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149

“당나라가 세계 최고 제국임을 뽐내면서 전 세계를 향해 문호를 열고 서방이나 서역과도
문화적 차이가 큰 동양문화의 안방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 기독교가 동방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도록 기회를 주신
기적 같은 시대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최대한 이용해 당나라 황제와 신민들 가슴 속에
예수의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 실크로드 지역 우르판에서 만난 한 소녀. 이 아이는 알로펜도, 예수도 모르면서 자라고 있었다.

황제, 대진사 방문

황제가 대진사를 방문했다. 미행 차 들렀던 지난번과 달리 공식행차다. 당나라 기독교의 역사적인 기초를 쌓은 알로펜 총주교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영부 주교는 쿰바홀과 안토니 보좌주교의 수행을 받으며 황제를 모셨다. 황제는 대진사 입구에 우뚝 세운 종탑을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웃는다. 그리고 주변의 단장된 담장을 바라보면서 기분 좋아라 했다.

“주교, 어떻소. 경관이 이만하면 권위가 있어 보이죠. 당나라 영원한 영걸이신 태종 황제가 각별히 아꼈던 알로펜 총주교의 경교(景敎)가 자리한 성전인데 출구부터 이만한 위엄을 갖춰야 하지 않겠소.”
“네, 황제 폐하. 지당하십니다.”

영부 주교는 몇 번씩이나 황제의 친절한 배려에 감격해 허리를 굽혔다.
황제가 친필로 쓴 현판인 ‘대진사(大秦寺)’ 간판을 달았다. 이전까지는 당태종이 경교를 당에 초빙한 정관 9년(AD 635)에서 3년 뒤에 황궁에서 멀지 않은 현 위치인 의령방(義寧坊)에 교회를 세운 뒤에 그 이름을 페르시아에서 왔다 해서 파사사(波斯寺)또는 파사호사(波斯胡寺)로 호칭했고 어떤 경우에는 경교사(景敎寺)로 부르기도 했었다.

오늘 황제가 ‘대진사’로 교회 명을 확정하고 친필로 쓴 명패를 달아준 데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당태종 사후 그 아들 고종 때까지는 감히 그 누구도 알로펜의 기독교인 경교를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측천무후 치세에는 불교가, 현 황제 재임 초에는 유교(도교)가 경교를 혹독하게 핍박하고 탄핵을 서슴지 않았으나 이제는 어림도 없었다. 당태종 이세민이 선교사 대표인 알로펜이나 그가 가르쳐 준 기독교의 가르침에 깊이 감동한 신뢰는 불교나 당나라 국교나 다름없는 도교의 탄핵도 거뜬히 이겨내게 했다. 오늘 황제 이융기가 직접 현판식을 했다는 것은 당나라 기독교의 신뢰도를 웅변하는 것일 수 있다.

황제는 현판식을 마치고 알로펜 주교를 추모하는 예를 올리고서 회고담을 말했다.
“대신사가 알로펜 총주교와 일행 20명이 입국한지 90년이 되었소이다. 주교를 비롯한 여러분이 얼마나 선교 초기의 내용을 아는지 모르겠으나 짐이 가르침 받은 바로는 태종 할아버지가 아직은 개국 초의 어려운 고비를 다 마치지 못했던 시기에 알로펜 총주교는 황제의 우정 어린 친구도 되고 한 종교의 교사 입장에서 당신들 종교의 가르침을 황제에게 말씀드려 큰 위안을 선물했었지요….”

황제는 잠시 눈길을 먼 하늘로 향한다. 당태종이 알로펜을 처음 만난 직후부터 그의 집무실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고 날마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던 날들을 회상해 보는지도 모른다.

당태종이 알로펜을 만났을 때는 당 왕조를 그의 부친과 함께 세우면서 내외의 적들과 싸우던 투쟁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AD 626년, 소위 왕자의 난 또는 형제의 난으로 호칭되기도 했던 ‘현무문 사건’을 쉽게 지워내지 못하던 때였다. 당 왕조를 개창한 부친 태조를 연금한 후 황태자인 형 이건성과 아우 이원길을 척살했다. 그리고 부친인 태조를 밀어내고 황제의 자리까지 찬탈한 당태종은 현무문 사건 후 도교나 불교의 고승들로부터 자기 고통과 죄업으로부터 해방의 길을 얻고자 했으나 늘 만족한 답변을 듣지 못하던 때에 알로펜의 기독교를 만난 것이다.

