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소중한 목회, 함께 하는 교회
“목사부터 자기 부인 못하니 신자에게 기대할 수 없게 돼”19년째 눈물의 개척 현장, 그 속에서 복음과 구원의 의미에 천착하는 드림교회 신 현 태 목사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567호] 승인 2015.07.29  11:19: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교회 경비와 생활비 위해 공사장일 하다 과로사한 후배목사 장례식에서
“한 몸인 교회 아픔 돌아보지 못한 내 탓” 통곡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도, 고난의 신비, 자기 부인, 순종의 결단 등 반드시 지켜내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들이 외면된 지 오래예요. 목회자들부터 자기 부인의 본을 보이지 못하니 성도들에게서도 그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됐어요. 그 단적인 예가 한국교회 안에 대형 교회와 생활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개척교회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현실입니다.”

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는 평일 오후, 끈적이는 날씨에 가난한 개척교회 목회자의 방에 걸린 소형 벽걸이 에어컨은 소리만 덜덜거릴 뿐 도무지 기별이 없다. “여름이면 땀 흘리는 것이 이치”라며 올해 들어 에어컨을 처음 켰다더니, 에어컨이 아예 파업한 모양이다. 차라리 창문을 열어 제치자 밖에서 몰려온 공기가 한층 더위를 식혀주었다.

경기도 시흥시 시청로(구 장현동) 주상복합 건물 상가에 자리 잡은 드림교회 담임 신현태 목사(59)는 39년간 걸어온 자신의 목회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속에서 경험한 한국교회의 부조리와 복음에서 멀어져 맘모니즘에 편승한 채 위태로운 질주를 계속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진 한국교회에 대한 고발이자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목회를 걸어온 자신의 참회의 고백이기도 했다. 빗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 과로사 한 50대 목회자의 죽음

“풍족한 교회에서 목회하다 개척교회를 해보니 매일이 생존을 위한 사투더군요. 그런 속에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매순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스스로 타협하고 번영 설교로 헌금 모아 먹고사는 장사꾼이 되겠더라고요.”

얼마 전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과로해 심장마비로 죽은 50대 후배목사의 장례식에서 신 목사는 어린 자식들과 홀로 남겨진 사모의 손을 잡고 “어려운 줄 알면서도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통곡했다. 죽은 박 목사는 하루 5만원 벌이의 일용직을 나갔다가 그것으로도 생활과 교회 경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7만원 버는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건축자재 옮기는 고된 일을 마치고 온 다음 날 사모가 새벽기도회를 위해 깨웠지만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면 교회에서 기도하다 기진해 잠들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후배 목사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신 목사는 통곡 또 통곡했다. 주님의 한 몸으로서 고통에 함께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요, 자신도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결코 남의 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신 목사 역시 성도 20명 남짓인 교회 형편에 사례비 수준을 따지기란 목회자도 성도들도 버겁다. 아내가 요양보호사로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고, 목회 여정에서 “사람이 왜 안 변하는가”를 놓고 씨름하다 7년간 정식으로 학부 및 대학원에 입학하여 심리학을 공부하고 행복드림상담심리센터 소장을 겸하는 것이 지역을 위한 봉사이자 적지만 생활에도 도움을 준다.

신 목사는 재적 2천여 명의 경상남도 안동의 모교회격인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신임 속에 부목사를 지내던 시절과 그 후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유명한 여러곳의 교회들을 담임하면서 “성경적인 교회로의 여정”을 향해 젊은 시절 치기 어린 사명을 불태우던 때를 가끔씩 떠올려본다.

# 성경적 교회 추구, 교회 내 갈등

그의 좌충우돌 목회 여정은 이랬다. 부목사 시절 교회 장로가 이사장으로 있던 사학재단의 교사 임용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을 말하면서 여과 없이 지적한 일로 교회를 사임하게 됐다. “성경적으로 불합리한 일”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심의 큰 교회일수록 목회자가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기가 더 어려운 것을 목도하면서 다음 사역지를 놓고 “농촌으로 들어가 고무신 신고 일하며 성경적인 원형인 초대교회 같은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기도했다. 제일 처음 청빙 오는 곳에 상황을 묻지 않고 가겠다는 마음이었다. 놀랍게도 동기목사를 통해 제안 온 곳은 농촌의 교회였다. 당시 청송에서 70년 된 교회로 출석성도 80명의 가장 규모 있는 교회였다. 신 목사는 그곳에서 “건강한 농민운동 하자”고 앞장섰고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가장 먼저 교회를 찾을 만큼 지역에서 신임을 얻었다. 또 한 가지 야심차게 시작한 게 매주 하루를 정해 인근 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 함께 책 읽고 공부하고 식사를 나누며 연대를 다졌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 교회를 개혁, 갱신하고 복음의 열정을 일으켜 보자는 생각이었다.

5년 간 재밌게 목회를 이어가던 중 진해의 한 교회로부터 청빙요청을 받았다. 그곳은 당시 45년 된 교회로 원로목사가 37년간 목회하고 후임이 바통을 이어받아 목회하는 중에 분규가 일어나 200명 중 일부를 이끌고 나가면서 담임목회자가 공석인 상태였다. 교회 당회의 ‘선 설교’ 요청에 “나 설교 팔아먹는 장사꾼 아니다. 예고 없이 지금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조용히 와서 설교를 들어보라”고 호기로운 배짱을 부렸다. 그때 신 목사의 나이 35세, 젊은 목사의 개혁은 계속됐다. 경상비의 60%를 지역사회와 어려운 농촌교회를 위해 사용할 것을 청빙 조건으로 내걸어 부임한 해부터 5%씩 증액해 가기로 약속받았다. 분규 속에 있는 상황인 만큼 설교는 고린도전서부터 차례대로 매주 연속 강해설교를 했다. 1년만에 배가 성장, 성공적으로 보였다.

