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48

“쿰 주교님. 로마교회가 당나라 심장부에 자리 잡은 우리 기독교를 통해서 당나라는
물론 주변 국가들에게 복음 전할 꿈을 키워야지, 우리를 질투하고 미워하다가 우리나 저들이 다 함께
갈 길을 잃을 수 있어요. 더구나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신흥종파인
이슬람에게 빼앗기고도 깨닫지 못하고 독점시대의 기독교 노릇을 하려 들고 있으니 원….”

 

 

 

 

 

   
▲ 중국 난주의 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당나라시대 황제 행렬 모습.

빛나는 기독교 시대를 열다

당나라 분위기가 활기차다. 황제가 신하들은 물론 장안에 사는 시민들에게도 활력을 집어넣어 주었다. 이는 미행이라는 방법으로 시장거리를 찾기도 하고 심지어 대진사로 영부주교를 방문하는데도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서 변복차림으로 서너 명의 수행원만을 대동하고 불쑥 찾아오는 모습에서 당나라 신민의 안녕을 쉬이 읽을 수 있는 일이다.

영부는 아무런 기별도 없이 황제가 나타났으니 기겁할 법도 하지만 황제를 알아보고서는 껄껄 웃으면서 마치 친구를 마중하듯이 했다. 그 딴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황제의 방문을 숨긴다는 기지의 발휘였다. 그러나 그는 정작 주교실로 들어가서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황제가 조금 전 영부처럼 너털웃음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이 사람 주교 선생! 처음에는 호탕하게 웃더니 이제는 내가 두려운가? 어서 일어나서 나를 마중해 주셔야지, 왜 너털웃음을 웃었는지 내가 알아요.”
이렇게 말하는데도 영부는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황상 폐하,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소인을 죽여주소서.”
“허, 왜 그러시오. 나는 친구로 왔는데 뭐 내가 황제의 행차 격식이라도 차렸으면 큰일 날 뻔 했구려.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황제는 영부를 마치 친구처럼 대하려 했다.
뒤늦게 영부 주교가 몸을 일으켜 황제의 자리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선다. 그러나 황제가 그를 손짓으로 불러 가까이 자리하게 했다.

황제가 언제 날을 잡아서 오겠노라. 그때는 공식 방문으로 알로펜 총주교 사망에 따른 추모의 예를 갖추겠다면서 경교사 입구에 탑을 높이 세우라 했다. 영부 주교는 교회의 현황을 보고했다. 요즘 시행하고 있는 난민 정착촌과 오삼수도회는 물론 과거 준비를 위해 학교까지 설립하고 있는 현황을 상세히 말했다. 황제는 칭찬하면서 제국 변방까지 널리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고 과거시험에 우수한 인재를 많이 내보내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황제 일행이 궁으로 돌아간 이후 영부는 자신감이 더 생겼다. 황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사나 천사장이 자신을 등에 업고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황제가 로마와의 교역을 경교본부에서 책임지고 해내라는 당부를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까지 다시 다짐해준 것도 영부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로마제국이 당나라와의 무역에 있어서 네스토리우스 파인 당나라 경교를 인정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치 때문에 영부는 황홀해 하고 있다. 그동안 이단자들이라고 얼마나 무시했던가. 물론 비단무역에 대해 한정한다지만 이 사건의 의미는 생각할수록 크게 여겨졌다. 꿈이 아닐까? 꿈이라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달쯤 지난 후 영부가 보낸 서찰에 대한 마리아 교수의 답신이 당도했다. 마리아 교수는 태종 황제 때에도 있었던 일이다.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의지는 네스토리우스를 사면하겠다는 것이 분명했고 또 실제로 사면령을 내렸다고 들었다. 그러나 비잔틴 교회 귀족들인 고위 주교들이 한사코 반대해서 무산된 것으로 안다. 비잔틴 황제가 사면한다 해도 지금은 로마교구 상황이 독자적으로 교구장인 주교가 자칭 ‘교황’이라 호칭하면서 우리 교단을 전보다 더 핍박할 것으로 본다. 우리은 로마가 이단자라고 해서 할 일 못하지 않겠으나 앞으로 우리 교세가 정작 커지고 동방 아시아를 위해서 활동하게 될 때를 위해서 금번에는 우리 교단과 로마교회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내용들이었다. 나를 장안으로 초청하는 것은 고맙지만 초코국에서 할일이 많고 머지않아서 자기는 사마르칸트로 가겠다고 적혀 있었다.
“쿰 주교님, 마리아 교수님이 사마르칸트로 가신다 하시네요.”