알로펜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당태종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랑과 용서, 속죄와 구원에 대한 예수의 복음은 씻어내기 힘든 죄악에서 당태종을 살려냈다. 그즈음 당태종은 형과 동생을 죽인 죄책감으로 거의 발작에 가까운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던 때였는데 알로펜이 주는 예수의 복음은 당태종을 죽음보다 무서운 미망에서 건져냈었다. 태종은 어전 회의장을 알로펜 주교의 말씀을 듣는 경연장으로 만들고 주요 대신들까지 불러들여 가르침을 받았다.

구약의 천지창조,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원죄, 구세주 메시아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죄 사상과 세례, 기도, 예배에 이르기까지 알로펜 주교의 설교는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내려 당태종과 그의 개국공신들 중 실력자들을 크게 감동시켰던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으면 죄와 죽음 같은 고통에서 구원받는다는 단순 명쾌한 복음이 당태종을 크게 감동시킨 것은 당나라시대 기독교의 쾌거였다. 정관 9년(AD 635년)에 당나라에 입국해 서양의 군주들보다 훨씬 강력했던 당태종의 전폭적인 환대를 받으며 경교라는 이름으로 호칭되었던 당나라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는 당태종뿐 아니라 고종, 측천무후, 현종, 숙종, 대종, 덕종으로 이어지는 당나라 2백여 년 동안 당대 세계 최고 최강의 제국에서 크게 신뢰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뿌리내리고자 최선을 다했었다.

황제는 다시 유쾌한 웃음을 지으면서 영부 주교에게 당부했다.
“주교는 들으시오. 내가 지난번 미행 때도 말했거니와 당신들의 종교가 당제국의 손님 행세하면서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되오. 나는 태종 할아버지만큼 경교의 진리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소.”
황제는 또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영부 주교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그 하나가 무었이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나 영부는 황제의 말씀 중간을 자를 수가 없어서 진땀을 흘리며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아시오?”

황제가 침묵을 깨고 영부 주교에게 묻는다.
“네, 폐하! 백 번 죽을 죄를 범한 죄인일지라도 주 예수께서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하시면 깨끗이 죄를 용서받는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맞소! 바로 그거요. 태종 할아버지가 알로펜 주교로부터 그 말씀을 듣고서 당신들의 기독교를 경교라고
했소. 빛나는 종교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짐도 그 말씀에 의지하여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있고 앞으로 당신들의 포교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소이다. 이는 태종 할아버지가 알로펜 총주교에게 꼭 해주고 싶으신 일인 줄 압니다.”

그랬다.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시대 알로펜과 주고받은 대화 중에서 경교가 경전연구에 더욱 몰두해 주기를 바란다, 경전 번역이 좀 더 정확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 서양의 학문이나 기술과학을 발전시켜 제국의 신민들이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힘쓰고 제국의 정책을 따라서 경교의 뛰어난 인재들이 당제국의 관료나 학문계, 문화계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던 내용을 영부는 알고 있었다.
“폐하! 감격하고 황송하오며 신들의 미천하고 미련함을 지금 뼈아프게 느끼고 있나이다.”

“주교는 혼자가 아니오. 짐이 알기로는 신앙과 학문의 기초가 튼튼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음을 알고 있소. 특히 서역 출신의 인재들을 중용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소.”
“네, 폐하! 깊으신 배려에 감계무량일 따름이옵니다.”

황제가 다녀간 뒤 대진사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황제의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황궁에서 전해오는 소식 중 반가운 내용은 측천무후 시대에 불교의 사찰로 넘어간 교회당들이 모두 환원된 것이다. 젊은 황제의 속 깊은 배려에 영부 주교를 비롯한 대진사 지도부는 크게 고무되었다. 영부는 주교회의를 소집했다.

