뢰, 즉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접목하려 하는 것이지 본질을 훼손시켜 자유주의 사상으로 빠지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양 목사는 설명한다.

말씀으로 단단히 준비된 신자들의 내면에서 영글어진 믿음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욕구들로 꿈틀댔

   
 

다. 이를 읽어낸 양 목사는 자연스럽게 실천의 장을 마련했다. 전도훈련을 받고 실제로 전도에 나설 수 있도록 했으며,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 했더니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매 주일 오후에는 평일에 일 때문에 봉사할 수 없었던 신자들이 독거노인 20가정을 매주 방문해 직접 만든 반찬을 만들어 배달한다. 본인들이 스스로 재정까지 감당하면서 하는 일이다.

특히 전도사역은 화, 수, 목 등 각각 10여 명이 3일 동안 팥빙수, 붕어빵, 팝콘 등을 매개체로 하여 지역주민들을 만나러 나간다. 요즘 여성들도 경제활동에 나선 이들이 많아 전도 나갈 신자들이 없다고 각 교회들이 아우성인데, 문래동교회는 상황이 달랐다. 양 목사는 성도들에게 전도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니 훈련을 통해 사명과 열정을 갖고 전도에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세대교체 시 어려움 극복하고 우뚝 서다

문래동교회는 수십년 동안 빚 없이 선교에 매진하는 사역을 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양 목사가 부임하는 세대교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양 목사는 교회가 깨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사역을 이끌어나갔다. 38년 동안 사역하신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를 다하면서 남아있는 성도들을 독려하여 매 주 새로운 신자들로 가득 채워지는 은혜를 맛보았다.

여기에는 양 목사를 믿어 준 신자,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시대 흐름을 적용하여 교회를 이끈 양 목사의 적절한 선택이 있었다. 어린이집 개원, 엘리베이터 설치, 로비 확장 등도 그중에 하나다.

부임해서 중직을 맡아 봉사와 섬김의 직분을 감당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문래동교회가 오래 전부터 운영해왔던 유치원 학부모 출신들이 있음을 포착했다.

전도가 어려운데,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업상태인 어린이집을 다시 열었다. 재정은 없었지만 어린이집을 리모델링하고, 교회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로비를 확장하는 등 향후 비전을 제시했다.

예산이 없으니 빚을 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신자들 중에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재개발 얘기가 나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며 만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다음세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양 목사의 설득을 받아주었다.

다행히 그런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어린이집은 현재 자리가 없어서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예상대로 아이들과 접촉점이 되어 교회에 발걸음 하게 되는 부모들이 신자로 정착한 숫자도 만만치 않다.

주변의 3개 교회는 문래동교회의 이런 시도가 효과를 내자 ‘우리도 진즉 엘리베이터도 설치하고, 어린이집도 마련할 걸 그랬다’면서 후회하기도 했다.

교회를 사랑하고 신자를 사랑하는, 특히 모 교회에 대한 애착이 많았던 양 목사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전임목회자의 탄탄한 강해설교로 다져진 신자들의 신앙심에 불을 붙였다.

또한 많은 교회들이 실시하고 있는 ‘특별새벽기도회’(특새)를 활성화시켰다. 절기인 신년, 신학기 즈음, 사순절, 성령강림주일,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즈음해 일주일 혹은 2~3주일동안 특새를 한다. 이런 기간을 통해서라도 부족한 기도와 말씀의 훈련을 하면 일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특히 이 기간의 특새 헌금은 교회 재정과는 별개로 ‘다음세대’를 위해 사용한다. 3년에 걸쳐 한 해는 유초등부의 국내 성지순례, 그 다음해에는 중고등부 학생의 백두산 용정 지역으로의 비전여행, 3년차에는 청년들의 중국 청도와 북경 등 비전 씨앗 선교를 하는 데 지원한다. 유초등부 아이들에게는 전액 지원을, 중고등부와 청년부원들에게는 60%의 지원을 하며 다음세대들이 꿈을 키워나가게 하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 산 만큼 설교하고, 설교한 만큼 살자

원로목사가 개척의 길로 나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문래동교회는 내적으로 최대한 내핍생활을 하면서 이제까지 감당했던 선교와 구제, 교단에 해야 할 부분 등은 그대로 진행했다.

원로목사가 15개의 지교회를 세웠고, 양 목사가 와서 2개 교회를 세웠으며, 미자립교회 60여 군데 돕는 것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 또한 아끼지 않고 진행했다.

 

양 목사는 강단에서 드림, 나눔, 베풂을 늘 강조한다.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일, 필요한 곳이라면 돕고 나누고 하는 일에 앞장섰고, 신자들 역시 적극 호응해줬다.

원로목사로부터 ‘말씀’에 대한 탄탄한 배움을 쌓아온 문래동교회 강단에는 어설픈 유머나 예화는 먹히지 않는다. 말씀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오늘 그 말씀을 따라 살기위해 어떤 몸부림치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내용이 선포된다.

   
 

‘신자들이 너무 똑똑하면 목회자들이 피곤하다’고 하지만 문래동교회는 그런 토양과는 달리, 너무 순수하고 열정적이라고 양 목사는 말한다. 그러면서 ‘제일 변하기 어려운 게 목회자인 것 같다’며 리더 자신들이 제대로 서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장단점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많은 단점을 지닌 자라도 장점이 분명히 있으니 그것을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키워나가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양 목사는 교회를 어떻게 부흥시킬까 하는 것에 조급해 하지 않는다. 냉철하게 기도와 말씀의 영성을 다져나가다 보면 부흥은 뒤따라오는 수순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설교 외에 행정 등 모르는 것은 잘 아는 교회 신자들 얘기를 충분히 듣고 수렴해 나가니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필요도 없음도 안다.

‘산 만큼 설교하고, 설교한 만큼 살자’는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양 목사는 원로목사의 연륜과 경륜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미흡하지만 그분의 큰 물줄기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젊은 감각으로 제시해 주면 신자들이 손발이 되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책임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취재후기
목양실에서 이뤄진 인터뷰 중에 ‘권사 급’ 할머니들이 몇 분이 노크를 한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무언가를 건네주고, 또 어떤 권사님은 떡을, 또 어떤 분은 도너츠를 담은 접시를 들고 들어온다. 삼십여 분 간격으로 방문한다.

일주일, 목회자들의 휴무일로 알려져 있는 월요일에도 양 목사는 어김없이 목양실에 나와 일주일 계획을 짜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다. 심방을 꺼린다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문래동교회는 심방 요청이 줄을 이어 계속된다. 대심방 하려면 6개월이 걸릴 정도다.

지난 두 달 동에는 13건의 장례식을 치뤘는데 임종예식부터 입관, 장례, 하관까지 담임목회자가 직접 해오던 관례대로 하다보니 많이 분주했다. 현대교회인데도 목사를 사모하는 마음에 최대한 화답하려 한다.

교회 내 목양 일 말고는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다보니 ‘우리 목사님은 늘 목양실에 계신다’고 신자들은 알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사모님이 들어오셨다. 전도팀과 전도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얼굴에서 땀을 닦아낸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전도팀에 합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당연하듯 말한다.

양 목사에게는 장성한 두 딸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며 한 시간 가량 밤에 대화를 하곤 했는데, 지금까지 이어질 정도로 관계가 돈독하단다. 요즘 세태 속에서가정목회 실패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양 목사는 교회 목회, 가정목회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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