영부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주교님 우리는 하늘같은 총 주교님을 하나님 품으로 보내고도 살아갑니다. 총주교님 없으면 못살 줄 알았는데 나 같은 늙은이도 숨 쉬고 있잖아요. 마리아 교수님은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건강하실 겁니다. 우리가 사마르칸트에 가서 뵙죠 뭐. 그리고 마리아 교수님은 사마르칸트에 오래 계셨지요. 그곳에 가면 할 일이 많으시겠죠. 저도 조금 있다가 초코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내가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겁니다. 제 아들 둘이서 잘 하겠으나 제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한 걸음 먼저 초코에 갈 터이니 주교님이 뒤에 초코에 오세요. 그때 저와 함께 마리아 교수님을 뵈러 사마르칸트에 같이 가시죠.”
“그래요. 그러는 수밖에 없군요.”

영부는 갑자기 마리아 교수가 보고 싶다. 그 품에 안겨서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는 마리아 교수가 알로펜 총주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애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가 한 살인가 위라서 더 대담했을까. 총주교님 얼굴에 입맞춤을 하려다가 자기에게 들켰던 일이 있었다. 그때 어린 나이였으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던 생각이 떠오른다. 영부가 결혼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마리아는 결혼을 적극 권장했었다.

“영부야, 너는 주교님 흉내 내지 말고 어서 결혼해라. 내가 중신 서주마.”
이렇게 말했을 때, 알로펜 주교(당시에 총주교에 오르지 않았다)님이 곁에 계시는데도 ‘흉내’라는 단어에 특히 힘주어 말했었다. 왜, 주교님 흉내 내지 말라고 했을까를 영부는 한동안 뒤에 마리아 교수로부터 들었다.

“영부야, 너 주교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느냐?”
“얼마나 좋아하시게요?”
“내가 주교님 좋아하는 만큼이란다.”
“네! 그게 무슨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면 관두고 너나 장가 갈 준비 하렴.”
“어머님, 나 싫어요. 나는 주교아버님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 일을 할 거예요,”
“그게 정말이냐?”
“네, 어머니.”

그 무렵에는 영부가 어머니 아버지로 호칭하면서 마리아와 알로펜에게 귀여움을 받던 때였다.
“또 위선자 하나 나왔구나.”
“뭐, 위선자라니요. 어머니 그럼 이 놈이 그렇게밖에 안보이세요?”
“글쎄다.”

마리아는 영부의 두 볼을 매우 사랑스러운 눈길로 만져 주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마리아의 두 손이 어찌나 부드럽고 또 그가 만진 손의 촉감으로 얼굴이 간질거리던지 하마터면 그때 마리아 교수의 손을 덥석 붙잡고 깨물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었다. 영부는 30여 년 전을 회상해 보았다. 지금 당장 초코로 달려가서 마리아 교수와 밤을 새우면서 대화하고 싶었다.

영부 주교는 학교 시설을 준비하는 대로 초급, 중급, 과거시험 반을 좀 더 체계 있게 운영할 계획으로 바쁘다. 이를 위해서 장안에 있는 현지 학교들을 세 군데나 견학했다. 영부는 요수아와 시몬에게 ‘대진사 학당’을 운영토록 했다.

“서두르지는 마시오. 우리가 당나라 학문을 어떻게 따라 가 내겠소. 쉽지 않은 일이지. 당장은 당나라 사람들과 경쟁을 못하겠으나 우리는 그리스 로마식 전승이 있지요. 그리스 철학에 있어서는 요수아 사제의 부친 요한 박사님이 사마르칸트 대학 학장님이셨지요?”

“아닙니다. 주교님이 오해하셨어요. 요수아 사제가 아니라 요수아 님의 아내 실비아가 사마르칸트 요한 박사의 따님입니다.”

시몬이 영부의 말을 바로잡아 주었다.
“아하, 맞다. 맞아. 그렇지. 알로펜 2세의 어머니 실비아 님이 요한 박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 했죠. 그래, 실비아 님은 그리스어는 물론 라틴어와 시리아어에도 능통하다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실력이 변변하겠습니까.”