“두 분 주교님께서도 황제의 기대를 잘 아셨겠으나 이제 우리는 당나라 입국 100년을 앞두고 좀 더 힘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영부는 들떠 있었다.

“주교님, 우리는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황제가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 줄은 압니다. 그러나 황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의 당나라는 개국 초 즉 우리 기독교가 입국했던 때와는 또 다릅니다. 여 황제 측천의 때를 생각해 보세요. 불교가 평소와는 달리 여황제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우리 기독교의 숨통을 끊어버리려 했던 날들을 말입니다. 제 말은 겁을 먹자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여러 환경이 우리에게 황홀경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안토니의 말을 받아서 쿰바홀이 나섰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혜는 뱀, 순결은 비둘기 같이 하라 하신 주심의 말씀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소. 쿰 주교의 말씀에 이 안토니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리고 주교님, 금번 우리가 본부에 설립하는 대학에는 고급기관으로 성경연구회를 설치했으면 합니다. 입국 초 황궁 안에서 당시 태종이 급히 주문한 성경 번역을 위해서 두었던 경서전(經書殿)보다 크게 확대해야 합니다.”

“네, 저도 그 생각을 지금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당나라 선교 초기의 번역 문서들과 성경번역 또한 재번역이 필요합니다. 머지않아서 초코의 마리아 교수님을 뵙고 번역 초기의 형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결정할 일이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우선 한 말씀 드린다면 성경의 내용 중 삼위일체나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메시아 예수가 불교의 교조인 세존(世尊)으로 번역된 부분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영부 주교의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쿰바홀이나 안토니 주교는 말이 없었다. 영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잘못 했나 싶었다. 그러나 곧이어 안토니가 미소 지으며 말을 받았다.
“주교님의 지적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는 당나라 입국 초의 번역문서들이 역사 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번역하면 잘못된 부분들은 수정보완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역사의 기록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란 조금씩 발전합니다. 과정 속에서 부족하고 유치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숨기려 하거나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나 도교의 용어를 얼마간 차용해서 우리 종교의 가르침을 표현했다고 해서 우리가 무지하고 무식해서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불교는 진나라 한나라 시대보다 더 일찍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도교는 어떤가요. 도교는 당나라 국교입니다. 이들 두 종교는 9백여 년 전에 이 땅에 자리 잡은 종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룩한 관습언어들을 차용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나라가 세계 최고 제국임을 뽐내면서 전 세계를 향해 문호를 열고 서방이나 서역과도 문화적 차이가 큰 동양문화의 안방을 열어젖힌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 기독교가 동방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도록 기회를 주신 기적 같은 시대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최대한 이용해 당나라 황제와 신민들 가슴 속에 예수의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쿰바홀이 두 분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먼저 주교님의 말씀대로 지금보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초기 번역본을 다시 번역하고 보완하지요. 그리고 안토니 주교님의 말씀을 따르면 다시 번역해도 당나라 제국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할 수 없기에 성경번역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기죽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통해서 당나라 사람들 가슴 더 나아가서 그들의 영혼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는 뜻이지요. 그렇지요?”

쿰바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영부와 안토니가 박수치면서 환영했다.
“두 분 말씀 잘 듣고 배웠습니다. 앞으로 더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황제의 권고도 있고 해서 로마와 당나라 간의 ‘비단무역’에 우리가 역할하게 되었지요. 이 문제로 로마교회에 사절단을 보내고 싶은데 두 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가야지요. 로마교회와 우리 당나라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생각과 행동을 합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안토니 주교가 책임지고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쿰바홀의 제안이었다.

안토니 주교가 가야 한다는 말에 당사자인 안토니는 펄쩍 뛰었다.
“뭐요. 날더러 죽으러 가라는 겁니까?”

“아니, 뭘 그리 놀라세요. 당대의 안토니신데 죽다니요. 누가 안토니 주교를 감히 죽인단 말인가요?”
쿰바홀이 정색하고 말했다.

“안토니 주교님, 세계 기독교의 앞날을 위해서 우리 당라나 기독교와 로마 교회가 화해하고 함께 아시아 땅에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누군가가 순교의 자세로 나서야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죽으러 가겠소.”
안토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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