폭풍전야 속 고요라 했던가. 교회에서 유력한 장로 한 사람이 설교 시간에 자신에 대해 거론했다며 명예훼손으로 신 목사를 노회에 고소해 교회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개혁을 외치는 젊은 목사가 눈엣가시였을까.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 20여 명의 항존직들이 똘똘 뭉쳐 신 목사를 내쫓으려 하고 나머지 다수의 성도들이 그에 맞서는 대치상태가 되었다.

 

 

십자가의 도, 고난의 신비, 자기부인 잃어버린 한국교회,
맘몬에게 복음의 자리 내어줘

 

 

# 중형교회 사역 시 떠나라는 음성, 즉시 순종

그렇게 2년간 싸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주일 새벽 레위기 25장을 본문으로 ‘희년’의 의미를 설교하고 내려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 “너의 할 일이 끝났으니 이제 이 교회를 떠나라”.

“양쪽의 성도들을 모아 놓고 그날로 사임하겠다고 하니 생명 걸고 싸운 성도들이 반대하는 거예요. 하지만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하루라도 더 남아있으면 이 교회의 목사일 순 있어도 하나님 앞에 목사 자격 끝나는 거라고 얘기했더니 비로소 막아선 성도들이 길을 터주었어요.”

신 목사를 노회에 고소했던 그 장로와는 개척한 지 한참 후에 연락이 닿아 만났다. 그분은 오히려 지난 일을 회개하면서 수년간 선교비를 지원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기도 했다. 당시는 개혁적인 목회자를 쳐내는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 여겨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싸웠지만 지금 와서 돌아볼 때 “더 큰 가슴으로 성도들을 품고 십자가 아래서 인내하지 못했고, 목사가 십자가 앞에 죽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함으로써 목사의 소명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고 신 목사는 말한다.

그는 “만일 그때 밥그릇 차고 앉아있었다면 이기심에 함몰됐을 것이며 오늘날 한국교회 대형교회들의 문제점을 반복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현재 교회 내부 문제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근심을 주고 있는 몇몇 교회들의 해법은 간단하다. “목사가 죽어야 한다. 십자가의 도를 붙들고 자기 부정을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도 목사 자신도 살 길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무너진 목회자의 가슴에는 자기 우상으로 가득찬 괴물이 자리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쟁쟁한 교회에서 개혁·갱신 시도하다 쫓겨날 위기 맞기도…
교회 내분 해답은 목사가 죽어지고 내려놓는 것

 

 

# 눈물의 개척 19년, 상담 공부

개척에 나선 지 19년, 진해의 교회에서 나와 처음엔 북한선교교회로 시작해 10년간 사역하고 담임목사가 암으로 사역을 내려놓은 고잔평강교회와 합병한 후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드림교회 자리로 이전한 지 2년이 되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한국교회 목회현장에서 불거지는 많은 문제들이 “목회자의 내적 상처로 인한 욕망을 그대로 목회에 투사시켜 거기서 보상 받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최고의 상담원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목회 속에서 성경적 상담을 통해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나도록 하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가정회복의 일환으로 성경적 자녀 교육인 쉐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개척의 현실은 날마다 눈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삶이 복음의 현장이 되도록 성도들과 함께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1년 전부터는 성도들과 복음이 뭔가, 구원이 뭔가를 놓고 더욱 치열하게 매진하기로 하고 맥체인 성경으로 매일 4장씩 성경을 읽고 그 내용으로 새벽에 설교하면서 말씀에 더 깊이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말씀 속에서 주님의 심장을 새벽마다 발견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고 있다.

신 목사는 늘 성도들과 자신의 신앙적인 고민을 가감 없이 나눈다. 그런 그에게 사모는 “적당히 하시라”고 말하지만 그는 “내가 실패하고 아픈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성도들도 나와 나누지 않을 것”이라며 당연한 일이라고 응수한다.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케 하는 그 속에서 아파하고 몸부림치는 과정, 때로는 피투성이 되어 실패해도 또 일어나는 모습 그대로 “살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복음의 날 것, 십자가의 도,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성도들의 단계에 맞게 가르치는 것이 목사의 본분임에도 성격이 급해 좌충우돌 지나온 과거를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신 목사는 개척현실이 너무 어려워 엉엉 울고 있는 자신의 등을 주님이 몇 번씩이나 새벽기도 시간에 찾아와 꼭 안아 주시면서 “신 목사, 네가 왜 우는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참 좋다. 난 네가 좋아 어쩔 줄 모른단다”하고 위로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날마다 그 생생한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다.

신 목사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100% 절대적 은혜와 100% 자유 의지적 순종과 결단이 균형을 이루는 삶”인 것을 강조하며 성도들과 함께 피멍들도록 십자가 복음을 향해 다가가는 길이 주님이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정직하게 십자가 앞에서 고백할 진정한 성경적인 복음이라고 말했다. 오직 십자가! 오직 자기 부정! 오직 복음! 오직 성경! 오직 순종! 오직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어야 한다고….  

정찬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