요수아가 겸양을 떨었다.
“거 말 함부로 하지 마시오. 내가 보니 실비아는 그리스어 성경을 거침없이 읽으시던데요.”
시몬이 다시 되받았다.

“그래도….”
영부가 요수아의 말을 가로챘다.
“왜 부인이 실력이 있으니까 지아비로서 조금은 켕기나 보죠.”
“네, 주교님 제가 볼 때도 요수아 님이 장부인가가 궁금하네요.”
시몬이 요수아를 향해 한쪽 눈을 찔끔거리며 웃어넘겼다.

“아무튼 그럼 실비아 님까지 여러분 셋이서 학당을 잘 운영해 보세요. 시설도 더 보충하고, 학생들은 주교인 내가 힘을 보태겠소.”

영부 주교는 저녁시간 오리봉 남자수도회 기도실로 향했다. 잠자리에 들까 하다가 마리아 교수님의 서찰에 담긴 내용에서 남아도는 여운 때문이었다. 비잔틴 교구는 과반수 정도의 지도층이 당나라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를 이단정죄에서 풀어주자고 한다지만 로마교황청 산하 주교들은 결사반대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로마교구가 한 손을 놓고 있고 악역을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주교가 담당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네스토리우스 파의 강력한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발칸 북방 동로마지역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로마교구의 수위권 확보가 훨씬 쉬워졌었다. 그런데 뒤늦게 당나라를 중심한 아시아 세력이 콘스탄티노플과 연합세력이 될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리라. 당나라가 거대한 아시아의 강자로 일어나서 진·한 시대의 확대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로마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쟁 세력인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안디옥과 당나라를 묶어 동방 아시아의 강자가 되면 로마교회는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부는 생각들을 접어두고, 기도에 빠져들고 싶었다. 세상 일 모두 인간이 계획한다지만 주 하나님의 손이 가까이 계심이라 하였다. 허둥대지 말자. 그러나 역사란 1천년에 한 바퀴씩 돌기 때문에 그 회전의 흐름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알로펜 총주교님은 말씀하셨다. 기록된 말씀으로 주신 성경은 하나의 암시일 뿐이고 1천년에 한번 씩 쉬는 호흡법을 배워야만 미래형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총 주교님, 주교님은 다 알고 계시죠. 아시면서 저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죠.

그렇다. 받은 자 외에는 모른다. 또 받은 자가 입을 열어 가르칠 수는 없다면 비록 아는 것이라 해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총주교님이 말씀하신 때가 있었지. 영부는 장차 세계사 속에서 기독교가 갈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로마교회가 당나라에서 활동하는 기독교를 경쟁자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 떠오른 것이다. 로마교회가 당나라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아니, 그 반대로 과대평가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좋다. 사신을 보내자. 사절단이다. 영부는 사신이다, 를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사신을 어디로 보낸다는 것인가요. 주교님.”
쿰바홀이다.

“오셨어요. 잘 오셨습니다. 마리아 교수님 서찰에 담긴 내용을 곰곰이 떠올려보니 로마교회의 질투로 장차 기독교의 세계적인 지도력에 큰 앙화가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더 자세히 말씀해 보시오.”

쿰바홀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말했다.
“쿰 주교님. 로마교회가 당나라 심장부에 자리 잡은 우리 기독교를 통해서 당나라는 물론 주변 국가들에게 복음 전할 꿈을 키워야지, 우리를 질투하고 미워하다가 우리나 저들이 다 함께 갈 길을 잃을 수 있어요. 더구나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신흥종파인 이슬람에게 빼앗기고도 깨닫지 못하고 독점시대의 기독교 노릇을 하려 들고 있으니 원….”

영부는 탄식을 했다. 그의 마음 속에 한 순간 천년의 앞날을 보는 눈이 열렸을까.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주교님, 진정하세요. 눈물 거두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에 사절단을 보내겠다 하셨군요.”
쿰바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내일 주교회의를 엽시다. 안토니 주교님을 사절단 단장으로 해서 로마를 향해 가야 합니다.”
영부와 쿰바홀은 함께 두 손을 맞잡았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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